[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풍도바람꽃

풍도바람꽃이 피었다. 봄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꽃을 피워 봄을 알리는 꽃들은 여럿 있지만 지금쯤은 풍도바람꽃으로 봄을 안다.

봄의 꽃들은 매화나 진달래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산야에 언 땅을 뚫고 피어난 야생화가 봄을 맞는 이들의 마음을 흔든다. 정말 자연 속에서 꽃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가장 화려한 시선을 받으며 처음 사랑을 받았던 꽃은 복수초이다. 잔설이 남은 산자락 양지 바른 곳에 복 받고 오래 살라는 뜻을 가진 그 밝고 맑은 꽃이 피어난 모습이 얼마나 신선하였던지.

그 이후로 우리 꽃을 사랑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노루귀 처녀치마, 얼레지, 홀아비바람꽃 …. 식물학자가 아니더라도 카메라 어께에 메고 이리저리 인터넷에서 꽃 정보를 찾아 나누고 그리고 그 꽃 하나 만나러 길을 떠난다. 꽃만 보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자연도 만나고 그 일상의 여백 속에 자기 자신도 만나면서.

이야기가 길었는데 풍도바람꽃은 최근에 가장 관심을 모으는 우리풀 중 하나이다. 이쪽 분야에도 얼리어댑터라고 할 수 있는, 새로 발견된 식물이 생기면 안달이 나는 분들이 계신데 그 분들은 3월 중순이면 서해의 작은 섬(행정구역상으로는 안산시에 속한다), 풍도로 떠나느라 항구로 모여든다.

하룻밤 머물 곳도 마땅치 않은 작은 섬이라 시간과 일정을 잘 맞추어야 하고 모처럼 잡은 그날의 날씨도 도와주어야 한다. 한 주만 놓쳐도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어버리기 십상이니 쉽고도 어려운 꽃구경이 바로 풍도바람꽃이다. 그 꽃을 보면서 비로소 봄이 왔다고 확정하는 순간처럼.

그렇게 뱃길로 제때에 찾아간 풍광은 실망시키지 않는다. 이 땅에서 오직 유일하게 풍도에서만 볼 수있는 꽃이다. 너도바람꽃, 변산바람꽃과 비슷한 듯하지만 꽃잎의 크기가 크고 넓다.

한눈에도 무엇인가 다르다고 느껴지는 그 희고 잔잔한 꽃들이 숲 한켠 바닥에 깔리어 피어나면, 혹시 그 연약한 꽃이 상할까 마음 편히 땅 위에 발을 내밀기도 어렵다. 게다가 풍도에서는 개복수초(이름은 그래도 복수초보다 더 크고 풍성하다)를 포함하여 봄을 알리는 꽃들을 여럿 만날 수 있다.

더욱이 풍도바람꽃처럼 유일하게 풍도에서만 자라 이름 붙은 '풍도대극'이 빨간 잎새들 틈에서 꽃을 피워 어렵게 찾는 이를 반긴다. 말 그대로 봄 야생꽃의 낙원인 셈이다.

그런데 이 풍도바람꽃으로 유명한 이 섬도 개발의 위협을 안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정말 기적처럼 우리 곁에 나타난 이 섬의 이 특별하고도 아름다운 풀들과 자연을 영원히 고스란히 간직하고 싶은데, 개인의 불편과 기업의 입장을 무조건 외면할 수만은 없는 문제가 있다.

지난해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다수의 이익을 위한 소수, 불특정한 공익을 위한 구체적 개인의 희생이라는 문제가 떠오른다.

풍도는 바람이 부는 섬이라는 뜻이 아니고, 풍성한 섬, 풍도(豊島)이다. 식물들만 보고 사는 사람의 마음처럼 야생화도 풍성하여 풍도일까 싶은데, 이 가녀리고 아름다운 풍도바람꽃이 오래도록 풍성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만큼은 간절하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