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종 누르니 해외 방문객 북적진정한 이탈리아 전통 식단 입소문… 6가지 코스요리 불티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기차로 2시간여 걸리는 시골 마을. 아스티 기차역에서 내려 차로 20여 분을 더 달려야만 도착하는 곳에 자리한 ‘아주 자그마한’ 레스토랑 하나. 이름은 ‘이볼로냐(iBologna)’이탈리아어로는 ‘i’를 ‘이’로 발음하는데 그래서 외국인들 중에는 아이 볼로냐’로 부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레스토랑은 전세계에서 찾아 오는 미식가들로 항상 넘쳐 난다. 마을 주민이라고야 고작 1,200여명. 와인바 하나와 차를 마시는 카페 3곳을 제외하곤 유일한 레스토랑이다. 그럼 사람들이 시간과 수고를 아끼지 않으면서 이 곳 먼 걸음까지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왜?

브라이다 와이너리 인근에 위치한 이 레스토랑은 브라이다의 오너인 라파엘라의 삼촌이 운영한다. 가족 모두가 주인이기도 하면서 직원들. 뚱뚱한 몸집의 삼촌 카를로 볼로냐는 주방과 홀을 바삐 오가는 오너 셰프이고 숙모 마리우치아는 식사 시간마다 주방에서 이탈리아산 만두인 라비올리와 파스타를 만드느라 바쁘기만 하다. 가끔 홀에 나타나는 아들 베페는 주방을 전담하는 셰프.

무엇 보다 이 레스토랑은 입구에서부터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간판도 없다시피 하고 그저 길가에 들어선 조그만 건물처럼 보이기만 해서다. 밤에는 건물 바깥 조명도 흐릿해 초행길에는 찾아 가기 조차 힘들어 보인다.

더한 것은 들어서기 전 초인종을 눌러야만 한다는 사실. 아니 레스토랑 들어가는 데도 벨을 누르나? ‘일부러 그렇게 하는’ 이 레스토랑의 컨셉이라고 한다. 처음부터 ‘음식을 만들어 파는 영업’을 하는 레스토랑이라기 보다는 이탈리아의 한 시골 가정집을 방문한다는 느낌 그대로다. 그리고 그런 기분은 식사 시간 내내는 물론, 이 집 문 밖을 나서는 순간까지 계속된다.

결코 좁지는 않지만 그리 넓지도 않은 실내. 하지만 테이블 마다 이내 손님들로 채워진다. 동네 주민 손님은 물론 없다. 거의 모두 해외 방문객들. 여러 나라 언어들이 뒤섞여 들린다.

테이블에 앉으면 처음 길다란 빵을 냅킨에 싸서 갖다 놓는다. 피에몬테 지방의 전통 빵이라는데 모양이 길죽하다. 일명 ‘시어머니의 혀’. 턱 밑에 갖다 대면 길다랗게 내민 혀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잔소리가 많은’ 시어머니를 풍자한 이름이다. 얇게 굽힌 것이 비스킷처럼 바삭하고 고소하다.

본격 코스가 시작되면 가히 ‘진정한 이탈리아 전통의 식단’을 보는 듯 하다. 결코 정형적이지 않으면서도 창의적인, 또 이탈리아의 오랜 전통이 또렷이 배어 있는 음식들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식전에 먹는 애피타이저는 보통 3가지가 나온다. 우선 멜론 위에 얹은 삼겹살. 돼지 비계살을 뜻하는 ‘라르도’를 소금과 허브에 절여 약간 짭짤한 맛에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얇게 저민 삼겹살을 녹여 먹기는 처음일 듯.

생소고기를 으깨 부드럽게 만든 뒤 위에 파마산 치즈를 덮어 놓은 ‘카르네 크루다’도 생소하다. 우리 말로는 육회 정도. 여전한 핑크빛 살점은 인근 피에몬테산 싱싱한 소고기임을 말해 준다. 6개월 이상 숙성된 치즈 또한 소고기기와 맛이 잘 어우러진다. 어울리는 와인은 의외로 화이트. 붉은 육류인데도 화이트 와인이 맞은 이유는 그 부드러움 때문이지 싶다.

그리고 토끼 고기. 살짝 삶아 나오는 데 향신료는 전혀 들어가 있지 않다. 토끼 고기맛으로 토끼 고기를 먹으라는 뜻. 그러고 보니 지금 나온 세가지 메뉴 전부 별다른 양념이나 향료가 가미돼 있지 않다. 그나마 구운 것도 없고 별다르게 ‘불에서 조리했다’고 할 만한 게 없는 수준.

이유는 각각의 원재료 맛을 즐기라는 것이다. 대부분 원재료 자체가 가진 고유의 맛을 그대로 낸다. 끓이고 굽는 과정도 최소화시켰다. 그러고 보니 테이블에 후추가 전혀 없다. 후추를 갖다 달라고 하면 되돌아 오는 대답은 “음식이 맛이 없으세요?” 자못 염려스런 표정이다.

이 레스토랑에서 모든 음식은 6가지 코스로만 제공된다. 애피타이저 격인 안티파스타가 3가지, 파스타 2종류, 그리고 하나의 메인 요리, 추가로 디저트와 커피로 이어진다. 다만 메인 요리는 서너가지 음식 중에서 취향대로 고를 수 있도록 한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것은 아까 입구에 들어설 때 보였던 주방. 안 켠에서 주인인 카를로의 아내 마리우치아가 연신 파스타를 만들고 있었던 장면이다. 그녀는 식사 시간이 시작되기 전부터 밀가루 반죽을 하며 스파게티나 라비올리 등 갖가지 파스타들을 만들어낸다.

한 마디로 생(生)파스타. 손님이 주문할 때에야 반죽해 바로 삶아 내는 면 음식이다. 건조된 인스턴트 면을 삶아 내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 때문에 부드러운 질감의 파스타는 씹을수록 살갑기만 하다.

때마침 나오는 음식은 웬 만두? 하지만 모양만 그렇지 이탈리아산 만두격인 라비올리는 아니다. 라비올리는 ‘기구를 사용해 여러 개를 찍어내는 방식’으로 만들지만 이 파스타는 하나하나 만들었다. 이름은 아그노로티. 안에 고기와 야채가 듬뿍 채워져 있다.

페스토 소스와 토마토 소스를 함께 버무리고 특이하게도 ‘차가운’ 스파게티에 캐비아를 얹어 놓은 것도 경험하기 힘든 드문 맛이다.

이볼로냐의 코스요리

메인 메뉴로는 레드와인 소스에 삶아 낸 소꼬리와 허브 소스의 삶은 닭다리, 송아지 고기 등 3가지. 대부분 골고루 시키지만 결국 가장 인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소꼬리가 독차지 하기 일쑤다. 워낙 영양식인데다 ‘덩치’도 커보이고 검은색 소스가 좌르르 흐르는 것이 맛있게만 보여 서로 한 입씩 맛 보여 달라고 할 정도.

하지만 구운듯 만듯 길다랗게 저민 송아지 고기나 소스가 진해 보이는 닭다리 요리도 각각 자신만의 매력을 강하게 내뿜는다. 그런데 소꼬리, 닭다리 등 식재료들과 삶는 조리법이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요리들과 조금 닮아 있다.

사실 이들 메뉴를 항상 맛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계절별로 조금씩 바뀌는데 신선한 식재료도 쓸 겸 변화를 주기 위한 것. 하지만 어느 메뉴이든 이 집 음식의 기본과 바탕, 컨셉은 항상 그대로다.

식사하다 보면 주인장 카를로가 수시로 테이블에 다가와 설명을 곁들여 얘기를 건넨다. ‘맛 있나요?’ ‘그건 토끼고기인데…’. 반응도 볼 겸 농담과 웃음을 섞어 던지며 손님들을 챙기는 그의 방문은 식탁 분위기를 정겹게 만들어 준다.

디저트도 세가지 중 한가지를 고른다. 복숭아 두 조각과 함께 한 초콜릿 크림은 케이크처럼 보이지만 위는 바삭하고 안은 달달하다. ‘카시타’로 불리는 작은 원통 모양의 것은 일종의 밀크 케이크. 차갑지만 부드러운 아이스 케이크에 속한다.

작은 쟁반에 들어가 있는데 윗부분이 검게 그슬린 듯한 것 또한 크림. 윗 부분만 불로 태운 크림이다. 동그란 아이스크림처럼 보이는 것은 블루베리 등 과일을 차갑게 얼린 일종의 과일 셔베트격.

그리고 또 놀라운 사실 하나. 이 시골(?) 레스토랑 주방에서 일하는 일본인 직원이 두 명이다.

한 명은 벌써 10년 째 재직중이고 다른 한 명도 일한지 4년이나 됐다. 일본의 한 레스토랑 잡지는 이 집을 미슐랭 3스타급 레스토랑으로 소개하기도 했고 한 한국인은 “이탈리아 곳곳을 10여년 넘게 다녀봤지만 여기 보다 더 나은 레스토랑은 보질 못했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점심과 저녁 코스 1인당 45유로. 14030 Rocchetta Tanaro(Asti) Italy, (0141)64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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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피에몬테(이탈리아) 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