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쓰는 '사랑과 전쟁'

누구나 분노 감정을 경험하게 되지만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는가는 당사자의 인격적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누구나 타인의 분노의 대상이 될 수 있는데, 이럴 때의 대응 방식도 그 사람의 인격을 반영한다.

일반적으로 분노처럼 강한 감정은 전염성이 있어서 주변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며, 더욱이 자신이 타인의 분노를 맞게 되는 상황에서 평상심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사람들은 오랜 동물적 습성이 남아 있어서 위기 상황에서는 이성적인 반응하기 보다는 생존 본능에 의해서 반사적인 반응을 하기가 쉽다.

상대가 소리를 치면 내가 더 강한 소리를 쳐서 상대를 굴복시키려 하고, 상대가 나를 무시하는 말을 하면 일단 상대를 초라하게 만들 수 있는 더 강력한 방법을 찾아내려 한다. 이처럼 상대의 분노를 맞닥뜨렸을 때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대결구도로 이어져 그 결과가 썩 바람직하지 못하게 끝나기 쉽다.

그래서 이들은 그 결과에 대해 아쉬워하면서도, 상대가 그랬기 때문에 자신도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합리화하며, 다음에 비슷한 상황에 놓이면 같은 반응을 보이기 십상이다. 그러나 인격적 완성도가 높은 사람이라면 더 효과적인 반응을 선택할 수 있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그것의 옳고 그름이나 좋고 싫음에 무관하게 상호관계에서의 의사소통의 표현이다. 따라서 상대의 행위 자체에만 주목하지 않고 상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아내의 반복되는 분노발작은 자신을 아직도 사랑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일 수 있는데, 이를 모르는 남편이 사나운 아내를 피하려고만 하면 아내의 분노는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직장 상사의 억지 주장이 뛰어난 부하 직원에 대한 위기감의 표현이라면, 그 주장의 부당함을 지적하기 보다는 그의 뛰어난 점을 찾아서 칭찬하는 것이 상대의 자존심을 세워주면서 분노를 잠재우는 등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상대의 분노를 맞게 되면 ‘할 수 없이 싸우기’ 보다는 ‘한 발짝 물러서기’가 오히려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자신이 틀렸고 상대가 옳다고 인정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단지 상대가 화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은 상대를 화나게 할 의사가 없었다는 점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분노를 일찍 잠재울 수 있다.

그리고 나서 누가 더 옳거나 그른지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말고 상대가 무엇을 요구하는 것인지를 알아보도록 한다. 이 때에는 문제가 되었던 상황이나 주제에만 한정하여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상대와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싶지 않다는 입장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상대의 분노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때 한 발짝 물러선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지만, 상대와의 관계뿐 아니라 자신의 인격적 수준을 향상시키려면 감정적인 자극을 받았을 때 한 발짝 물러서는 훈련을 해야 한다.

때로는 부모형제가 지나친 요구를 하면서 그것을 들어주지 않으면 터무니없는 화를 내고 도리어 비난을 하는 경우도 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흔히 상대를 비난하고 죄책감을 가지게 해서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키려 한다. 이러한 타인의 부당한 요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와 적절한 심리적 독립을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상대가 하는 것에 따라서 자신의 심리적 평안 또는 부부관계가 심각한 영향을 받게 된다.

혈연가족과의 관계가 나빠질 것을 염려하여 내키지 않은 양보를 계속하더라도 결국 언젠가는 불유쾌한 상황을 맞게 되기 마련이다. 이런 때에는 자신이 책임질 것과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여 대응해야 한다. 때로는 원하지 않더라도 관계의 단절을 무릅써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때에도 자신은 관계가 회복되기를 바라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상대의 태도가 긍정적으로 변화되는 것이 우선임을 밝혀둘 수도 있다.

분노는 양 날의 칼 같아서 어떻게 쓰이는가에 따라 인간 관계를 촉진시킬 수도 있고 아주 심하게 해칠 수도 있다. 그것을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자기 반성과 훈련이 필수적이다.

박수룡 백상신경정신과 의원 부부치료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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