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셰프와 친해지기] (9) 라 싸브어 진경수 셰프한국인에 맞는 메뉴로 프렌치 정통 고수, 솔직한 서비스와 일관성은 덤

셰프의 무릎은 조용하다. 세월이 흐르고 손 아래 사람이 늘면서 움직일 일이 줄었다. 그에 반해 그의 무릎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낮은 선반과 냉장고의 아래 서랍을 향해 구부렸다 폈다, 쉴 틈이 없다. 서래마을 한 구석에서 프렌치 레스토랑 라싸브어를 운영하는 진경수 셰프다.

“아직도 요리를 하시네요?”라는 물음에 눈을 부라리며 “음식은 손끝 맛인데 직접 요리하지 않으면 오너 셰프가 아니지”라고 대답하는 그는 프렌치 요리가 한국에 뿌리내리는 과정을 처음부터 목격한 역사의 산 증인이다. 스테이크를 썰며 김치를 달라던 손님들 사이에서 묵묵히 정통 프렌치 요리와 셰프의 자존심을 지키면서 지내온 세월이 어느덧 7년이다.

오너 셰프라고 해도 직접 요리를 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음식의 어디까지 관여하나

100%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으면 자기 이름을 걸지 말아야 한다. 주방은 나와 3명의 능숙한 어시스턴트가 정확하게 역할을 분담해 꽉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 여기에 추가 인원은 필요 없다. 그래서 돈 안 받고 일하겠다는 사람도 많지만 사양한다.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역량이 되는 사람과 일하고 싶다. 홀 매니저도 나와 서비스 마인드가 일치해야 한다.

본인이 생각하는 서비스 마인드란 무엇인가

실수를 했으면 실수 했다고 인정하는 솔직함이 나의 서비스다. 이것은 반대로 말하면, 실수하지 않았으면 설령 손님이 불평한다고 해도 실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는 뜻이다. 이건 셰프의 자신감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손님은 왕이지만 우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이 자신감으로 직원들을 무장시켜야 우리의 가치관을 흔드는 손님에게 적절히 응대할 수 있다.

손님이 가치관을 흔든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음식 문화에 대해 나와 견해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프렌치 요리를 먹으면서 김치를 달라고 요구하거나, 레스토랑에 스타벅스 커피 잔을 들고 들어오는 것, 그 밖에 모든 예의에 어긋나는 태도를 말한다. 그러면 정중히 사양한다. 돈을 버는 건 물론 중요하지만 요리사의 가치관을 해치면서까지 이익을 내는 것은 의미가 없다.

김치를 달라는 손님이 정말로 있었나

그런 손님은 지금도 있다. 그래도 7년 전과 비교하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의식 수준이 높아졌다. 그때는 제대로 된 양식과 흉내만 낸 가짜 양식을 구분하는 사람도 없었고,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와인은 어떻게, 왜 마셔야 하는지까지 일일이 설명해야 했으니까.

프렌치 음식이라는 카드를 너무 빨리 들고 나온 1세대의 어려움이었다. 그때 함께 했던 손님들이 지금은 지인과 찾아 와서 나 대신 설명해준다. 아주 편해진 셈이다. (웃음)

라싸브어의 요리에는 항상 ‘정통’이라는 말이 따라 붙는다. 그래도 한국인의 색이 들어간 부분이 있지 않을까

미국과 프랑스에서 프렌치 요리를 배우고 귀국한 후 첫 2년은 고생길이었다. 처음 오픈할 때는 기고만장했다. ‘내가 만든 음식을 맛 보러 와라’하며 기세등등 했다. 장사도 잘 됐다. 당시에는 서래마을의 레스토랑 손님 대부분이 프랑스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프랑스계 기업들이 한 순간에 철수해버렸고 나는 소위 ‘쪽박’을 차게 되었다. 그때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프렌치 요리는 무엇일까를 가지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좌) 한달 동안 숙성 시킨 쇠고기 안심 스테이크와 전복 리조또

그래서 결론이 어떻게 났나

조리법을 변형하는 쪽 보다는 메뉴를 선별하는 방법을 택했다. 한식 중에도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것이 있지 않나. 프렌치 요리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음식을 변형하는 것은 내 성격과 맞지 않는다. 간을 더하고 허브를 좀 줄이는 정도로 그쳤다.

정통 프렌치를 고수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내게 융통성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 나름의 융통성을 발휘한 것이다. 곧이 곧대로 밀고 나가는 성격이 음식에 이런 식으로 반영되는 것 같다.

그럼 다른 장르의 음식을 응용하는 것도 관심이 없나

개인적으로 일식에 관심이 많아서 일식을 배운 적은 있다. 프랑스 요리의 취약점인 생선 다루기를 보완하기 위해서였다. 일본은 생선을 어떻게 먹어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 아는 나라다.

특히 남부 사람들의 생선 다루는 기술은 세계 어디에서도 따라잡을 수 없다. 여기에서 배운 지식으로 프렌치 음식을 풍성하게 만드는 정도는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들어오면서 보니 간판도 많이 낡았고 위치도 무척 외진 곳에 있다

처음엔 간판도 없었다. 어차피 내실이 중요하지 겉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손님들은 이런 솔직함에 오히려 더 신뢰를 보내는 것 같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오늘의 스테이크 두께가 내일의 스테이크 두께와 같아야 하고, 오늘의 미디엄 레어(medium rare: 고기의 굽기)가 내일의 미디엄 레어와 같아야 한다.

이건 자칫 기대하고 있는 고객들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다. 무조건 같게만 해서도 안되고 고객들의 수준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면 거기에 맞춰 같이 수준을 올려주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일관성이다. 그래도 간판은 조만간 교체하려고 한다 (웃음). 라싸브어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것으로.

레스토랑을 찾는 고객들에게 라싸브어를 100% 즐길 수 있는 팁을 제공한다면

프렌치 코스는 보통 2시간 정도가 걸린다. 의외로 프랑스 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음식을 먹는 속도는 훨씬 빠르지만 코스 사이사이에 나누는 대화가 식사 시간을 길게 만드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코스와 다음 코스 사이의 시간이 5분이 넘어가면 나리가 난다.

7 단계의 코스도 1시간 안에 끝나 버린다. 하지만 이왕 프렌치 음식을 먹을 때는 코스 사이의 텀을 즐기는 것도 좋다. 천천히 이야기도 나누고 와인도 음미하면서 말이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