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여행] 분지리

분지리에서 가장 큰 마을인 안말
우리 국토의 대동맥 백두대간이 말발굽 모양으로 빙 둘러싼 아늑한 분지에 들어앉은 산마을. 그래서 분지리라 부른다.

1970년대 초만 해도 분지리에는 90여 가구가 모여 살았다. 그들은 백화산 자락에 화전을 놓기도 하고 기름진 곰봉 평원에서 고랭지 채소밭을 일구기도 하며 부족함 없이 살아갔다.

분지리 사람들은 곰봉 평원을 거쳐 이화령에서 버스를 타고 경상도 문경으로 장 나들이도 했다. 그들을 가장 반긴 것은 연풍의 술집들이었다. '연풍 사람들에게 현찰 받고 술을 파느니 분지리 사람들에게 외상을 주는 게 낫다'고 할 만큼 경기가 좋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초, 화전민 정리 사업이 시작되면서 급격히 인구가 줄었다. 제 땅 없던 이들에게 당시의 보상금 40만원은 큰돈이었다. 그들이 떠난 국유지의 비탈밭은 낙엽송 숲으로 바뀌어갔다. 이제 분지리에는 불과 10여 가구가 남았을 뿐이다.

연풍에서 백두대간의 힘찬 마루금 사이로 뻗은 긴 골짜기를 거슬러 서서히 올라간다. 말끔한 포장도로는 어느새 비포장 흙길로 바뀐다. 분지저수지를 지나면 분지리의 첫 마을인 셋집담에 이어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왜군의 북상을 막으려고 군막을 쳤다는 도막 마을이 나온다. 잠시 더 오르면 이 자리해 있다.

흰드미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이만봉 능성
백화산 자락에서 시작해 연풍 들녘으로 흐르는 30리 분지골에는 가재가 지천이었지만 안말에 전기가 들어온 뒤부터 사라졌다. 그러나 전깃줄이 없는 안말 위쪽 분지골 상류에는 여전히 가재가 많다니, 문명과 자연은 공존하기에 너무 먼 사이인가 보다.

민초들이 희망을 심었던 땅 '흰드미'

안말 삼거리에서 흰드미로 오르는 왼쪽 길로 들어선다. 둘이서 손잡고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며 걸을 만큼 편안한 오솔길이다. 길섶에는 허리까지 자란 풀들이 무성하고 온갖 들꽃들도 환히 웃는다.

으름덩굴도 눈에 띈다. 늦봄에 엷은 자줏빛 꽃을 피우는 이 덩굴나무는 초가을마다 탐스런 으름 열매를 맺는다. 타원형으로 갈라지는 으름은 '한국의 바나나'라는 별명도 얻었다. 씨가 많아 좀 번거롭지만 그 시원하고 달콤한 맛을 텁텁한 바나나에 비길 수는 없다.

완만했던 오르막이 급경사로 휘어 돌면 흰드미가 코앞이라는 신호. 굽이진 가풀막을 잠시 헤치면 흰드미에 올라선다. 안말에서 30여 분 거리다. 분지리 맨 꼭대기에 올라앉은 이 마을은 '겨울철 흰 눈 덮인 모습이 흡사 하얗게 핀 꽃 같다'는 백화산(白華山) 턱밑에 웅크리고 앉아 있어 흰두뫼, 흰드뫼 등으로 불리다가 흰드미로 바뀌었다.

흰드미에는 이제 빈집만 남았다
흰드미는 산 높고 골 깊은 산비탈이지만 땅이 넓고 기름져 옥수수든 감자든 콩이든 팥이든 심는 대로 풍작이었다. 그래서 삶에 지친 민초들이 희망을 심는 땅이었다. 그들은 아침 해가 산등성 위로 고개를 들 때부터 저녁 어스름이 연풍 들녘에 깔릴 때까지 땀으로 범벅된 채 이랑을 팠다. 그러다가 자식들에게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아도 될 만큼 살림이 피면 산을 내려갔다. 그 빈자리는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한 희망의 공간으로 남겨졌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서서 본격화된 화전민 정리 사업으로 하나둘 이곳을 등졌다. 이에 굴하지 않고 외롭게 땅을 일구던 홍태식 할아버지 내외가 1990년대 중반 산에서 내려오자 흰드미는 지도에만 이름을 남긴 빈 마을이 되었다.

옹달샘과 아름드리 밤나무가 역사 말해주고

밥 짓는 연기가 사라진 지 이미 15년. 부뚜막에 걸린 가마솥, 마루 밑에 흩어져 놓인 검정 고무신, 마당 한구석에 나동그라진 녹슨 경운기 등이 안말로 내려간 홍 할아버지를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는 듯하다.

홍 할아버지의 옛집 쪽마루에 걸터앉아 상념에 젖는다. 백두대간을 등지고 앉은 마을이면서 길고 깊은 골짜기 앞으로도 백두대간이 펼쳐진다. U자를 그리는 백두대간의 한쪽 마루금에 기대앉은 형국인 이곳에서 백두대간은 뒷동산이면서 앞마당이기도 하다. 흡사 봉황이 날개를 편 듯한 기막힌 지형이다.

빈집 뒤꼍에서는 아직도 옹달샘이 솟는다
홍 할아버지 옛집 뒤꼍에서는 3대에 걸쳐 갈증을 씻어준 옹달샘이 솟는다. 달고 시원하다. 옹달샘 위에는 정화수를 담은 물그릇이 여전히 놓여 있고 수백 년 묵은 밤나무가 우뚝 서서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다.

보살펴주는 이 없어 알은 작지만 고소한 밤 맛은 예전 그대로다. 이밖에도 흰드미 일원에는 아름드리 밤나무들이 호위병인 양 빙 둘러 서 있다. 그러나 그들, 사라진 오지 마을의 산증인들로부터 아무 말도 들을 수는 없다.

찾아가는 길

영동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연풍 나들목을 거쳐 연풍면으로 온다. 천주교 박해 때 신자들이 학살되었던 연풍 성지 앞에서 6.5㎞ 남짓 달리면 분지리 안말이다. 도중 첫 번째 갈림길에서 분지저수지 방면 왼쪽 길로 들어온다. 안말의 백화산 등산로 안내판 앞에서 좁은 찻길로 직진하면 주등산로로 이어지고, 왼쪽 다리를 건너면 흰드미로 가는 오솔길이 열린다. 대중교통은 동서울 터미널에서 괴산행 직행버스를 탄 뒤에 연풍행 버스로 갈아탄다. 연풍에서 2시간쯤 걸으면 안말에 이른다.

맛있는 집

느티울집의 민물매운탕
괴산군 칠성면 두천리의 느티울집(☎043-832-3419)은 잡어, 메기, 쏘가리 등을 이용한 매운탕 등으로 유명한데 특히 쏘가리매운탕이 별미다. 알맞은 크기의 쏘가리를 말끔하게 손질해 급랭해놓고 야채와 함께 냄비에 끓이는 것이 특징이다. 활어를 즉석에서 다듬어 끓이는 방법으로는 일시에 몰려드는 단체손님들을 소화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쏘가리는 급랭해도 맛이나 육질이 그다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주인의 말이다. 매운탕에 들어가는 야채의 대부분은 식당 뒤편 넓은 텃밭에서 직접 재배하며 된장과 고추장도 직접 담근 것을 사용한다.



글∙사진 신성순 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