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고 크고 만만한 이마트ㆍ믹존스ㆍ핀치페니 등 인기

이마트 피자
얼마 전 웹 상에서는 한 밤중의 트위터 설전이 벌어졌다. 나우콤 문용식 대표가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에게 "슈퍼 개점해서 구멍가게 울리는 짓이나 하지 말기를…그게 대기업이 할 일이니?"라고 보낸 것이 시작으로, '반말 한 건 오타니?', '오타 아니거든', '반말이 의도적이라니, 네 프로필 검색하니 그럴 만도 하다', '네 덕에 팔로워 늘었다. 고맙다' 등 대화가 '현피' 직전의 고등학생 수준으로 이어졌다.

문제의 핵심은 대기업과 중소상인의 갈등이지만 시작은 지난 7월 이마트에서 새로 출시한 피자 때문이다. 현재 이마트 29개 점포에서 점당 하루 평균 300~400개씩 팔리고 있는 이 피자는 직경 18인치(약 45cm)에 단돈 1만 1500원으로 동네 피자 가게를 다 잡아 먹을 것이라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피자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됐지만 1900년대 초 미국으로 건너 간 이후 꾸준히 미국물이 들어 지금은 미국만의 피자 스타일이 확고해졌다. 이탈리아 피자가 의자에 앉아 와인과 함께 먹는 요리라면, 미국 피자는 콜라를 곁들여 5분 만에 해치우는 패스트 푸드의 느낌이 강하다.

전자가 얇고 바삭한 도우 위에 치즈, 토마토, 바질만을 올린 슬림한 음식이라면(물론 이탈리아인들은 혼자 한 판을 다 먹지만), 후자는 두꺼운 빵 위에 페퍼로니, 치즈, 소시지, 고기 등을 아낌 없이 듬뿍 올린 뚱뚱한 음식이다.

크기와 부피로 따지면 미국 피자가 거의 2배 수준. 국내에 처음 들어온 피자는 아메리칸 스타일에 가깝지만 그 후 화덕에서 구운 이탈리안 피자가 대세를 이루면서 미국식은 '돼지 피자'라는 오명을 쓰고 잠시 물러나 있었다.

핀치페니 콤보피자
그러나 의 등장에 맞춰 아메리칸 피자가 다시 돌아왔다. 불쑥 생각나면 사 먹을 수 있을 만큼 싸고, 먹다 지칠 만큼 크며, 셰프의 손길 대신 기계의 무성함이 느껴지는, 끄트머리의 도우를 남겨도 별로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이른바 막 굴리는 피자의 시대다.

피자 1조각이 사람 얼굴만 해요!

화덕에서 구운 이탈리안 피자만이 오리지널인 것처럼 여겨질 때에도 꾸준히 미국 피자의 명맥을 이어가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미국 대형할인점 체인 코스트코 피자다.

피자뿐 아니라 케이크, 식용유, 카트까지 초대형만 취급하는 이곳의 피자는 지름 45cm에 두꺼운 빵, 짜디짠 양념, 아낌 없는 재료, 빠른 주문, 저렴한 가격(1만 2500원) 등 미국 피자의 모든 덕목을 갖추고 있다.

거품을 쫙 빼고 기본에 충실한 코스트코 피자는, 샐러드 바, 어줍잖은 새우 토핑 등 다양한 수법으로 비싼 값을 받아 먹는 국내 피자에 질린 이들의 절대적인 호응을 받아 왔으며, 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도 했다.

믹존스 피자
최근 아메리칸 피자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코스트코 외에도 몇 군데 생겨났다. 압구정동의 는 7월 초 문을 연 이후 단 몇 달 만에 점포 수를 4개로 늘렸다.

매장은 먹으러 오는 사람과 사러 오는 사람들로 식사 시간 외에도 북적거린다. 가게 앞에서는 종종 피자를 사가는 사람들과 마주치는데 양 팔로 껴안기도 버거울 만큼 큼지막한 박스는 다른 어떤 광고보다 강력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을 자극한다.

"우리도 아예 한 박스 사서 차에 놓고 먹을까?"

는 뉴욕 스타일 피자를 표방한다. 팬 피자보다는 얇지만 이탈리아 피자보다는 두꺼운 도우 위에 페퍼로니면 페퍼로니, 버섯이면 버섯, 1~2 종류의 재료만 심플하게 올렸다. 한 조각에 2900~3000원 대. 음료수를 포함해도 4000원 대에 한끼를 해결할 수 있다.

"제가 생각하는 피자 맛있게 먹는 법은 이래요. 집에 가는 길에 피자 가게를 발견하고 주머니를 뒤져 잔 돈을 찾아내서 피자 한 판을 주문하는 거예요. 5분 안에 포장돼서 나오는 피자를 들고 집에 가서 TV를 튼 뒤 소파에 늘어져 큼직한 피자를 한 조각 꺼내 먹는 거죠. 맥주 아니면 콜라랑 같이요. 먹다가 지치면 한 켠에 밀어 놨다가 나중에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든지 아니면 식은 채로 먹어도 좋고요."

핀치페니 피자
믹존스 김종수 대표는 마치 떡볶이나 붕어빵처럼 격식을 차리지 않고, 없는 형편에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피자를 원했다. 다만 푸석한 빵 같은 도우를 싫어하는 한국인들 입맛에 맞춰 얇고 쫄깃한 도우를 쓰고 짠 맛을 줄였다.

진짜 뉴욕 피자가 화덕에서 구워 토핑은 타고 빵은 이가 아플 정도로 딱딱한 터프한 스타일이라면, 는 한국식으로 얌전하게 바꾼 뉴욕 피자다. 배달은 안 되며 홀 피자의 가격은 1만 7300~1만 9700원이다.

송파구 방이동 시장에 있는 핀치페니는 줄 서서 먹는 피자로, 광고 하나 없이 유명해졌다. 외부 사람이 유입되는 번화가도 아닌, 인근 주민들만 오고 가는 시장 한복판에 자리 잡은 이 가게에서는 치즈, 페퍼로니, 콤보, 3가지 맛의 피자를 판다. 가격은 1만 4,500원으로 동일하며 한 조각은 2800원이다.

크기나 도우의 두께, 토핑의 양에 있어서 코스트코 피자와 가장 흡사한 스타일로, 내부에는 양파 그라인더가 있어 코스트코에서 파는 핫도그와 똑같이 핫도그를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짜고 향이 강해 콜라를 두 컵씩 비우게 만드는 코스트코 피자에 비하면 짠 맛이 적고 토핑이 알차게 들어 있어 주민들뿐 아니라 먼 곳에서 원정 오는 사람들로 가게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는 경우가 많다. 현재는 방이동 시장 한 곳에만 가게가 있지만, 시장과 번화가를 위주로 가맹점이 늘어날 예정이라고 한다.

믹존스 머쉬룸 피자
피자가 한국의 소울 푸드?

마지막으로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모든 면으로 접근이 가능한 를 들여다 보자. 재미있는 것은 가 처음 출시됐을 때 이탈리안 피자라는 문구로 홍보를 했다는 사실이다.

"그냥 라고 생각해 주세요."

이마트 홍보실 황종순 씨는 아메리칸 스타일에 가깝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답했다.

"싸고, 양 많고, 맛있고. 서민들이 많이 찾는 유통업체의 본분에 가장 충실한 피자예요. 어떤 나라 스타일이라기보다는 그냥 마트 피자죠. 시중에서 판매되는 피자의 가격 대비 원가는 30~40% 수준이에요. 여기서 거품을 빼고 기본에 주력한 것이 의 강점이에요."

서민들의 피자를 자부하는 는 사실 토핑의 양에서 살짝 실망을 안겨준다. '아낌없이 팍팍'이라는 초대형 피자의 넉넉함에 어울리지 않게 재료의 사용이 인색하기 짝이 없다.

한 블로거의 분석에 따르면 코스트코 피자의 토핑과 비교했을 때 양이 1/2에서 1/3 수준이다. 페퍼로니도 듬성듬성, 심지어 값싼 햄으로 대체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짠 맛보다는 단 맛이 강하고, 도우가 퍽퍽하지 않고 촉촉하며, 불고기 양념이 제대로 돼있는 등 한국인들의 감성에 부합하는 부분이 많다.

한 소비자는 맛에 대해 박한 평을 하면서도 계속 를 사먹을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마트에 시장 보러 나왔는데 아이들이 피자를 먹고 싶다고 조른다면 전 또 를 살 것 같아요. 간편하게, 단 한 판으로 온 가족이 배부를 수 있는데 맛의 세세한 차이가 중요하겠어요?"

현재 는 30분에서 많게는 2시간씩 기다려야 할 만큼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마트 측은 피자 매장을 전 점포의 60~70%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나의 음식이 한 민족의 문화 속으로 완전히 흡수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취향이 더해지고,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만들어지고, 음식이 속한 풍경을 그릴 수 있으면, 그 음식의 타국 적응기는 끝난다.

미국 스타일로 시작해 다시 미국 스타일로 돌아오는 동안 한국의 피자는 민족의 감성과 입맛을 담은 한국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쯤 되면 외국에 나가 한국 피자를 그리워하는 날이 곧 오지 않을까?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