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엔 카푸치노, 점심엔 에스프레소, 저녁엔 디카페인

따사로운 햇살 아래 한 잔의 커피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전용 머신으로 뽑아낸 진한 에스프레소와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부드러운 카페라테는 커피 전문점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러나 이제 굳이 커피 한 잔을 위해 문 밖으로 나가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게 됐다.

최근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 티백 커피, 드립백 커피 등이 나오면서 집에서도 손쉽게 원두 커피를 만들어 마실 수 있는 홈카페 시대가 막을 열었다.

여기에 약간의 품을 더하는 것만으로 에스프레소뿐 아니라 카페에서 막 만든 듯한 화려한 비주얼의 배리에이션 커피도 즐길 수 있게 됐다. 거품이 넘칠 듯한 , 이름마저 달콤한 캐러멜 마키아토, 얼음이 서걱서걱 씹히는 프라푸치노 등등.

"아침은 에스프레소 더블샷을 넣은 로 시작합니다. 일과 중에는 설탕을 약간 넣은 에스프레소를, 저녁에는 디카페인 커피로 마무리하죠."

그러나 모든 커피에는 TPO가 있는 법이다. 네스프레소 CEO 로스 가타의 커피 마시는 방식은 인체의 바이오리듬을 고려한 커피 마시기의 정석에 가깝다. 아침과 점심, 저녁 시간에 어울리는 커피를 알아보자.

카푸치노
아침을 든든하게, 식사 대용 3총사 '카페라테--마키아토'

이탈리아인들은 우유를 넣은 에스프레소 한 잔으로 아침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속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우유와 잠을 물리쳐주는 커피의 조합은 훌륭한 아침 파트너다. 현지인들에게 우유 커피는 거의 아침 한정 메뉴인데 오전 11시 이후에도 카페에서 를 마시고 있는 사람은 관광객으로 봐도 무방하다.

가장 인기 있는 모닝 커피 3총사는 역시 카페라테와 , 그리고 마키아토다. 세 커피의 차이점은 거품의 양인데 카페라테<마키아토< 순으로 거품이 많다.

카페라테는 달고 부드러운 믹스 커피가 유전자에게 새겨진 한국인들에게는 에스프레소와 친해질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첫 계단이다. 만드는 방법도 제일 쉽다. 에스프레소를 추출해 컵에 담고 거기에 데운 우유 또는 약간 거품을 낸 우유를 커피의 약 3~5배 분량으로 부으면 끝.

캐러멜과 함께 붙어 다녀 달콤한 커피의 대명사로 인식되는 마키아토는 사실 그냥 우유를 넣은 커피다. 카페라테보다는 거품의 존재가 확실하고 보다는 거품이 덜 들어가기 때문에 '꼬마 '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마키아토는 원래는 큰 컵에 배부르게 마시는 게 아니라 작은 잔에 넣어 마시는 커피다.

체스트넛 커피
에스프레소에 데운 우유를 붓고 그 위에 우유 거품을 스푼으로 살짝 얹은 모습이, 커피 위에 우유로 점을 찍은 것처럼 보인다 해서 마키아토(Macchiato: 점을 찍다)라는 이름이 붙었다.

가장 많이 마시는 캐러멜 마키아토는 컵에 캐러멜 소스와 데운 우유를 차례로 넣고 에스프레소를 우유 중앙에 잘 부어 넣은 다음, 고운 우유 거품을 스푼으로 올리면 완성된다. 거품 위에 캐러멜 소스를 지그재그로 장식해주면 더 기분이 난다.

이제 풍성한 거품 마니아들을 위한 차례다. 라는 이름은 이탈리아어로 가톨릭 프란체스코 파의 수도사라는 뜻인데, 프란체스코 파의 카푸친회 수도사들의 모자 모양이 봉긋 솟아올라온 거품과 비슷하다고 해서 명명되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확인된 바는 없다. 의 생명은 거품. 우유 거품의 양에 따라 드라이 와 웨트 로 나뉘는데 드라이가 거품이 더 많은 쪽이다. 원래 이탈리아에서는 웨트 가 정석이지만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맛이 연해지고 거품의 양도 더 늘어났다.

한국도 역시 거품파로, 에스프레소에 데운 우유를 넣고 여기에 거품을 풍성하게 올려서 만든다. 커피와 우유와 거품의 양은 기본적으로 1:1:1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3:2까지도 괜찮다.

오렌지주스 커피
뽀얗게 올라온 거품 위에 계피 가루를 솔솔 뿌려주면 향과 모양이 더 살아난다. 여름에 더워지면 얼음·우유·에스프레소 2샷의 순으로 컵에 담은 후 위에 거품을 올려주면 아이스 를 즐길 수 있다.

우유 거품은 전동 우유거품기 또는 프렌치 프레스로도 만들 수 있지만 요즘에는 에스프레소 머신에 스팀 노즐이 장착돼 있는 모델이 나와 있어 더 편해졌다.

캡슐커피 브랜드 네스프레소의 '라티시마'에는 우유 거품 기능이 설치돼 있어 원터치로 풍부한 거품을 만들 수 있다. 독일 치보사의 캡슐 커피머신 '카피시모' 역시 스팀 노즐로 카페라테를 비롯한 각종 배리에이션 커피를 만들 수 있다.

정신이 번쩍, 점심에는 진한 에스프레소

식곤증이 극에 달하는 봄. 한 잔의 진한 에스프레소는 졸음을 확 달아나게 하는 고마운 동료다.

모든 배리에이션 커피의 기본이자 커피의 심장인 에스프레소는 이미 알려진 바대로 익스프레스(express)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갈은 원두를 단시간에 추출하는 이 급행 커피는 마시는 방식도 급행으로, 이탈리아에서는 작은 에스프레소 잔을 들고 찔끔찔끔 마시는 게 아니라 한 입에 싹 털어 넣는다. 공기를 압축하여 짧은 순간에 커피를 추출하기 때문에 카페인의 양이 적고 커피의 순수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초콜릿 향이 그득한 카페 모카도 점심 커피로 좋은 선택이다. 초콜릿의 카페인은 커피의 각성 효과와 만나 기운을 북돋는 효과가 있으며, 특유의 달콤한 맛은 식사 후 습관적으로 단 것을 찾는 사람들에게 디저트 역할을 한다. 로스 가타 CEO가 점심 커피에 설탕을 첨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카페 모카는 커피 품종 중 초콜릿 향으로 유명한 예멘 모카를 따라 하다가 만들어졌다. 비싼 예멘 모카를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커피에 초콜릿을 넣어서 마시기 시작한 것. 컵에 초콜릿 시럽을 한 스푼 넣고 에스프레소를 부어 잘 섞은 뒤 데운 우유를 넣고 고운 우유 거품을 얹으면 된다.

거품 대신 휘핑 크림을 얹고 그 위에 초콜릿 시럽이나 부순 견과류 등을 얹으면 출출함이 느껴지는 3~4시경 공복감을 해소할 수도 있다.

상큼한 맛을 원할 경우 커피에 오렌지 주스와 얼음을 섞은 오렌지 아이스 커피도 좋다. 에스프레소보다 조금 연한 룽고 커피(lungo: 오랜 시간 추출한 에스프레소로 양이 많고 맛이 연하다)에 설탕 약간과 오렌지 주스 1스푼, 그리고 얼음을 첨가하면 과일 특유의 새큼한 맛이 커피와 어우러져 생기 있는 오후를 만들어 준다.

불면 없는 밤, 디카페인 커피

"진한 커피가 잠을 못 자게 한다는 건 큰 오해입니다. 숙면 여부는 커피의 진함 여부가 아니라 카페인의 유무가 결정합니다."

네스프레소 마케팅 박성용 팀장의 말처럼 괜한 플라시보 효과로 뜬 눈으로 밤을 지새는 일이 없기 위해서는 카페인을 체크해야 한다. 숙면을 취해야 하는 저녁 시간에는 커피의 맛과 풍미는 그대로 살리면서 97% 이상 카페인이 제거된 디카페인 커피가 제격이다.

대부분의 캡슐 커피에는 디카페인 제품이 포함돼 있어 편하게 선택하면 되지만, 일부 디카페인 커피 중에는 카페인 성분을 제거하기 위해 화학약품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반드시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화학약품 대신 원두를 물로 씻어내 카페인 성분을 제거한 제품을 고르는 것이 좋다.

이밖에 풍성한 저녁 식탁을 달콤하게 마무리해줄 아포가토나 카페 코레토도 있다. 아포가토는 커피에 동동 떠 있는 아이스크림의 모습을 묘사한 '빠지다, 침몰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꽁꽁 언 바닐라 아이스크림 주변에 진한 에스프레소를 부으면 간단하게 완성된다. 녹기 전에 빨리 먹는 것이 좋지만 취향에 따라 커피를 잔뜩 붓고 아이스크림을 띄워 반쯤 녹여가며 먹기도 한다.

카페 코레토는 첨가물이 들어간 커피를 뜻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술을 넣은 커피를 이르는 말이다. 맥주나 소주가 아닌 칵테일에 쓰이는 리큐르를 넣는데, 잔에 에스프레소와 그의 10분의 1 분량의 리큐르를 넣어 섞고 위에 휘핑 크림을 띄워 마시면 된다. 소량의 알코올이 소화를 돕고 몸의 긴장을 노곤하게 풀어주기 때문에 저녁 식사 후 마시면 더없이 좋다.

참고서적: <루디's 커피의 세계, 세계의 커피>, 김재현, 스펙트럼북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