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 사기냐 과학이냐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창
뭐든 만든다던 원소변환설
18c 라부아지에가 뒤엎어

자연의 원리 알고자 하는 학문적 욕망 간절했어도
결국 비금속-황금 불가능

플라스크·증류기 등 현재 사용되는 실험장비들
연금술사 실험실서 유래설

산(酸)은 금 만들려다 탄생
수은 사용하다 독성 발견도

근대 물리학의 아버지 아이작 뉴턴. 한평생 연구에만 매진했던 뉴턴의 취미(?)는 연금술이었다. 혹자는 뉴턴이 물리나 수학보다 오히려 연금술에 더 많은 열성을 쏟았다고 이야기한다.

연금술은 철, 구리, 납 등으로 황금을 만들어내는 신비한 기술을 말한다. 현대인들의 시각에서는 마법이나 점성술과 다를 바 없는 주술적 산물로 여겨진다. 그런데 도대체 왜 뉴턴을 비롯한 여러 저명한 과학자들이 스스로 연금술사가 되기를 자처했을까? 황금에 눈이 멀어서? 혹시 과학자들 가운데 몇몇은 진짜 연금술을 터득해 남몰래 생활의 궁핍함을 벗어난 것은 아닐까?

검은 땅의 기술

연금술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다. 학계에서는 대체로 기원전 2~3세기 무렵 이집트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집트에서 태동한 연금술은 그리스어를 쓰는 지역으로 전파됐고 시리아를 거쳐 페르시아로 전해졌다. 이슬람교를 믿었던 페르시아는 7~8세기 연금술의 중심지였고, 유럽은 12세기에 학자 사이에서 연금술이 유행했다.

근대 화학이 성립하기 이전까지 수천 년 이상 세계 각지에서 연구된 연금술은 근대 화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18세기 프랑스 화학자 앙투안 로랑 라부아지에 의해 입지가 흔들렸다. 생명 자체가 하나의 화학적인 과정이라고 말한 라부아지에가 연금술의 이론적 근간이었던 원소변환설을 완전히 뒤엎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창한 이래 정설로 받아들여진 원소변환설의 핵심은 특정 물질을 이루고 있는 원소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다른 물질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흙, 물, 불, 공기를 특정하며 이들 4가지 원소의 비율만 다르게 섞으면 어떤 물건이든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당시 사람들은 물을 끓이고 난 다음에 생긴 흰색의 침전물이 흙이라고 믿었다. 사실은 물을 끓인 용기의 내벽이 녹아서 생긴 부산물이었지만 물이 흙으로 변했다며 원소변환설의 증거로 받아들였다. 마찬가지로 돌에 어떤 특별한 자극을 가하면 금으로 바꿀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또한 이런 전화 현상에 관여하는 특별한 근원물질이 존재한다고 여겼는데 연금술사들은 근원물질의 유력 후보 중 하나로 수은을 꼽았다. 땅속의 수은이 황금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하지만 라부아지에가 1783년 6월 실험장치를 제작, 최초의 물 분해에 성공하면서 물은 단일 원소가 아니며 산소와 수소의 화합물이라는 사실이 증명됐다. 당연히 원소변환설의 모든 가설도 이때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바꿔 말해 라부아지에의 물 분해 실험 이전까지 과학계는 원소변환설을 지지했고 그 가설에 따라 연금술도 가능하다고 판단, 갖가지 실험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자연의 수수께끼

연금술사들은 일반적으로 금속을 제련하는 사람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제련 전문가들이 실용적인 것을 추구한 반면 연금술사는 자연의 수수께끼에 큰 흥미를 느꼈다. 과학을 수행하면서도 마치 철학자와 같은 자세로 실험실에 틀어박혀 수수께끼를 풀고자 분투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값싼 금속을 황금으로 바꾸는 방법에 주목했을까. 연금술이 자연의 수수께끼와 무슨 연관이 있다고 여긴 걸까. 연금술 역시 과학과 유관한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에게 금속을 황금으로 바꾸는 비법은 곧 자연 만물의 성질을 아는 일과 일맥상통했다. 황금으로 부자가 되겠다는 세속적 욕망보다 자연의 원리를 알고자 하는 학문적 열망이 먼저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유야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연금술사들의 고된 작업은 모두 허사로 돌아갔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그들의 가설 중 많은 부분은 오류로 판명됐으며, 금과 비슷한 것이라도 만들어냈다는 얘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첨단을 걷는 현대과학조차 '아직은' 비금속을 황금으로 변환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항간의 미스터리 신봉자들은 누군가 그 비법을 알아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단지 우리의 소망일 뿐이다.

근대 과학의 씨앗

오늘날 연금술은 과학과는 거리가 먼 사기로 여겨진다. 그러나 당대의 연금술사들이 행한 연구가 모두 무의미했던 것만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현대 과학의 근간이 연금술 속에서 움텄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벤저민에 따르면 연금술사들은 주로 7가지 금속을 다뤘다. 그리고 그 금속들은 행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믿었다. 금은 태양, 은은 달, 철은 화성, 수은은 수성과 연결시키는 식이다. 이는 각 금속의 색깔 등과 유관한 해석이다. 허무맹랑한 발상이지만 이런 가정을 바탕으로 연금술사들은 나름의 화학기호(?)를 만들기도 했다.

또한 현대에 사용되는 여러 실험 장비들이 연금술사의 실험실에서 기인됐다는 얘기도 있다. 부피 측정·반응·증류 등에 사용되는 플라스크를 비롯해 깔때기, 여과기, 막자사발 등 우리에게 친숙한 도구들이 여기에 속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들에게 가강 중요했던 도구는 증류기다. 당시의 증류기는 긴 부리를 가진 새가 쪼그려 앉아 있는 것과 유사한 모양이었다고 한다. 이 도구들은 현대 과학자가 사용하는 정교하고 편리한 실험도구와는 많이 달랐지만 결과적으로 인류 화학기술 발전에 상당한 도움을 줬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학자는 거의 없다.

연금술사는 갖가지 실험 장비 외에 기묘한 화학물질을 조합해내기도 했다. 일례로 산(acid) 역시 황금을 만들려다 발견한 물질이다. 산은 물질을 분해하는 성질이 강해 순수한 원소의 분해에 지금도 유용하게 쓰인다. 학문으로서는 근대적 형태를 갖추지 못했으나 기술적 측면에서는 과학 발전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 연금술사 개인을 놓고 봤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니콜라 비트코프스키는 저서 '딴짓의 재발견'에서 뉴턴 역시 연금술에 대한 끈질긴 연구를 통해 물리와 수학에서 위대한 성과를 이뤘다고 강조한다. 뉴턴은 우주의 신비를 얼마든지 해독할 수 있다고 믿었고 연금술도 그 일환이었다는 얘기다.

무려 30년 동안이나 밤을 지새우며 원소변환설을 검증하려 애썼다는 뉴턴. 그가 연금술과 관련해 기록한 자료는 자그마치 노트 세 권 분량에 이른다고 한다. 또 그는 연금술 실험을 위해 다량의 수은을 사용하다가 수은에 독성이 있다는 사실을 몸소 발견하기도 했다.

연금술은 뉴턴의 다른 연구, 특히 광학 연구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광학에서 그는 프리즘을 사용, 태양의 백색광을 스펙트럼 단색광으로 분해한 뒤 다시 프리즘으로 단색광을 재합성하면 원래의 백색광이 된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는 연금술의 기본 원리와 밀접하다.

반면 뉴턴이 연금술을 위시한 신비주의에 사로잡혀 일찍이 현실감을 잃어버렸다는 기록도 있다. 오랜 시간 동안 발 하나는 중세 과학에, 다른 발은 근대 과학에 딛고 선 양다리(?) 뉴턴은 말년에 불면증, 편집증, 위장장애 등에 시달리다 5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영원한 신비주의

16세기로 접어들며 황금 대신 불로장생약을 만들려는 시도가 생겼다. 의사로서 의화학(醫化學)의 시조로 불리는 스위스의 파라켈수스. 그와 신봉자들은 연금술의 효용은 황금이 아닌 영약을 만드는 데 있다고 주창했다. 이러한 의화학 사상이 널리 전파되면서 연금술사들도 자연히 인간의 병을 고치는 의약 연구에 힘을 쏟게 된다.

파라켈수스는 자연에서 생겨난 광물 등이 인체에 침투해 병이 생긴다고 주장했으며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화학약품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갖가지 실험적 방법을 동원해 많은 의약품을 개발했다. 말하자면 그는 연금술에서 근대 화학으로 이어지는 과정의 교량 역할을 했던 셈이다.

그러나 17세기부터 근대 화학이 발전했고, 19세기 들어 화학적 방법으로 황금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연금술은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났다. 이때부터 연금술은 신비주의, 초자연주의를 넘어 혹세무민의 전형으로 몰락했다.

이에 대해 1920년대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 구스타브 융은 연금술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제시했다. 그는 연금술 문헌에 나오는 수많은 상징적 표현들이 정신병 환자의 꿈속에 나타나는 이미지와 유사하다고 밝혔다. 연금술의 실체는 다름 아닌 집단무의식의 산물이라는 주장이다.

보잘 것 없는 금속으로 황금과 불로장생의 영약을 만들겠다는 연금술. 융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는 아직까지 이 집단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우리가 모르는 괴짜 연구자가 연금술의 실현을 위해 고집스레 연구에 매진해주길 바라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소란기자 psr@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