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세대들의 향수가 이끌었던 복고문화의 거센 흐름이 8090세대들의 추억으로 진화하고 있다. 금년 초, 영화 <댄싱퀸>이 80년대 디스코와 시위정국이라는 시대적 문화코드를 절묘하게 섞어 성공을 거두더니 90년대 히트 가요들이 넘쳐나는 영화 <건축학개론>이 복고문화의 새로운 흥행코드가 90년대 X세대로 진화했음을 흥행성적으로 증명했다.

영화 <건축학개론>에는 남성듀엣 <전람회>의 명곡 '기억의 습작'을 비롯해 다양한 90년대 히트 가요들이 강력한 흥행요소로 유감없이 힘을 발휘했다. 영화 속에는 <공일오비>의 '신인류의 사랑',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 등 90년대 청소년들이 애청했던 히트곡들이 무수하게 흘러나온다. 또한 이제는 사라진 삐삐, 무스, 휴대용 CD플레이어 등 90년대를 추억시키는 추억의 장치들이 영화 전반에 걸쳐 시시각각 등장해 향수를 자극한다.

1990년대에 청소년시기를 보낸 세대들도 이제 가정을 꾸리고 삶의 고단함을 알아갈 30대로 접어들었다. 7080시대가 완벽한 아날로그 시절이라면 90년대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급속하게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사실 90년대 대중음악을 재조명하는 분위기는 오래 전부터 무르익어왔다. 각종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경쟁적으로 90년대의 명곡들을 리메이크하기에 몰두하지 않았던가. 90년대는 한국 대중음악사상 최대 활황기로 불린다. 그 시절을 랩 댄스 천하로만 오해하는 대중은 많지만 실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공존했었다. 랩 댄스 열기가 탱천했던 1993년, 김동률, 서동욱 두 청년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비범한 멜로디 유려한 가창력

1993년 대학가요제에서 '꿈속에서'란 노래로 대상을 수상한 <전람회>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피아노와 베이스 기타라는 단출한 구성으로 들려준 편안하고 감성적인 노래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패턴과 호소력 짙은 감수성으로 무한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랩 댄스에 질려 있던 팬들의 갈증을 풀어준 <전람회>의 1집이 1994년 발표되었다. 순진무구했던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애틋한 정서로 솔직하게 드러낸 삶의 단상들. 그리고 비범한 멜로디와 유려한 가창력은 단연 발군이었다. 당대의 신세대들은 랩 댄스와 레게의 화려한 시각적 이미지와 신나는 비트에 열광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 지성과 감성의 조화로 가득 찬 전람회의 고급스런 분위기의 음악은 그 뜨겁고 화려했던 트렌드와 한판 대결을 벌이며 청취자들을 잔잔하게 빠져들게 했다.

90년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기억의 습작'은 김동률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코드가 바뀌며 흘러나오는 트럼펫 솔로까지 감정의 극대화를 안겨준 명곡으로 손색이 없다. 선율의 흐름이 인상적이었던 '너에 관한 나의 생각'도 기타연주가 주도해야 할 리듬을 건반으로 이끈 독특한 편곡과 탁월한 멜로디가 전해주는 감흥이 탁월했다. 키를 자유자재로 전환하는 감각이 상당한 신해철과 듀엣으로 노래한 '세상의 문 앞에서', 두 멤버가 화음을 구사한 '그대가 너무 많은', 두 사람의 대화가 인상적인 스윙 리듬의 '여행', 재즈적 감성의 '삶', 서동욱이 습작한 글을 보고 단 5분 만에 작곡한 즉흥곡 '하늘 높이', 나지막한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향수'등 모든 트랙들은 전람회 1집을 90년대의 명반으로 견인했다.

전람회는 '김동률'과 '서동욱'으로 이루어진 보컬그룹이지만 창작과 건반연주에다 노래까지 도맡았던 탁월한 싱어송라이터 김동률의 음악적 포지션에 비해 상대적으로 서동욱의 역할은 왜소해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사랑받으며 활동하고 있는 김동률의 독집에 만족하지 못하고 <전람회>의 음악을 그리워하는 팬들이 이처럼 많다는 것은 서동욱의 역할이 그저 보조적인 것으로 간과할 수준이 아님을 웅변한다.

X세대 감성 자극 돋보적

피아노가 주도하는 선율과 클래식 화성에 접근한 발라드 명반인 전람회 1집은 비록 설익은 데뷔작이었지만 동시대 X세대들의 민감한 감성을 건드리는 표현력만은 독보적이었다. 또한 대중음악의 파급력이 단지 인기와 화려함만이 전부가 아님을 이들의 노래를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에 들어도 떨려오는 가슴이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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