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비트·전통 장단 어우러져 수컷 냄새 가득

정차식의 음악은 과거와 현재가 뒤섞어 전혀 새로운 형태로 미래를 제시한다. 전통 가락, 트로트, 블루스, 탱고, 록, 전자음악, 왈츠 등 이질적 음악 장르가 다양한 형태로 뒤섞여 독특하고 낯선 그만의 어법으로 재탄생되기 때문이다.

용서를 비는 자조적 회한으로 채색된 1집과 달리 2집은 수컷 냄새가 진동하는 날것 그대로의 욕망으로 가득하다. 욕망을 향한 낭만과 감정이 과잉 적으로 표출된 퇴행적 사운드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은 매력적이다. 2집의 실험적인 트랙들은 그의 음악 행보가 얼마나 독보적인지를 증명한다.

2집 '격동하는 현재사'는 극한의 서정성으로 가슴 시리게 했던 1집과는 달리 서양의 비트와 우리의 전통 장단이 어우러져 흥겨운 리듬을 구현한 노래들로 채워졌다.

두 개의 챕터와 에필로그로 구성된 이 앨범에는 총 14곡이 담겼다. 모든 과정을 거의 홀로 진행했던 1집과는 달리 김현보(기타), 크라잉넛의 김인수(아코디언), 레이니썬의 김태진(기타), 조윤정(바이올린)이 연주에 참여해 다채로운 음악적 스펙트럼을 발산한다.

'아가씨 참 아름답소. 이리 와 함께 즐겨보아요. 소주도 먹고 맥주도 먹고 위스키도 먹고 한참을 늘어져봐요' 2013년 제 10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록 노래로 선정된 첫 트랙 '풍각쟁이'부터 수컷의 욕망은 거침없이 내달린다. 한국적 블루스 록의 전형을 제시한 이 노래의 가사는 질펀하다.

정차식의 음악에 욕망과 낭만 그리고 반추의 감성이 다채롭게 녹아있는 것은 '탱고' 음악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원초적 감성 때문이다. 직설적이고 걸쭉한 표현이 안고 있는 태생적인 음악적 한계는 전통음악의 가락과 창법에다 추임새가 더해져 새롭고 현대적인 사운드로 극복되는 놀라운 감흥을 안겨준다. 이는 이질적 사운드와 서사적인 가사를 융합시키는 탁월한 음악적 능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뽕짝 리듬과 걸쭉한 입담이 넘실대는 '삼거리 오뎅탕집'도 서구의 비트와 한국의 장단 사이에 경계가 속절없이 무너진 문제작이다. 테크노를 연상시키는 '미드나잇 워머' 역시 활기찬 사운드와 절망적인 내용이 뒤섞기며 독특한 감흥을 선사한다.

'쓸쓸한 이 계절에는 이상하게 당신이 땡겨 그냥 나랑 삽시다.'라고 노래하는 '옷깃을 세우고'와 밑바닥까지 침잠하는 '북회귀선'은 또 어떤가. 라틴음악의 정취와 일렉트로니카 사운드가 이종 교배된 '다 쓴'과 '달콤한 인생', 트립 합과 트랜스를 넘나드는 '춤추는 순교자들'까지 정차식은 질펀하게 놀면서도 고뇌와 비관적인 정서를 동시에 표현하는 자신만의 어법을 제시했다.

이 앨범은 쉽게 음악을 분석할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아니 분석할 필요가 없다. 그냥 리듬과 장단에 몸을 맡기고 질펀한 가사에 스며들면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만끽할 수 있다.

'위대한 촉수'와 '파괴된 자'가 들려주는 놀라운 악기 활용과 감각적인 리듬과 멜로디, 그리고 성가를 거쳐 댄스 일렉트로닉으로의 이어지는 '춤추는 순교자들'에서 보여준 혼돈스런 사운드의 극적 효과 또한 그가 얼마나 탁월한 뮤지션인지를 확인시킨다.

정차식의 특별함은 케케묵은 구닥다리 표현들을 새로운 스타일로 재탄생시키는 능력에 있다. 케케묵은 신파와 트렌드라는 이질적 질감을 이렇게 근사하게 요리해 현대적 어법으로 들려주는 뮤지션은 내 기억에 없다.

영화감독으로는 말하자면 온갖 잡탕을 긁어 모아 자신의 영상어법으로 구현하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떠오르긴 한다. '나성에 가면' 역시 혼성보컬그룹 '세셈트리오'의 원곡 가사를 차용했지만 완전히 다른 곡으로 만들었다. 쾌락을 추구하는 욕구를 온갖 잡탕을 불러 모아 현실의 아픔에 대입시키는 절묘한 감흥으로 승화시키는 음악적 능력이야말로 정차식 2집 '격동하는 현재사'가 제시한 욕망의 핵심이다.

최근 세계적인 음악 페스티발에서 극찬을 받고 미국에서 돌아온 정차식. 먹고 살기 위해 주문이 들어온 영화음악 작업에 매진하면서 또다시 변신할 3집을 준비 중이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게 좋아요. 최소한의 악기로 클래식한 느낌을 내고 싶습니다. 다음 앨범은 첼로나 콘트라베이스와 독백을 주고받는 형식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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