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적 감성·본능적 가사… '마이너 정서'에 끌리다

싸이가 월드스타로 급부상했던 2012년 여름, 오랫동안 '싼티'나는 B급 문화를 외면해 왔던 대중은 "외모는 '싼티'와 '저렴함'이지만 알맹이는 해학과 솔직함으로 가득 채워진 수준급 작품"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싸이 이전에 B급 문화를 표방해 관심을 이끌어낸 인디밴드들은 무수하다. 황신혜밴드, 장기하와 얼굴들,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에 이어 야릇한 상상을 유발시키는 5인조 밴드 장미여관이 그들이다.

2012년 5월 KBS 2TV 밴드 서바이벌 'TOP밴드2' 경연무대. 촬영현장에서 하얀 정장에 거대한 빨간 장미 코사지로 의상을 연출한 이들의 모습에 방송관계자는 물론 다른 밴드 멤버들도 '빵' 터졌다.

느끼한 다섯 사내가 '봉숙이'를 부르기 시작했다. 마치 라틴 음악을 듣는 착각을 일으키게 했던 어쿠스틱 기타 선율과 수려한 멜로디가 귀에 감겨왔던 노래는 잠시 후 발칙한 정체를 드러냈다. 지독한 부산 사투리가 들려왔고 무엇보다 성적 화두를 코믹하게 터치한 독특한 가사가 시청자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순간 인터넷과 SNS가 발칵 뒤집히며 밴드 장미여관과 노래 '봉숙이'는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단숨에 인디밴드계의 새로운 스타로 떠오른 이들은 '가요계의 홍상수', '더티 섹시 비주얼 밴드'라는 기발한 별명까지 획득했다. 사실 대중을 단숨에 휘어잡은 이들의 흥행요인은 끈적거리는 가사와 못 생겨서 튀는 외모와 퍼포먼스가 전부는 아니다. 오랜 무명가수생활을 겪으며 닦아온 음악 내공에서 동반된 탄탄한 가창력과 연주력은 무수한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마광수의 소설에 의해 야시시한 이름으로 각인돼 있는 밴드 이름은 "'봉숙이' 노래를 들은 아는 형이 '너네 '장미여관 302호' 같은 걸로 이름을 정해라'는 제안이 마음에 들어 결정되었다"고 한다.

밴드 장미여관은 1930년대부터 풍자와 해학을 담아 시대마다 대중에게 무한 즐거움을 안겨준 한국 민요의 계승자로 떠오르고 있다. 밴드의 음악적 핵심은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는 부산출신 강준우와 육중완이다. 경남 마산출신인 드럼 임경섭은 부산예술대 동문이다. 세 남자는 2011년 꽃으로 치장한 수염을 착용한 파격적인 반 누드 사진을 찍어 데뷔 EP를 발표했다. 이 앨범에는 '봉숙이'의 어쿠스틱 버전이 수록돼 있다.

이후 'TOP밴드2' 출전을 위해 드럼 배상재가 영입됐다. 그는 고등학교 스쿨밴드 선배 임경섭의 전화를 받고 장미여관에 합류했다. 개그맨을 꿈꿨던 전남 해남 출신 베이스 윤장현은 같은 동네에 살던 강준우와 친하게 지내다 가장 늦게 밴드에 합류했다.

5인조 밴드 라인업을 구축한 장미여관은 2012년 1월 29일 '전자쌀롱'에서 첫 공연을 했다. 2달 후 KBS 2TV 'TOP밴드2' 경연무대에 나가 엄청난 반응을 일으켰다. 이후 클럽공연과 대형 페스티벌은 물론 드라마와 영화OST, 라디오, CF까지 진출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확실하게 획득했다.

최근 정규 1집을 발표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장미여관 노래의 매력은 공개적으로 말하기 불편한 진실을 해학적으로 정화시킨 감성과 본능에 충실한 가사에 있다. 오랜 무명의 설움을 단숨에 날려버린 화제의 노래 '봉숙이'는 밴드가 결성되었을 때 이들의 아지트였던 홍대 앞 커피숍 '고양이 세수'에서 장난스럽게 만든 곡이다.

실제 경험담이 녹아든 실화로 여겨지는 이 노래의 주인공 '봉숙이'는 실존인물이 아닌 유쾌한 불어 '봉주르'를 생각하며 설정한 가상의 인물이다. 정식으로 발표할 생각조차 못했던 노래가 전국을 한순간에 빵 터지게 만들었다.

사실 이들의 음악에는 슬픈 마이너 정서가 짙게 깔려있다. 코믹하고 튀는 퍼포먼스나 아이디어가 중심인 음악은 대중의 즉각적 반응을 이끌어내는 달콤함이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음악적 정체성과 발전에 저해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음악적 잠재력이 풍부한 밴드 장미여관이 지향해야 될 롱런의 미덕은 대중과의 적극적 소통과 더불어 '봉숙이'에서 보여준 해학과 감동이 공존하는 자신들만의 색채가 분명한 독창적인 창작음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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