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기암과 크고 작은 폭포6㎞에 걸쳐 절경인 경북 4대 계곡예부터 수많은 시인 묵객 즐겨 찾아맑은 물에 발 담그면 무더위가 '싹'
태조는 5,000여 병력을 이끌고 대구 근교의 공산(公山)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경주에서 철수하여 귀환하는 후백제군과 전투를 벌였다. 이때 태조는 후백제군에게 포위되어 위험에 빠졌다. 그러자 신숭겸 장군이 "제가 대왕과 외모가 비슷하오니 제가 대왕으로 변장하면 대왕께서는 무사히 탈출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왕건의 옷을 대신 입고, 태조 행세를 하며 군대를 통솔했다.
왕건이 일반 군졸로 변장해 포위망을 뚫고 탈출한 이후 신숭겸은 장렬히 전사했다. 이 공산전투에서 신숭겸, 김락 등 여덟 장수가 전사하자 이를 애통히 여긴 태조는 훗날 공산을 팔공산(八公山)이라고 고쳐 불렀다.
팔공산은 대구광역시와 영천시, 군위군, 칠곡군에 걸쳐 있는 명산으로 해발고도 1,193미터의 비로봉을 비롯하여 웅장한 봉우리들이 연이어 솟구쳐 장엄하면서도 아름다운 산세를 이루고 있다. 또한 산자락에 명소와 유적지들이 즐비하여 1980년 5월 경상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노사나불 괘불 간직한 신라 고찰 수도사
신령재에서 발원해 팔공산 북쪽 자락을 적시며 장장 6㎞에 걸쳐 이어지는 치산계곡은 다양한 형상의 기암괴석과 거대한 암반, 너럭바위, 크고 작은 폭포수와 깊은 웅덩이, 유리알처럼 맑고 깨끗한 계류, 울창한 원시림이 손잡고 절경을 펼친다. 웅장하면서도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멋도 아울러 풍기는 아름다운 골짜기로 탁족을 즐기면서 무더위를 씻어 내리기에 손색이 없다.
치산계곡 하류에는 647년(신라 진덕여왕 1) 자장율사가 창건한 수도사가 앉아 있다. 창건 당시에는 금당사라고 불리던 이 사찰은 그 후 여러 차례의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원통전과 삼성각, 산령각, 해회루, 승방 등이 있다.
수도사는 1997년 8월 8일 보물 제1271호로 지정된 노사나불 괘불을 간직하고 있다. 괘불이란 큰 법회나 의식을 진행할 때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 만든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1704년(숙종 30)에 조성한 이 괘불은 삼베 바탕에 붉은색과 녹색 위주로 채색되었으며 길이 9.6미터, 너비 4.82미터에 이른다.
퇴계 이황도 사랑했던 선경인 공산폭포
다리를 건너 5분쯤 더 가면 공산폭포 입구에 이르고, 오른쪽으로 드리운 그윽한 숲길을 5분 남짓 헤치면 웅장한 물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암반을 타고 3단으로 쏟아져 내리는 공산폭포는 길이 60미터, 높이 30미터에 이르며 팔공산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수량이 풍부한 폭포수다.
예로부터 많은 선비들과 시인묵객들도 이 절경을 감상하기 위해 공산폭포를 즐겨 찾았다. 퇴계 이황은 제자였던 신녕현감 황준량과 함께 이곳을 찾아 '새로 솟는 폭포가 빼어나 천길 성난 우레 같구나. 평상에 기대어 구경하는 곳에 아지랑이 푸르름은 몇 겹이런고'라고 읊기도 했다.
치산계곡 으뜸의 선경인 공산폭포는 여러 이름을 갖고 있다. 영천시민들은 지명을 따서 치산폭포라고 부르며, 대구 쪽에서는 팔공산에서 가장 큰 폭포라고 해서 팔공폭포라고 일컫는다. 그런가 하면 불자들은 사찰 이름을 붙여 수도폭포라고 말한다.
치산계곡 입구인 치산리 마을에도 둘러볼 만한 곳이 있다. 버스 정류장 옆의 치산리 느티나무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민들의 쉼터로 사랑받는다. 1982년 9월 20일 영천수 보호수로 지정된 이 느티나무는 지정 당시 수령이 250년으로 추정되었다.
▲ 찾아가는 길
청통와촌 나들목에서 익산포항(20번)고속도로를 벗어난 뒤에 금송로-신녕 3거리-치산효령로-치산관광길을 거친다. 또는 영천 나들목에서 경부고속도로를 벗어난 다음, 영천-신녕을 거친다.
대중교통은 전국 각지에서 경부선 열차나 버스를 이용해 영천으로 온 뒤에 치산 방면 시내버스로 갈아탄다.
▲ 맛있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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