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빛을 띤 화강암을 타고 흐르는 자운폭포.
산의 평화를 깨는 금빛 원숭이를 가두다

금빛 원숭이가 있었단다. 비상한 머리와 재주를 믿고 온갖 몹쓸 짓을 자행하며 온산의 동식물들을 괴롭혔단다. 산의 평화를 깨는 금빛 원숭이의 횡포를 참지 못한 어느 도승이 이놈을 원암(猿岩)이라는 바위 속에 가두었단다. 그래서 산 이름이 금원산(金猿山)이란다. 물론 허무맹랑한 전설이다. 본디 검은산이라 불리다가 세월 따라 발음이 변해 금원산이 되었다는 말이 사실에 가깝다. 기백산(1,331m)과 손잡고 거창과 함양에 걸쳐 듬직한 산세를 뻗으면서 짙은 숲과 깊은 골, 전설과 유적이 알알이 박힌 아름다운 뫼 금원산(1,354m). 그 신비스런 품에 안기니 어찌 가슴 설레지 않을쏘냐.

위천에서 상천 시냇물 따라 금원산으로 들어간다. 얼마 가지 않아 길 오른쪽에서 쏴하고 물소리가 들린다. 금원산 파수꾼 격인 미폭포의 시원스런 물줄기에 어느새 기분이 상쾌해진다. 옛날 폭포 위에 있던 암자에서 쌀을 씻은 물이 폭포수를 부옇게 물들였다 해서 미폭포(米瀑布)란다. 이어 선녀폭포가 쏟아진다. 폭포 아래 못은 세 선녀가 보름달 뜨는 밤에 목욕했다는 전설이 어린 선녀담이다. 아기를 못 낳는 여자가 여기서 몸을 깨끗이 씻고 소원을 빌면 아기를 갖는다는 말이 전해진다.

이내 금원산자연휴양림 관리사무소 앞 갈림길에 이른다. 왼쪽 골은 유안청계곡, 오른쪽 골은 지재미골이다. 지재미골부터 들어간다. 지장암이라는 암자가 있어 지장골이라 불리다가 바뀐 이름이다. 금원산과 현성산 사이의 골짜기인 지재미골은 들머리가 비좁지만 안으로 깊이 들어가면 넓은 분지가 펼쳐진다. 농사지으며 숨어살기 좋은 피난처이자 속세를 떠나 조용히 수도하기에 알맞은 곳이다.

비를 예측하고 눈물 흘린 거대한 바위

지재미골 입구 삼거리의 원숭이 모형.
지재미골 입구에서 10분쯤 걸으면 거대한 바위와 만난다. 골짜기에 있는 단일 바위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문바위의 위용 앞에서 인간은 누구나 왜소해질 수밖에 없다. 사연이 많은 거암이어서인지 호신암, 가섭암, 금달암, 두문암, 지우암, 기도암, 용의 여의주 등 별명도 가지가지다. 그 가운데 지우암(知雨岩)은 비가 내릴 것을 미리 알고 눈물을 흘렸다는 데서 붙은 이름이어서 흥미를 끈다.

문바위에서 조금 더 들어가다가 돌층계를 오르면 자연석굴 안에 보물 530호인 가섭암터 마애삼존불상이 조각되어 있다. 가운데 본존불은 아미타여래, 왼쪽은 지장보살, 오른쪽은 관음보살로 보인다. 넓적한 얼굴에 비해 작은 눈과 입, 삼각형 코, 큼직하면서 밋밋한 귀가 토속적 인상을 풍긴다. 왼쪽 보살 옆에 새긴 조상기(造像記)에 천경원년 10월(天慶元年十月)이라는 글이 있어 고려 예종 6년(1111년)에 만든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지재미골에서 내려와 유안청계곡으로 들어간다. 빽빽한 숲과 맑은 물, 폭포와 담소가 이어진 선경 지대로 사람 만나기 힘든 깊은 골짜기였다. 그래서 옛날 선비들이 세상사 멀리하고 조용히 공부에 전념했다는 유안청(儒案廳)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그것이 계곡 이름이 되었다. 성인이 많이 나와 성인골(聖人谷)이라고도 불린다.

울창한 수림 속에서 내리꽂는 장쾌한 물기둥

길이 3㎞ 남짓한 유안청계곡은 숱한 폭포수를 거느리고 있다. 유안청1폭포와 유안청2폭포를 비롯해 자운폭포, 용폭, 선녀폭포, 미폭포 등 이름 붙은 폭포만 여섯이고 작은 폭포는 수도 없이 많다. 그래서 유안청폭포골 또는 금원산폭포골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그 가운데 유안청 1, 2폭포의 자태가 단연 빼어나다.

세 선녀가 달밤에 목욕했다는 전설이 어린 선녀담.
유안청1폭포는 비스듬히 흐르던 와폭이 깎아지른 낭떠러지를 만나 백척 단애를 뒤흔들며 수직에 가깝게 내리꽂는 시원스러운 물기둥이다. 폭포 자체도 장쾌하기 그지없지만 울창한 수림에 파묻혀 한층 매혹적인 비경을 빚는다. 폭포 길이는 와폭과 직폭을 합쳐 칠팔십 미터에 이른다.

유안청2폭포는 거대한 암반을 타고 미끄러져 내리는 길이 150여 미터의 와폭이다. 평상시에는 암반 왼쪽의 숲 아래로 물줄기가 흐르지만 큰비 내린 뒤에는 수십 미터 너비의 암반을 거의 꽉 채우고 무서운 기세로 함성을 토한다. 옛날 유안청의 선비들은 우렁찬 굉음에도 평심서기(平心舒氣)를 잃지 않고 어떻게 학업에 정진할 수 있었을까? 쥐 죽은 듯 고요한 요즘 도서실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적막하던 이곳이 활기를 찾은 것은 1993년 11월 금원산자연휴양림이 들어서면서부터다. 각종 시설은 여느 휴양림과 그다지 다를 바 없으나 이만큼 수려한 계곡과 폭포를 거느린 휴양림은 드물다. 가족과 함께 심산유곡의 정취를 만끽하면서 편히 쉴 수 있는 일급 휴양지라 할 만하다. 오지라는 굴레를 벗어 던지고 누구나 손쉽게 찾는 곳이 되었을지언정 아름답고 소중한 비경을 영원히 간직하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여행 메모

# 찾아가는 길

골짜기에 있는 단일 바위로는 국내에서 가장 크다는 문바위.
지곡(또는 서상) 나들목에서 대전통영(35번)고속도로를 벗어난 뒤에 안의-거창 방면 3번 국도-마리-37번 국도-위천을 거친다.

대중교통은 거창에서 금원산자연휴양림으로 가는 농어촌버스 하루 4회 운행. 버스 시간이 맞지 않을 경우 거창에서 위천까지 농어촌버스(하루 30회 운행)를 이용한 다음, 택시를 타거나 1시간 남짓 걷는다.

# 맛있는 집

거창읍 대평리의 청풍추어탕붕어곰탕(055-942-9200)은 특이한 향토보양식인 붕어곰탕으로 이름난 맛집이다. 붕어를 12시간 동안 우려내어 체로 거른 후 다시 끓여낸 붕어곰탕에 들깨가루와 부추, 파 등을 넣은 맛이 부드럽고 구수하니 진국이며 민물고기 특유의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다. 자연산 미꾸라지를 이용한 추어탕과 추어물만두, 추어군만두, 추어탕수육 등도 인기가 높다.

보물 530호인 가섭암터 마애삼존불상.

위쪽에서 내려다본 유안청2폭포.

글ㆍ사진=신성순(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