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역사를 간직한 바간의 사원.
동남아의 새로운 아지트를 쫓는 여행 마니아들에게 미얀마는 넘어서기 힘든 미완의 땅이었다. 군부 통치 이후 오랜 기간 폐쇄 돼 있던 담장 높은 나라에도 최근 여행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시간을 거스르는 융성한 불교유적과 천진난만한 현지인의 삶은 미얀마 곳곳에 진하게 뒤엉켜 있다.

미얀마가 간직한 숭고한 옛 보석은 바간(Bagan)이다. 바간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 3대 불교 유적 중 한 곳이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드르 사원과 어깨를 견주는 불교성지로 1000년 전 건설된 2500여개의 탑과 사원들이 황토빛 땅 위에 끝없이 늘어서 있다.

그동안 미얀마를 찾던 사람들은 불교성지순례를 위한 것이었고 그 대표적인 곳이 바간이었다. 11세기 바간 왕조가 들어서면서 전국에는 400만개가 넘는 사원이 들어설 정도로 미얀마의 불교문화는 번성했다. 미얀마 인구 5000만명 중 80% 이상이 불교신자다.

평원 위 탑에서 맞는 거룩한 휴식

거칠고 오랜 생채기를 지닌 바간의 탑들은 외형만 도드라지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탑의 꼭대기는 사람 한명 간신히 지날 수 있는 좁은 길을 통해 속세와 이어진다. 담마양지 사원, 아난다 사원 등 웅대한 사원들도 많지만 인적 뜸한 돌탑에서 홀로 만끽하는 휴식은 거룩하다. 이방인들은 거미처럼 벽을 기어올라 한 뼘도 안되는 공간에서 드넓은 평원과 시선을 맞춘다. 가부좌를 틀고 작은 포켓북을 꺼내 독서를 하는 여유와 탑 안에 좌정한 부처의 기운이 맞닿는 듯하다.

돌탑으로 채워진 바간.
누구나 추억하게 되는 바간 여행의 클라이막스는 쉐산도 사원에서 바라보는 일몰이다. 수백개의 탑 너머로 해가 지는데 장엄한 순간을 맞기 위해 벌룬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사람도 있다. 해넘이로 이어지는 그 시간 만큼은 탑 위에 기대선 사람들은 말이 없다. 종교와 피부색에 상관없이 얼굴이 발갛게 물들 때까지, 눈가가 젖어들 때까지 뭉클한 감동을 가슴으로 맞아 들인다. 그 얼굴 위에 평온하고 순박한 미소로 화답하던 미얀마의 천진난만한 표정이 슬며시 덧칠해진다.

마지막 왕조의 수도, 만달레이

승려와 중생이 어우러져 사는 모습은 미얀마 제 2도시인 만달레이에서 더욱 자연스럽다. 대규모 승가대학이 있는 만달레이에는 미얀마 스님의 절반 이상이 머물고 있다. 분홍빛 가사를 입은 띨라신(비구니), 미니 트럭에 매달려 가는 폰지(남승) 등을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만달레이는 미얀마의 마지막 왕조인 꽁바웅 왕조의 도읍지로 영국에게 나라를 뺏긴 슬픈 역사의 시발점이 된 도시다.

만달레이의 우뻬인 다리 밑 풍경이나 형광등으로 불을 밝힌 야시장의 정취도 탐스럽고 활기차다. 모두가 미얀마의 어제와 오늘이 가지런하게 공존하는 모습이다.

미얀마는 다민족 국가로 주류인 버마 족 등 160개의 민족으로 구성돼 있다. 면적은 한반도 전체의 3배. 위치는 인도 중국 라오스 태국 방글라데시와 접하고 있다. 미얀마하면 아웅산 수지 여사 정도를 알 뿐 한국에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다.

미얀마의 농촌정취.
낯설어도, 미얀마를 떠올리며 결코 거리를 둘 필요는 없다. 동남아 지역 중 안전도로 따지면 1급 수준이다. 밤길을 걸어도 야시장을 혼자 다녀도 괜찮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성긴 치열을 드러내고 민망할 정도로 환하게 웃는다. 불교를 국교로 하는 착한 민족성은 현지인들의 얼굴과 마음에 깊숙이 베어 있다.

여행메모

▲가는길=미얀마의 관문인 양곤까지는 최근 직항편이 운항중이다. 태국 방콕을 경유해 양곤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미얀마에서의 도시간 이동은 항공기를 이용해야 한다. 도로상황이 좋지 않아 버스는 한나절 가까이 소요된다.

▲음식=미얀마의 음식은 볶음밥인 터민쪼와 볶음면인 카우싸이접이 일반적이다. 음주 문화는 관대한 편이며 미얀마 현지 맥주도 명성이 높다.

▲기타정보=미얀마 화폐는 짯이다. 달러로 가져간 뒤 현지에서 짯으로 환전한다. 은행보다는 암시장에서의 환율이 좋고, 지방보다는 도시에서의 환전이 더 유리하다. 전압은 220V. 별도의 멀티 커넥터가 필요하다.


미얀마의 삶을 엿볼수 있는 장터.
승려와 주민들이 어우러진 풍경.
바간의 사원 내부에서 만나는 부처상.
탁발에 나선 노승.

글ㆍ사진=서진(여행칼럼니스트) tour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