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각 입구에서 백련사로 이어지는 오솔길.
조선 세종 때의 명신 윤회(1380~1436)는 문장이 뛰어나고 술을 좋아해 문성(文星)이자 주성(酒星)으로 불렸다. 그는 남수문과 더불어 과음할 때가 많았는데, 그들을 아낀 세종이 석 잔 이상 술을 마시지 말라고 어명을 내렸다. 어명을 어길 수는 없고, 그렇다고 주량을 줄이려니 몸이 근질근질해진 그들은 묘안을 짜냈다. 즉 큰 놋쇠그릇으로 석 잔씩 마심으로써 어명도 받들면서 예전 주량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재미난 일화로 유명한 윤회는 벼슬이 예문관 대제학에 이르렀다. 맹사성, 신장 등과 함께 <신찬팔도지리지>를 편찬했던 그는 만덕산과 백련사에 대해 다음과 같은 요지의 글을 남겼다.

"전라도 강진현 남쪽 바닷가에 맑고 빼어난 산이 솟았으니 만덕산이라 한다. 산 남쪽의 높고 트인 곳에는 바다를 굽어보는 절이 있으니 백련사가 그것이다. 전해 오기를 신라 때 창건했고 고려 원묘대사가 중수했으며 무의대사에 이르러서는 동방의 이름난 절로 일컬어졌으나, 섬오랑캐가 날뛰어 바다를 등진 깊은 지역이 폐허가 되었고 절도 그 성쇠를 같이 했다. 조선에 와서는 천태종 행호대사가 신심 등에게 일러 신해년에 공사를 시작해 병진년 봄에 준공했다."

여기서 신해년은 1431년, 병진년은 1436년을 가리킨다. 백련사의 창건 연대는 확실하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신라 고찰로 고려시대에 번성했으며 왜구의 침략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1436년(세종 18년)에 재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련사 동백숲

백련사의 동백꽃은 색감이 유난히 곱다.
만덕산 백련사는 고려 때 8국사(國師)를 배출하고 조선시대에는 8대사(大師)를 내는 등 전남에서는 순천 송광사 다음으로 많은 고승을 배출했다. 대웅전(大雄殿)과 만경루(萬景樓)의 현판 휘호는 완도 신지도에 귀양 왔던 이광사(1705~1777)의 글씨라고 전해진다. 이광사는 원교체(圓嶠體)라는 특유한 필체를 이룩한 것으로 유명한 서예가이자 양명학자였다.

백련사에서 아래를 굽어보면 남해바다의 도암만이 흡사 호수처럼 펼쳐지고, 아래쪽에서 이 절을 올려다보면 뒤로 솟은 만덕산 봉우리가 마치 피어나는 연꽃처럼 보인다. 아마 그래서 절 이름이 하얀 연꽃을 뜻하는 백련(白蓮)인가 보다. 만덕산은 해발 409미터로 그다지 높지 않지만 숲이 울창하고 능선 일원에는 예쁘장한 바위들도 즐비해 산세가 준수하다.

백련사는 동백숲으로 에워싸여 있다. '백련사의 동백림'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숲은 천연기념물 151호로 지정되었다. 12,893㎡의 면적에 동백나무 1,50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후박나무, 굴참나무, 비자나무, 푸조나무 등도 군데군데 자란다. 동백나무의 높이는 평균 7미터쯤으로 봄이면 동백꽃이 곱게 피어 상춘객들을 반긴다. 백련사 동백숲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다산 정약용 선생이 백련사 근처 다산초당에서 다도(茶道)연구를 했던 것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동백꽃과 벚꽃이 어우러진 봄 풍경 일품

만덕산 남쪽 자락의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1762~1836년)이 1809년부터 1818년까지 10년간 귀양살이를 한 곳이며 사적 107호로 지정되었다. 재건하면서 기와를 얹어 초당(草堂)이 아니라 와당(瓦堂)이 되어버렸지만 추사 김정희의 현판 글씨는 그대로 남아 있다. 3월말에서 4월초 사이에 찾으면 다산초당 입구 다산기념관 일원에서 동백꽃과 벚꽃이 어우러진 선경을 만날 수 있다.

천일각에서 굽어본 도암만 바다.
다산초당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정석, 연지석가산, 약천, 다조 등 다산4경이다. 정석은 다산이 바위에 새긴 석각, 연지석가산은 초당 뜰 앞에 다산이 판 연못과 석가산(정원에 돌을 쌓아 산처럼 만든 것), 약천은 다산이 찻물로 썼던 옹달샘, 다조는 다산이 차를 끓였다는 넓은 바위를 일컫는다.

다산초당 동쪽 언덕 위의 천일각에 오르면 도암만(강진만)의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다산이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등을 저술하다가 틈틈이 찾아 흑산도로 귀양 간 둘째 형 정약전을 그리워했다는 곳이다. 당시에는 천일각이 없었으나 선생을 기리는 뜻으로 1975년 세웠다. 간척사업으로 바다의 상당 부분이 메워져 옛 정취가 반감된 점이 아쉽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이어지는 800미터 남짓한 산길을 헤친다. 유배 시절 다산 정약용과 백련사의 혜장선사는 학문을 논하고 시를 읊고 차를 나누며 두터운 우의를 나누었는데, 당시 그들이 서로를 찾아 넘던 오솔길이어서 더욱 뜻 깊다. 20분가량 가벼운 산행을 하다 보면 덩치에 비해 의외로 깊은 만덕산의 향취에 젖어들 수 있다.

■ 여행 메모

▲찾아가는 길=수도권 및 호남 서부 지역에서는 서해안고속도로-목포 나들목-2번 국도-강진, 영남권 및 호남 동부 지역에서는 남해고속도로-순천-2번 국도-강진을 거친다. 강진에 이르면 백련사와 다산초당 이정표가 잘 세워져 있어 길 찾기는 쉽다.

백련사 동백숲은 천연기념물 151호로 지정되었다.
대중교통은 전국 각지에서 강진으로 가는 고속버스나 직행버스를 탄 뒤에 백련사 입구 및 다산초당 입구로 가는 군내버스를 이용한다.

▲맛있는 집='동순천 서강진'이라는 말이 있다. 전남을 대표하는 한정식으로 동쪽의 순천과 서쪽의 강진이 손꼽힌다는 뜻이다. 강진 한정식은 생선회와 구이, 다양한 해산물, 젓갈류, 산나물, 육회와 불고기 등 수십 가지 요리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진다. 바다와 산을 끼고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 덕분에 제고장의 특산물을 위주로 다양한 요리를 내는 것이 강진 한정식의 특징이다. 해태식당(061-434-2486), 예향(061-433-5777), 명동식당(061-434-2147), 청자골종가집(061-433-1100) 등이 유명하다.


다산초당 뜰 앞에 정약용이 만든 연지석가산.
다산을 기리는 뜻으로 세운 천일각.
전라남도 유형문재 136호인 백련사 대웅보전.
이광사가 쓴 백련사 대웅보전 현판 휘호.
다산기념관 앞뜰에 동백꽃이 피었다.
추사 김정희가 쓴 다산초당 현판 글씨.

글ㆍ사진=신성순(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