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고독 모드 포구에 머물다

가을, 외딴 포구를 찾는 길에는 떨림이 있다. 등대에 기대, 똑딱선 엔진소리 듣는 것도 좋고, 아득히 고깃배를 응시하며 상념에 잠겨도 운치 있다. 파도와 함께 하는 삼척 포구 드라이브는 고요한 어촌과 자맥질하는 굽이길이 뒤엉켜 묘한 흥분을 만들어낸다.

강원도 삼척의 포구는 번잡한 도시에서 멀어서 좋다. 좌회전, 기어 1단.... 동해시까지 쭉 뻗었던 7번 국도가 삼척에 들어서면 뱀처럼 소스라치게 요동치는 것도 스릴 있다. 일상이 권태로울 때, 비린내 나는 포구에는 삶의 충동이 배어난다.

삼척 포구 드라이브의 출발점은 삼척 맨 아래 매달린 고포항이다. 큰 마당만한 포구는 강원도와 경상북도로 갈린다. 골목을 기준으로 붉은 벽돌집은 강원도 삼척에 속해 있고 흰 벽돌집은 경북 울진 소속이다. 문패에 붙은 전화번호도 주소도 다르다. 미역 다듬던 할머니는 "길 건너 이웃집에 전화할 때도 시외전화를 걸어야 된다"고 말문을 연다. 고포는 자연산 돌미역으로 유명한 곳이다. 고포항에서 북쪽 월촌항까지는 해안도로가 뚫려 있다. 한적한 해안드라이브 코스다. 월촌 해변 등 외딴 바다를 스쳐 지난다.

강원, 경북의 경계인 고포항

고요한 새벽 포구를 감상하고 싶다면 장호항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 모텔에 숙소를 잡는다. 모래해변과 등대가 어우러진 장호항은 소박한 어촌체험 마을로도 인기를 끄는 곳이다. 지난 여름 투명 카누 체험 등 흥미로운 바다체험으로 사랑을 받은 마을이다. 장호항 인근의 갈남항은 고깃배 한두 척과 그물 손질하는 촌부의 모습이 한가롭게 다가선다. 갈남항 앞바다에 월미도라는 무인도가 있는 것도 반갑다. 갈남항 횟집인 해녀의 집은 제주도 해녀 출신 아낙네가 운영하던 곳이다.

호젓한 바닷가에서의 산책은 맹방해변이 어울린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음향 엔지니어인 상우(유지태)와 라디오 PD인 은수(이영애)의 사랑에 금이 가기 시작할 즈음, 소리채집을 위해 찾은 곳이 바로 맹방해변이다. 명사십리와 우거진 송림을 자랑하는 맹방 바닷가는 삼척시 근덕면으로 넘어가는 한재에서 내려다보면 아득하다. 연인들의 여행이라면 상우의 명대사인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를 분위기 있게 한번 읊어봐도 좋을 듯.

출출한 배는 제법 큰 항구인 임원항에서 채운다. 임원항에는 다양한 횟집뿐 아니라 회센터가 밤늦게까지 문을 연다. 싱싱한 회를 5만원이면 서너명이 푸짐하게 먹을수 있다. 배들은 이른 아침 경매 때가 되면 임원항에 잔뜩 생선을 풀어놓고 떠난다.

7번 국도따라 올망졸망 드라이브

삼척시내 남쪽의 신남항은 아줌마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포구 북쪽 해신당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물에 빠져 죽은 처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남근을 깎아 사당에 걸고 제사를 지낸다. 사당 안에는 남근이 걸려있고 난간도 남근으로 장식됐다. 겉모습은 촌스러워도 첨단 시설을 갖춘 어촌 민속박물관도 볼 게 많다.

삼척 7번 국도 드라이브는 새천년도로에서 마무리 짓는다. 삼척항에서 삼척해수욕장까지 절경의 해안도로가 뻗어 있다. 새천년해안도로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도 선정됐다. 해안도로 중간에는 소망의 탑, 비치조각공원 등이 들어서 있다. 공원에서는 주말이면 바다를 배경 삼아 음악회가 열리고 새천년의 소망을 담은 소망의 탑 아래에는 타임캡슐도 묻혀 있다. 공원 마린데크 카페에서는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 한잔 마시면 가을향이 밀려든다. 오랜 포구와 식당들이 어우러진 삼척항 마을 골목길을 거니는 것도 살가운 추억을 만들어낸다.

시시각각 변신하는 삼척의 포구기행은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다. 회 한 접시, 미역 한 줄에 얹혀지는 소박하고 정겨운 미소는 외딴 포구여행의 훈훈한 덤이다.

글ㆍ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메모

▲가는길=서울에서 삼척까지 동서울, 강남터미널에서 1시간 단위로 버스가 출발한다. 삼척의 포구와 동굴은 삼척터미널에서 버스가 오간다. 삼척 시티투어버스를 이용하면 해신당, 대금굴, 죽서루 등 관광지를 편리하게 둘러볼수 있다.

▲둘러볼 곳=삼척에 감춰진 동굴만 50여개다. 대이리 동굴지대는 국내 최대 규모로 그중 환선굴, 대금굴이 일반에 공개됐다. 강릉~동해~삼척의 해안선을 운행하는 바다열차와 궁촌~용화해변을 오가는 해양레일바이크 역시 독특한 체험거리다.

▲맛=삼척항에서 삼척시내 방면으로 가는 길인 정라삼거리에 있는 삼거리식당은 30년 전통의 푸짐한 비빔냉면으로 유명하다. 삼척항 일대에는 곰칫국 식당들이 여럿 있다. 오십천로의 울릉도호박집은 생선조림과 곁들여 먹는 직접 만든 호박막걸리 맛이 일품이다.

▲숙소=새천년도로 일대에 깔끔한 숙소가 밀집돼 있다. 장호항에도 호젓한 모텔들이 있다. 두 지역 모두 전망이 좋은 편이다. 검봉산 자연휴양림도 쾌적하다. 신리너와마을, 산양마을, 덕풍계곡마을 등에서도 이채로운 하룻밤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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