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예술, 문향과의 가을 만남

마음을 살찌우는 가을과 조우하려면 파주로 간다. 그곳은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에 갈증을 느낀 현대인들을 위한 쉼터가 기다리고 있다. 파주 출판도시, 헤이리 등 건축미 어우러진 공간 너머로는 옛 선현들의 문향이 흐른다.

파주출판도시는 ‘현재진행형’ 공간이다. 작가, 건축가, 출판인 등 문화공동체의 구성원들이 10여년간 도서관, 북카페, 갤러리 등 100여개의 복합문화공간을 조성중이다. 수십 채의 독특한 건물들이 완성됐고 지금도 ‘뚝딱뚝딱’ 새로운 건축물들이 기둥을 올리고 있다. ‘건축과 출판과 도시의 만남’. 출판도시의 모토는 골목 산책을 더욱 뜻 깊게 만든다.

책의 숲을 산책하는 ‘지혜의 숲’

문향에 깊게 취하려면 ‘지혜의 숲’을 찾는다.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에 문을 연 지혜의 숲은 거대한 도서관이자 쉼터다. 서가의 길이는 총 3.1km, 최고 높이는 8m에 달한다. 개인이 기증한 50여만권의 책들은 책꽂이에 빼곡하게 간직돼 있다. 서가 사이를 걷다보면 웅장한 책의 숲을 거니는 듯한 착각에 빠져 든다. 지혜의 숲은 숙연하고 고요한 ‘독서’의 공간만은 아니다. 책이 풍겨내는 독특한 향기와 바리스타가 전해주는 커피향을 맡으며 꼭 읽고 싶었던 책 한 권을 빼내어 쓰다듬는 생활 속 공간을 지향한다.

파주출판도시 나들이는 문향 가득한 북카페들을 두루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출판 공간과 어우러진 북카페부터 갤러리를 겸한 곳까지 다양한 북카페들이 발걸음을 부추긴다. 그중 북카페 ‘헤세’(HESSE)는 소담스런 정원 마당과 건축물과의 조화가 인상 깊은 곳이다. 이밖에도 피노키오와 관련된 작품이 전시된 피노키오 뮤지엄, 구수한 고서점가를 연상시키는 헌책방 등은 파주출판도시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개성 넘치는 건축물 외에도 길가에서 찾아내는 들꽃, 풀숲에서 들려오는 물새소리 등은 파주출판도시 여행의 가을 상념을 더한다. 출판도시 주변지역은 한강과 예성강, 임진강이 합류해 서해로 이르는 저습지다. 갈대와 억새가 빛나는 샛강을 지녔으며, 들풀과 들꽃이 피어나는 야생의 자연이 곁들여진다.

건축미의 헤이리와 옛 선비들 흔적

출판도시에서 시작된 파주여행은 자연스럽게 인근 헤이리로 옮겨진다. 연인, 가족들의 나들이 코스로 입소문이 난 헤이리에는 현재 50여곳의 전시공간이 개방돼 있다. 계절이 바뀌면 매달 새로운 작품들이 갤러리에 내걸린다.

헤이리의 미로 같은 산책로는 독특한 건물들이 옹기종기 숨어 있어 지루하거나 고독하지 않다. 건물들은 모습도 색깔도 다르다. 건물마다 이름이 따로 있으며 집주인과 그 집을 지은 건축가의 이름도 별도로 구분돼 있다. 마을 길을 거닐며 건축물의 온기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예술작품과 하나가 된 착각에 빠지게 된다.

파주는 이 밖에도 옛 선비들의 문향이 곳곳에 담긴 도시다. 파주 법원읍의 율곡 이이 선생 유적지는 이이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한 곳으로 자운서원, 기념관 등이 들어서 있다. 자유로 당동IC 인근의 반구정은 황희정승이 갈매기와 노닐던 사연이 전해 내려오는데 실제로 독수리의 서식지가 인근에 있어 하늘을 맴도는 독수리 무리를 구경할 수 있다. 두 곳 모두 파주 여행의 넉넉한 덤으로 손색이 없다.

글ㆍ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메모

▲가는길=파주출판도시는 자유로 문산 방향 장월IC에서 빠져나온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지하철 2호선 합정역에서 200번, 2200번 버스를 이용한다. 헤이리는 자유로변 성동IC에 위치했다.

▲먹을 곳=파주 일대의 대명사가 된 먹을거리가 장단콩 요리다. 파주출판단지 삼학산 둘레길 등에 장단콩 요리를 메뉴로 한 보리밥 집들이 들어서 있다.

▲기타정보=독자, 작가가 함께하는 파주북소리축제가 9월 15일부터 17일까지 출판도시 일대에서 열린다.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를 중심으로 북 콘서트, 작가와의 만남, 공연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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