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은 음력 4월 8일로 흔히 어른들은 사월 초파일이라 부른다. 이날은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날을 기념해서 연등행사 뿐 아니라 살생을 금지하는 부처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 남생이를 대단위로 방생하는 행사를 치른다. 남생이는 동의보감에도 ‘남셩의’라고 표기되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습지나 늪지대에서 오랫동안 터전을 잡고 살아와 전국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었던 토종 민물 거북이다.

옛날부터 정력을 증강시키는 효과가 좋다는 이유 탓에 남생이의 개체수는 해마다 감소한데 이어 해마다 사월 초파일에 방생하는 행사가 열리면서 이 때 사용될 남생이를 대규모로 포획해서 공급하게 된 탓에 지금은 환경부 멸종위기 동식물 Ⅱ종에 속해 있다. 남생이를 방생행사에 못쓰게 되자 이번에는 외국에서 ‘붉은귀거북’을 수입해서 남생이를 대신해서 방생하게 된다. 이들은 먹성이 좋아 우리나라 토종 물고기나 파충류 양서류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바람에 또 다른 외래종인 황소개구리, 뉴트리아와 함께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주범이 되었다.

남생이는 한약재로도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남생이 등딱지는 귀갑(龜甲), 고기는 귀육(龜肉), 오줌은 귀뇨(龜尿)로 모두 한약으로 쓰인다. 오늘 소개할 한약재는 귀판(龜板)으로 남생이 배딱지다. 귀판은 한약재로 유명한 것 보다 갑골문자로 더욱 유명하다. 고대 중국의 수많은 왕조 중에서 신권(神權)이 가장 높았던 은(殷)나라 때에는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점을 쳤는데 남생이 배딱지인 귀판(龜板)과 수소 같은 수골(獸骨)의 어깨뼈에 작은 열을 가해서 금이 생기면 그 모양이나 형태에 따라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견하는 방식이다.

귀판은 특히 귀해서 한번 점을 치고 버린 것이 아니고 여러 번 점을 치는데 사용했다. 전쟁에 대해 점친 것을 보면 언제 점을 쳤고 점괘가 어땠고 실재결과는 어땠는지 까지 자세히 나와 있다. ‘점’에 해당되는 한자가 ‘복’자인데 ‘卜’다. 그 모습이 점을 친 후에 거북이 배딱지가 갈라진 모습을 그대로 형상화한 것이다. 귀판은 성질이 약간 차고 맛은 짜고 달다.(微寒鹹甘) 원자로 안에 불덩어리인 핵연료가 물속 깊은 곳에서 에너지를 서서히 발산하듯이, 신장의 양기(陽氣) 또한 신장의 음분 속에 잘 응축되어 갈무리되어 있으면서 서서히 기운을 발산해야 정상인데 신장의 음분이 부족하거나, 성욕(性慾)이 항진되어 수시로 양기가 발동되어 함부로 양기가 밖으로 나돌아 다니면 쉬 지치고 피곤하게 된다. 이럴 때 귀판의 주 효능인 잠양(潛陽)이 필요하다. 양기를 깊이 침잠시켜서 필요할 때만 꺼내 쓰게 자물쇠로 꽉 채워둔다는 뜻이다.

보음약은 대개 간신(肝腎)으로 가서 음혈(陰血)을 보하듯이 귀판 역시 약효가 간신으로 간다. 주효능은 자음(滋陰) 즉 말라 비틀어진 논에 물을 대듯이 간장과 신장에 음혈(陰血)을 보충한다. 여러 번 말하지만 간(肝)이 다스리는 영역 안에 근육이 있다고 했고 신(腎)이 다스리는 영역 안에는 골(骨)이 있다고 했다. 간신(肝腎)을 자음한다는 말은 뻑뻑하게 굳은 근육에 기름칠을 해서 부드럽게 해주고, 뼈 속 즉 골수를 채워줘서 뼈를 튼튼하게 할 뿐 아니라 면역력을 향상시켜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을 증대시켜 준다는 뜻이다. 이를 강근골(强筋骨)이라고 한다. 이런 강근골의 효능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계층은 소아(小兒)다.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키가 커 가고 뼈대가 완성되어 가는 단계인데 이 때 꼭 필요한 것이 귀판이다. 특히 소아 신문불합(囟門不闔) 및 발육부전에 쓴다. 신문불합이란 생후 6개월이 되면 머리 꼭대기의 숫구멍이 닫혀서 단단해져야 하는데 안 닫힌 경우를 말한다. 이는 전형적인 발육부전의 한 형태로 이런 아이의 경우 이빨도 늦게 나거나 단단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발육을 촉진시키는 면에서 귀판과 녹용(鹿茸)은 닮아있다. 녹용은 신양(腎陽)을 대보(大補)하는 반면 귀판은 신음을 보하고 몸에 있는 신양(腎陽)을 잠양해서 잘 갈무리한다. 그래서 이 둘을 함께 쓰면 아동 성장에 환상의 짝꿍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남생이는 우리 곁을 떠나 있어 우리와 함께 할 수 없다. 그래서 아직 우리 곁을 지키는 남생이 친구 자라로 그 자리를 대신할 밖에.

하늘꽃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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