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부터 아랫배까지 꽉 막히고, 뭔가로 꽉 차서 딱딱하고, 대변을 보지 못하고 해질녘에 썰물처럼 발열하는 조열(潮熱)증상이 있으며 복부가 끊어질 듯이 아파서 심지어 손으로 그 부위를 만질라치면 손도 못 대게 하는 증상을 갖는 질병이 있다. 대함흉탕(大陷胸湯)을 써서 치료해야 하는 증상이다. 중증의 질환이다. 오늘날로 따지면 심근경색이나 위암, 대장암, 간암 정도로 보이는 위급한 질환이다.

질병의 기세가 맹렬하면 거기에 대항하는 한약 또한 맹렬해야 한다. 대함흉탕은 대황과 망초가 들어있고 감수(甘遂)가 들어간다. 망초는 큰 독성이 없고 대황은 독성을 적절하게 조절해가면서 쓸 수 있는 한약이지만 감수는 이들과 차원이 다른 한약이다. 감수는 준하축수약(峻下逐水藥)에 속한다. 이번에 다룰 준하축수약 계통의 한약은 독성이 있어 전문가인 한의사도 잠깐 동안만 쓸 수 있는 한약이다. 장복하면 안 되는 맹렬한 한약들이니 독자들은 이런 한약도 있구나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갔으면 한다. 대개의 한의원에는 혹여 잘못될 수 있어 비치조차 해 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소수의 뛰어난 한의사는 이런 한약을 잘 써서 어디에서도 고칠 수 없었던 여러 질환을 잘 고치기도 한다.

준하축수약의 범주에 드는 한약으로는 감수(甘遂), 대극(大戟), 원화(芫花), 상륙(商陸), 견우자(牽牛子), 파두(巴豆), 속수자(續隨子)가 있다. 하나같이 맹독성이다. 이런 명렬한 준하축수약이 3개나 들어가는 처방이 있다. 하지만 처방의 이름이 십조탕(十棗湯)이다. 대추 10개로 만든 탕약이란 뜻으로 전혀 독할 것 같지 않다. 하지만 그 처방의 구성을 보면 처방명이 얼마나 천연덕스럽고 태연스러운지 알 수 있다. 십조탕은 감수, 대극, 원화, 대추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한의원에서 쓰는 처방은 크게 2부류로 나눌 수 있다. 고방파와 후세방파다. 가장 오래된 처방집인 상한론(傷寒論)에 근거해서 처방하는 학파를 고방파라고 부르며 그 외는 모두 후세방파다. 우리나라는 고방파부터 후세방파까지 한의학의 스펙트럼이 넓어 치료의 범위 또한 대단히 넓다. 반면 일본한의학의 주류는 고방파다. 고방파들은 항상 응급상황에 대비해서 십조탕을 가지고 다녔다고 해서 사람들은 우스개 소리로 ‘십조탕 같은 놈’ ‘십조탕 가지고 다니는 놈’이라고 부르곤 했다. 하지만 간혹 명치부터 아랫배까지 ?倫컨?대변을 오랫동안 못보고 응급상황을 맞으면 상황은 역전되기 일쑤였다.

일본 상한론의 대가인 대총경절(大塚敬節)이 말한 십조탕의 적응증을 보자. 요즘 직장인들처럼 신경을 많이 쓰면서 화병을 달고 살고, 잘 먹어서 몸집이 크고, 육체노동을 하지 않아 덕지덕지 살도 찌고, 의외로 허약한 사람이 명치끝을 눌러보면 큰 덩어리가 잡히고, 배꼽 밑이나 배꼽 주위로 덩어리가 잡히거나 명치서부터 배꼽아래까지 쭉 덩어리가 잡혀 누러면 ‘악’ 소리가 나는 증상이 나타날 때 십조탕을 쓸 수 있다고 했다. 대변과 소변을 우당탕탕 쏟아내서 위의 증상을 개선시킬 뿐 아니라 추가적으로 살이 쏙 빠지는 데 놀라운 경험을 한다고도 덧붙인다. 대함흉탕보다 더욱 독성이 있으면서 작용이 맹렬한 십조탕을 살 빼는데 쓸 수 있다니 언뜻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귀가 솔깃한 독자들은 시도해보려고 이미 키보드를 누르고 있을지 모르겠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이 될 수 있다. 준하축수약은 성질이 맹렬해서 복용하면 복통과 설사를 유발시킨다.

또한 어떤 한약재는 강력한 이뇨작용이 있어 대량의 수분을 대소변으로 배출시키므로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수종(水腫)과 흉부와 복부에 쌓여있던 적수(積水)로 인해 명치끝에서부터 아랫배까지 꽉 뭉쳐져 있어 숨쉬기 곤란하고 눌러도 아픈 증상을 없애준다. 준하축수약은 맹렬하면서 독성이 있으므로 반드시 “치병즉지(治病卽止)”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질병의 증상이 소멸되면 곧 복용을 멈추라는 뜻이다. 특히 노인이나 임산부 뿐 아니라 큰 병으로 많이 노쇠한 사람이나 체력적으로 약한 사람은 절대 써서는 안 되는 한약이다. 준하축수약을 써야하는 환자는 대체로 만성질환으로 체력은 약한데 딱딱한 것이 꽉 뭉쳐져 있는 실(實)한 증상을 갖고 있는 환자라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하늘꽃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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