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25시] 현대무용가 차진엽


“춤으로 말하고 춤으로 자유를 만끽하죠.”

현대 무용가 차진엽(28) 씨에게 춤은 권태로운 삶에 대한 일탈과 반란이다. 고전 발레가 가지고 있는 형식과 틀에서 벗어나고 싶어 서울예고 시절 발레에서 현대무용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여성은 가냘프고 남성은 강해야 한다는 통념이나, 발레리나 발레리노로 나뉘는 성역할 분담이 어쩐지 그녀와 맞지 않았다.

여성에게도 남성적인 힘이 필요한 현대 무용을 할 때 오히려 거침없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었다. 현대 무용을 통해 숨겨진 열정과 잠재력을 발견했다는 그녀는 “춤출 때만이 진정한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그녀의 춤은 그렇기에 당당하고 강한 여성이라는 문화적 키워드, 콘트라 섹슈얼(contrasexual)과 닮았다. 영국 호페시 세히터(Hofesh Shechter) 단원으로 활동하는 그녀는 국립극장에서 열린 제 3회 한국을 빛낸 무용스타들 페스티벌에 초청 받았다.

이 페스티벌은 외국 직업 발레단과 현대무용단에서 활동하는 각 장르의 최고 무용수들만 뽑기에 무대에 오르는 것 자체가 개인에겐 영광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전발레, 모던 발레, 현대 무용 등 예년보다 장르가 골고루 섞인 이번 공연에서 현대무용으로는 그녀가 유일했다.

“아직 발레에 익숙한 대중에게 현대무용으로 좀더 편하고 친숙하게 다가가고 싶어요. 저를 아시는 분들에게 저 이만큼 컸어요, 하며 자랑도 하고 싶었구요.”불과 2년 전만 해도 선배들의 무대를 보러 가곤 했던 그녀는 현대 무용이란 장르로 무대에 올라 후배에게 귀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그래서 밀양 연극 축제와 부산 국제 해변 무용제 등 여름 휴가는 고국의 무대에 반납하기로 했다.

“부산에서 열리는 해변 무용제는 무대에 오르는 것 자체가 휴가예요. 해변이 춤추는 걸 보면서 춤을 춰야죠.”

그녀는 여느 말라깽이 무용수와는 다르다. 피아노를 전공하신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음악적인 재능과 조기 교육, 7살 때부터 시작한 리듬체조, 발레는 지금 현대 무용을 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었다. 무용으로 다듬어진 골격과 몸에 적당히 붙은 근육은 그녀를 강하고 매력적인 무용수로 보이게 했다. 몸으로 표현하는 직업이기에 몸은 그녀에게 그대로 예술이다.

“춤이 사람을 바꾸는 것 같아요. 발레를 했을 당시에는 저 또한 무척 여성적이고 갸날픈 공주 무용수 같았죠. 역할이 그렇기에 생활에서도 드러날 수 밖에 없어요. 현대무용을 하면서 춤도 과격하게 추고, 저돌적이고, 자유를 갈구하는, 안에 있는 욕구를 표현하다 보니 성격도 적극적으로 변하더라구요.”

현대무용을 하면서 ‘자아’를 찾은 케이스다. 마음에 숨겨진 것들, 고민하는 것들을 춤을 통해 말을 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열어야 춤이 나오거든요.”그녀는 한국 무용협회에서 주최하는 젊은 안무가전에서 최우수 안무가상도 받았다. ‘너에게 묻는다’ 라는 제목의 춤은 그녀의 경험과 고민에서부터 출발했다.

안도현의 시 구절을 따와 만든 작품은 삶 곳곳에 숨어있는 폭력성으로 개인의 존엄성이 순간순간 무시되고, 상처 받게 되는 느낌에 영감을 받아 구상했다. 25살 가장 고민되던 시절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사회초년생의 고민 그대로였다.

“지금 생각하면 치기스럽고 부끄럽기만 하네요. 제 춤은 스토리가 있고 던지는 화두가 있어요. 그렇기에 춤을 추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들 모두 자기의 경험으로 재구성해서 춤을 가져가죠.” 그녀의 춤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었기에 최우수상이라는 영광을 차지했다. 게다가 문예진흥원 후원 장학금으로 오랫동안 미루었던 유학의 기회도 얻었다.

고집 세고 욕심 많고 하지만 애교는 도무지 찾아 볼 수 없었다. 무조건 실력으로 인정받으면 되겠지 하는 생각들로 한동안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젠 ‘당당한 여우’로 변신했다. 물론 체질엔 맞지 않아 스스로의 행동에 어색하기도 하지만 필요할 땐 적당히 애교도 부릴 줄 안다.

오는 기회는 절대 놓치지 않고, 없던 기회까지 자신의 것으로 잡을 수 있는 노하우를 유학생활을 통해 터득했다. 왜냐? 인정받고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평생 춤을 추며 돈과 사랑 명성까지 얻고 싶은 그녀다.

그녀를 보고 외국 남자들은 ‘한국여자들은 작고 갸날프고 순종적이라고 들었는데, 당신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멋지고 쿨하다’ 라고 말한다. 거침없고 호탕한 성격이, 여자들에겐 선망의 대상이고 남자들에겐 매력 있는 편한 친구 같은 존재다.

음주가무를 즐기는 그녀의 별명은 ‘밤에 피는 장미’다. 낮엔 무뚝뚝하고 일만 하는 그녀가 是?되면 애교 많아지고 재밌어진다고 해서 붙여졌다. 클럽이나 파티장에선 리더십이 생겨 언제나 무대의 주인공이 된다. 그럴 땐 여자들에게 더 인기가 많다.

남자와 술내기에서 져 본 적이 없는 그녀 오기로 버티고 정신력을 동원해 상대를 쓰러뜨리고 만다. “대학교 때 여자라고 당연히 술 못 마시겠지 하며 잘난척하는 남자에게 한방 먹이기 위해 술내기에 응했죠. 그 후로 도전장을 내는 사람들에게 져 본 적은 없어요. 술은 내기하라고 있는 게 아니라 즐기라고 있는 건데 말이죠.”

항상 유행을 앞서가는 편이었다. 파티 문화가 국내에 들어오기 전부터 클럽을 빌려 코스프레 파티를 즐기는가 하면 와인이 유행하기 전부터 와인파티를 얼었다. 대학 때부터 유럽을 오가며 활동했기에 와인 문화에 익숙한 그녀였다. 패션도 명품보다는 감각적인 옷을 시장을 돌아다니며 사 입는 편이다.

액세서리, 장신구, 신발 등 늘 특이한 것들을 좋아했다. 하지만 이젠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에 내추럴한 스타일의 옷을 즐겨 입는다. “외적인 아름다움보단 내적인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그것을 춤으로 표현할거구요.”그녀에게 일과 사랑에 대해 묻자 거침없이 이렇게 말한다.

“어릴 때는 둘 중하나 선택하라 하면 일을 선택했죠. 하지만 지금은 일과 사랑 둘 다 잡을 거예요. 사랑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데요. 결혼은? 할거예요. 언젠가는(웃음) 그건 선택이잖아요.”

일을 너무 사랑했기에 사랑을 포기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젠 사랑의 중요함을 알았다. 개방적인 그녀의 어머니는 ‘꼭 한국 남자만 결혼 대상으로 볼 필요는 없지 않냐’며 ‘너의 일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으라’ 며 외국 생활로 바쁜 일정을 보내는 딸에게 조언을 하기도 한다.

그녀가 숨쉬는 공기, 걸어 다니며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사람, 사물, 그녀의 일상은 춤이 되어 무대에서 펼쳐진다. 사랑이란 테마도 빠질 리가 없다.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는 말을 살짝 전하는 그녀는 “달리고 있어요. 이젠 날아야지요” 라며 ‘여자들이여, 날개를 펴고 자유롭게 날아라!’ 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언젠가 무대에 올려질 그녀의 춤이다. 춤은 그녀의 인생이니까.


유혜성 객원기자


입력시간 : 2005-08-17 19:50


유혜성 객원기자 cometyou@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