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나이에도 동심 간직… 180억 들여 3D대작 '광개토대왕' 준비 중

1976년이었다. 가히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당시 국내 애니메이션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서울에서만 18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 때문에 동네마다 태권도장에는 태권도를 배우려는 아이들로 넘쳐났다.

한국 최초의 로봇 애니메이션 ‘로보트 태권브이’(이하 태권브이) 얘기다.

미국에 슈퍼맨, 일본에 우주소년 아톰이 있었다면, 한국에겐 태권브이가 있었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는 희망의 아이콘으로.

그런 태권브이가 최근 서른 살 생일상을 받았다. 특별한 선물도 받았다. 산업자원부가 주민등록증과 같은 대한민국 제 1호 로봇등록증(760724-R060724)을 수여했다. 당연히 태권브이를 낳고 기른 ‘태권브이의 아버지’ 김청기(65) 감독은 남다른 감회에 젖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당시 꼬마관객, 자녀 손잡고 관람

“상상도 못했어요. 그때 정말 열심히 만들었고, 큰 인기를 누렸지만 오늘날까지 세대를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사랑 받을 줄은 몰랐죠.”

11일부터는 서울애니시네마에서 태권브이 복원판 상영회가 열리고 있다. 앞서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선 재상영 행사를 갖기도 했다. 당시 태권브이에 환호하던 꼬마 관객들이 그만한 자녀를 둔 부모가 되어 행사장을 다시 찾는다.

“죽었던 자식이 다시 살아온 심정이랄까요. 그때 어린이들이 학부형이 돼 아이들과 함께 와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여간 감동스럽지 않아요. 한 아주머니는 눈물을 흘리면서 고맙다고 하시더군요.”

“76년이 눈앞에서 재연되는 듯해 가슴이 벅차 올랐다”고 그는 고백했다. 어깨도 무거워졌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건담 시리즈’가 20년 넘게 사랑을 받고, 계속 만들어지고, 문화 코드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걸 보면, 마음이 편치만은 않아요.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사회적 위상도 그렇게 진화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태권브이 1ㆍ2ㆍ3편은 76년 미국에 판매된 뒤, 원본 필름이 없어졌다. 현재 상영되고 있는 복원판은 극장에서 돌아갔던 필름 중 비교적 덜 훼손된 필름을 2003년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발견해 2년이 넘는 복원 작업 끝에 훼손된 영상과 사운드를 디지털 작업으로 복원한 것이다.

“원판에서 복사용을 만들어 수출해야 했었는데, 당시엔 필름이 제작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났어요. 지금은 전체 제작비에서 필름이 차지하는 비중이 1,000분의 1도 안 되지만 그때는 거의 10분의 1 수준이었죠. 그런 비용 부담 때문에 원판을 수출해버린 거예요. 다시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후에 원판을 들여오는 건 외화 한 편을 수입하는 것과 같아서 도저히 엄두를 낼 수가 없었어요. 지금은 그 필름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 돈이 있어도 찾을 길이 없네요.” 열악했던 애니메이션 시장이 초래한 비극이었다.

만화 떴어도 빚쟁이 전락

태권브이는 성공했지만, 개봉 후에도 그는 빚쟁이들에게 쫓겨 다녔었다. 그는 “경영 관념이 없던 무식의 소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만화가가 돈에 대해 뭘 알겠어요. 제작 초기에 판권을 지방 판권업자들에게 미리 팔았는데, 흥행이 된다는 보장이 없었으니 헐값이었죠. 그래서 1,800만원짜리 집이 넘어가고, 빚쟁이들이 찾아오고···. 당시 초등생이었던 아들 녀석이 그런 부모 모습이 얼마나 딱해보였는지 ‘빚 갚는데 써’ 하며 자신의 돼지저금통을 건네주는데 울컥했죠.”

빚은 3년 뒤 ‘똘이장군’의 흥행으로 겨우 갚을 수 있었지만, 후회는 없다. 그는 “이름 석 자를 남겼고, 지금까지 애니메이션으로 밥을 먹고 살게 되지 않았냐”고 웃는다.

태권브이는 익히 알려졌다시피 일본 애니메이션 ‘마징가Z’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때 이 때문에 적잖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솔직히 영향을 안 받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로봇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거기서 봤으니까요.” 그러면서 그는 실력의 한계를 얘기했다. “제작 과정에서 가장 큰 숙제가 어떻게 하면 ‘마징가Z’와 닮지 않게 하는가였어요. 하지만 인간형태의 로봇을 구상하려니 자꾸 비슷하게 되는 거예요. 실력의 한계죠.”

차별화의 수단이자, 국민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고안해 낸 방법이 태권도를 하는 로봇이었다. “사람들은 제가 무슨 태권도 유단자인줄 알지만, 실은 기본 품새도 할 줄 몰랐어요. 유단자들을 대련시키고, 그걸 찍어서 영사기로 비추면서 실제 인물들의 형상 위에 만화 캐릭터를 입혀 나갔지요.”

그는 그 시절 제작과정의 에피소드도 들려준다. 힘들었지만, 이제 돌아보면 웃음이 난다고 할까. “모든 환경이 조악했어요. 연필은 갈다가 부러지고, 지우개는 한 번 지우면 보풀이 일고. 필름은 병원에서 엑스레이필름을 수거해서 물에 담가 지워 쓰기도 했으니 좀 더 쉽게 갈 걸 참 더디고 힘들게 갔죠.”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넋두리는 이어진다. “필름에 기름기가 있어 마르면 수성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 뚝 떨어져버렸고, 완전히 건조되기 전에 촬영하면 번져 버리고, 참 그땐 짜증났는데 지금은 웃네요.”

30년이란 긴 시간은, 그런 모든 일들을 추억으로 만들었다. “요즘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기술은 99% 구현돼요.” 애니메이션 업계뿐 아니라 기술도 눈부시게 발달했다. 태권브이에 등장했던 공상과학 기기들도 현실에서 만날 수 있다. “윤 박사가 손목시계를 통해 화면을 보고 지시를 내리곤 했는데, 그게 요즘 DMB 휴대폰쯤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다면 향후 기술이 더욱 발달하면 실생활에서 태권브이를 만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는 “글쎄요” 하며 얼른 답을 하지 못했다. “사람의 몸 동작을 따라 로봇을 움직이게 하는 기술은 지금도 가능하답니다. 하지만 태권브이처럼 큰 동체를 움직이자면 엔진의 설계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과학자들이 지적하더군요.”

태권브이가 끝난 뒤로 똘이장군, 황금날개, 삼국지, 우뢰매 시리즈 등을 만든 김 감독은 현재 ‘광개토대왕’ 3D애니 작업에 한창이다. 제작비 180억원이 투입되는 대작. 2002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선정한 ‘우수 파일럿 작품’으로 미국 등 해외 투자도 이뤄질 예정이다. “우리 영웅의 기상을 널리 떨치고 싶습니다.” 아울러 은퇴작으로 로봇 시대의 생활상을 그린 애니메이션과 한국의 고전소설을 소재로 한 작품들도 구상 중이다.

그렇게 30년을 한결같이 어린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비결을 물었다. “우리 집사람이 그래요. 우리집에 아이가 셋이나 있지만, 제가 제일 어리다고요. 하하”

"태권브이가 마징가Z 이길 것"

그래서일까. “태권브이와 마징가Z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하는 세간의 궁금증에, 그는 당연히 ‘태권브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 이유요? 태권브이는 체계적으로 무예를 닦았으니까요. 그리고 태권‘도’는 도(道) 아닙니까. 도의 세계는 무한한 거잖아요.” 예순다섯의 나이는 숫자일 뿐, 그는 여전히 동심의 세계에 사는 사람처럼 보였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