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혹스러운 동문들

가짜 학위 논란에서 비롯된 ‘신정아 스캔들’이 권력게이트로 비화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 예일대 출신 국내 인맥에 새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신정아(35)씨와 변양균(56)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부적절한 관계’는 두 사람이 미술에 대한 공통의 관심 외에 ‘예일대’라는 가공의 연결고리가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예일대 석사 출신인 변 전 실장이 예일대 출신임을 내세운 신씨를 대학 후배로 알고 특별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변 전 실장 뿐 아니라 또 다른 정ㆍ재ㆍ학계 인사들이 그동안 신씨의 뒤를 봐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되면서 ‘예일대 네트워크’를 깊숙이 들여다 보려는 시각마저 있는 실정이다.

국내 예일대 동문회인 ‘한국예일동창회’는 적잖이 곤혹스런 표정이다.

예일대를 사칭한 신정아 씨나 예일대를 나온 변양균 전 실장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국내 예일대 출신 인사들의 이미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예일동창회 총무인 이재승 고려대 교수(국제학부)는 “신정아 씨의 경우 예일동문회 명단에도 없는 사람”이라며 세간의 의심을 일축했다. 신씨가 언론 등에 자신이 예일 출신임을 피력해왔지만, 정작 동문회에서는 그녀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는 것.

■ 국내 예일대 출신 인사 400여 명

국내 예일대 출신 인사는 400여 명에 이른다.

우선 정계에서는 이홍구 전 총리(현 중앙일보 이사회 의장)가 눈에 띈다.

이 전 총리는 1954년 서울대 법대를 중퇴하고 59년 에모리 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받은 뒤 61년 예일대에서 정치학 석사, 68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90년 대통령 정치담당특보를 거쳐 94년에서 95년 총리를 역임했다.

남 의원은 96년 당시 예일대 한국인 학생회장을 맡기도 했다. 이밖에 신낙균 전 문광부 장관(현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 대학에서 신학 석사, 이종률 전 민주당 의원은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변양균(경제학 석사) 전 실장으로 대표되는 예일 출신 정부기관 인사에는 김태동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장승우 한국투자금융지주 이사회 의장 겸 회장, 이동걸 한국금융연구원 원장 등이 있다.

김태동 금통위원은 87년 예일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98년 대통령 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을 역임했고, 2002년부터 금통위원으로 재직중이다. 장승우 회장은 85년 예일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기획예산처 장관과 해양수산부 장관을 거쳐 현재 2005년부터 한국투자금융에 몸담고 있다. 이동걸 원장은 금융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금감위 부위원장, 증권선물위원회 위원장을 거쳤다.

이밖에 김기환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 회장(역사학과 석사)과 임래규 코코실버 회장(전 산자부 차관, 경영학 석사)이 예일대 동문이다.

■ 학계로 대거 진출, 재계는 인맥 약해

재계의 예일 출신 대표적 인물로는 조현준 효성전략본부 부사장, 박재하 모토로라코리아 부회장 등이 있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장남인 조현준 부사장은 예일대에서 정치학 학사를 받았고, 현재 경영권 승계 수업을 착실히 받고 있다. 박재하 부회장은 해군사관학교 출신으로 예일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아 눈길을 끈다.

김경희 씨티그룹 부행장(법학 박사), 함춘승 씨티그룹증권 사장(경제학 학사), 조홍래 동원증권리서치본부장(경제학 석사), 박경모 메릴린츠증권 상무(경영학 학사) 등도 예일 출신이다. 김한 유클립 회장과 이양동 어헤드모바일대표 이사장도 각각 경영학 석사와 전산학 석사를 예일대에서 받았다.

학계에서는 예일 출신 이름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서울대 황윤재(경제학), 신욱희(정치학), 박상인(경제학) 교수, 정종호 국제대학원교수(인류학), 조수철 의대 교수(정신과 졸업/ 조교수) 등이다.

신윤환(정치외교학), 유석진(정치외교학), 김재천(국제정치) 교수는 예일 동문이면서 서강대에 몸담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이밖에 신동엽 연세대 교수(경영학), 진승권(사회학), 최샛별(사회학) 이화여대 교수 등이 있고 윤후정 전 이대 총장은 예일 법대 출신이다.

법조계에서는 법무법인 세종의 신영무 대표와 국내 최대 로펌인 김&장 법률사무소의 신희택 변호사가 예일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신 대표는 현재 예일동문회장을 맡고 있고, 김&장의 차기 대표로 물망에 오르던 신 변호사는 최근 2009년 법학전문대(로스쿨) 개원을 앞두고 있는 서울대로 자리를 옮기기로 해 화제가 됐다.

예술계에는 박경옥 한양대 교수, 배일환 이화여대 교수 등 음악분야에 많이 진출해 있다.

한동헌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대표도 예일대 출신이다. 미술쪽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 김홍남 관장이 미술사학으로 석ㆍ박사 학위를 받은 것이 처음이며 서울대 미술사학과 장진성(41, 미술사학박사) 교수와 설치미술가 서도호(47, 조소학 석사) 작가 정도가 전부다.

● 신정아 거짓말 동문들 몰랐나?

신정아 씨는 금호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할 때 예일대 가짜 학력이 문제가 돼 해임됐다. 당시 작고한 금호그룹 박성용 전 회장이 예일대 출신으로 한국예일동창회 회장을 맡는 등 예일대 사정에 밝아 신씨의 학력 거짓말을 알고 바로 해고한 것.

신씨의 예일대 가짜 학력 의혹은 몇 해 전부터 미술계에서 공공연히 나돌았다. 2005년 신씨가 동국대 교수로 특채될 때와 올 4월 광주비엔날레 예술총감독으로 선임될 당시에는 ‘예일대 박사’라는 이유로 각종 매체에 집중적으로 조명되면서 신씨의 학력도 직접 도마 위에 올랐다.

그런데도 예일대 동문들은 신씨의 가짜 학력을 몰랐을까. 최소한 예술계에 종사하는 예일대 출신들은 알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럼에도 국내 예일대 동문이 신씨 학력에 대해 정식으로 문제 제기를 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정말 몰랐거나, 알았더라도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는 식으로 침묵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한국예일동창회 총무인 고려대 이재승 교수는 “신정아씨와 비슷한 연도에 학위를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겠지만 그 밖의 동문들은 알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일대 출신 예술가들도 비슷한 반응이다. 서울대 장진성 교수는 “신 씨가 광주비엔날레 감독직을 맡게 되면서 그의 학력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을 뿐”이라며 “내 경우 동문 모임에 거의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변양균 전 실장이 예일 출신이라는 사실조차 이번 사건이 터지면서 알았다”고 말했다.

즉, 동문회 측은 신정아씨 이외에도 예일대 출신을 사칭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 일일이 파악해보거나 대응하기 어려웠다는 입장이다.

동문회 관계자는 “신정아 파문으로 하루에도 문의 전화가 몇 번씩 온다”며 “400여명 중 실제 모임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이는 80여명 정도이며 변양균 전 실장과 신정아씨가 예일대 동문 모임을 통해 가까워졌다는 일부 보도는 어불성설”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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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