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대목 맞은 절도범들, 보안업체와 두뇌게임맥가이버식 수법·넉살 좋은 연기·두둑한 배짱…

송년회, 신년회 등으로 어수선한 연말연시에 치안 주의보가 내려졌다.

연말연시는 특히 절도범들의 ‘성수기’.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06년 절도범죄 발생건수가 총 19만 2,808건, 그 중 상당수가 휴가철이나 명절, 연말연시 등 시민들이 장시간 집을 비우는 시기에 발생한다.

보안경비업체 S사의 관계자는 ‘특히 이맘때인 12월부터 2월까지가 절도와 강력 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할 때’라고 밝혔다. S사가 담당하고 있는 금융기관, 기업, 주택 등의 경우 전체 침입사고가 2002년 2,500건에서 빠른 속도로 증가해 2007년에는 5,000건에 이르고 있다.

사설보안경비전문업체들이 늘어나면서 숫적으로 태부족한 경찰의 역할을 상호보완하고 있지만, 이같은 민관 공조의 보안경비 속에서도 한편에는 경비망의 빈 틈을 노리는 교묘한 수법의 대담한 절도범들이 늘고 있다.

■ 귀공자식 지능형 절도

서울의 한 고급 저택에서 발생. 보안경비업체의 관제실에 침입신호가 잡히자마자 바로 대원들이 현장으로 출동했다.

한 남자가 막 현관을 빠져 나오다 발각됐다. 남자는 키 185cm, 고급 양복 차림에 BMW승용차를 몰고 온 훤칠하고 매너있는 귀공자형 남성이었다. 그는 자신이 이 집의 큰 아들이라 소개하며 명함도 내밀었다.

“공연히 내 실수로 수고를 끼쳐 미안하다. 깜빡 잊고 서류를 집에 두고 와서 급히 서류를 가지러 오다가 그만 출입카드를 잊고 열쇠만 들고 오는 바람에 비상벨이 울린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확실한 신원확인을 위해 대원들이 경비시스템 실제가입자와 연락해 진위를 확인하려는 사이, 이 남자는 재빨리 자신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아버님, 저예요”라며 경비대원들이 듣는 앞에서 상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는 금세 전화를 끊었다. 누가 들어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부자간 대화투였다.

그리고는 “시간이 급해서 빨리 회사에 가야 한다”며 서둘러 차를 몰고 떠나버렸다. 대원들이 집안에 들어가보자 화장대가 망가진 채 그 안의 보석들이 털려있었다. 대원들이 건네달라는 요구를 할 틈도 없이 끊어버린 ‘전화쇼’는 BMW급 절도범의 원맨쇼였다.

BMW 탄 귀공자 "내가 아들" 연기…
"테스트 해 봤는데 빨리오네" 능청… "아내가 만삭" 울음… 알고보니 거짓
땅굴 판 쇼생크 탈출형은 '전설'로… 옆집여성 위협, 母子 흉내내고 도주

■ 적반하장, 오리발형

늦은 밤, 무단침입 신호를 포착하자마자 보안경비원들이 출동한 한 매장. 의외로 온 매장 전체에 불이 환하게 켜진 가운데 소파에 한 남자가 장부를 펴 들고 앉아있다.

출동대원들을 보자 “어, 진짜 기동력이 빠르네!” 칭찬까지 한다. (이 반대로 “내가 사장인데, 테스트삼아 들어와봤는데 출동이 왜 이리 늦어!”라고 큰소리치는 절도범도 있다). 그는 자신이 매장의 사장인데, 워낙 사업실적이 신통찮아 장부를 확인하던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글세, 우리 직원들이 만들어놓은 이 장부 꼬락서니 좀 봐라”라며 경비대에게 동조까지 구한다. “너무 화가 나서 지금 당장 다 나오라고 직원들에게 비상소집을 내려놨는데, 내가 집에서 급히 나오다 보니 그만 출입카드를 깜빡했다”고 태연스레 말한다. 완벽한 소품, 치밀한 스토리, 연기력까지 워낙 뛰어나 일반인이라면 영락없이 속기 쉬운 케이스다.

■ 퇴로 변경의 귀재형

한밤중 가택침입 신호가 포착돼 보안경비원들이 출동해 문제의 주택 앞을 봉쇄하고 들어가려던 찰나, 갑자기 옆집 대문이 열리면서 한 중년여성과 젊은이가 팔짱을 꼭 낀 채 다정히 걸어 나왔다.

사이좋은 모자의 밤길 외출 모습이었다. 그렇게 70,80미터쯤 골목길을 가더니 갑자기 젊은 남자가 후다닥 혼자 뛰어 달아났다. 그가 문제의 절도범이었던 것. 경비대원들이 출동하자 옆집으로 넘어가 그 집에 있던 중년여성에게 흉기를 들이댄 채 인질로 삼고 모자 행세를 하며 유유히 도망치려던 사례다.

■ 연기력 승부형

전당포에서 다이아반지 등 고가품을 털다가 발각, 위험한 격투 끝에 경찰에 잡힌 남자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실은 부인이 만삭인데, 가난한 처지에 부인 병원비라도 구해보려 한 일이라며 끝없이 눈물을 흘렸다.

자신이 없으면 가족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살 방도가 없다며 흐느꼈다. 절도범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나 딱한 사정에 인간적인 연민을 느낀 당시 (그를 잡아 인계했던) 담당경비대원은 직업에 회의를 느껴 사표까지 냈다가 반려 당했다.

법대로 사건이 처리된 뒤, 그래도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보안경비대원들은 범인의 가족을 돕겠다며 다 함께 성금을 모았다. 그리고 절도범의 주민등록증에 나온 주소지대로 4시간이나 헤맨 끝에 겨우 집을 찾아냈다. 그런데 집주인은 전연 엉뚱한 사람. 부인이 만삭이라는 사실은 물론, 주민등록증까지 위조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쇼생크 패러디형

고성능 센서 등 첨단 장비의 빈 틈을 찾거나 무력화시키려는 경우다. 표적으로 삼은 매장 등에 미리 손님으로 가장해 한 낮에 방문, 각 감지기의 위치를 파악한 뒤 일일이 테이프를 붙이는 등 장비를 무력화 한 뒤 범행을 시도한다.

고속연마기를 사용, 표적 매장의 천장이나 옥상, 범행 대상집의 윗집이나 윗 사무실로 들어가 수직으로 뚫고 내려가 침입하기도 한다. 모 금융기관의 지하 주차장에서 출발, 3시간동안 은행 안으로 ‘땅굴’을 파고 들어갔다가 잡힌 사례는 보안경비계에 구전되는 웃지 못할 전설 중 하나.

■ 절도 피해 예방책- 외출시 반드시 전등을 켜라

◇외출시 바깥으로 보이는 방에 작은 불이라도 켜 놓을 것

◇ 신문, 우유 등이 쌓이지 않게 하는 것은 기본.

◇ 비싼 보석류 등 귀중품은 은행 대여금고를 이용해 보관할 것.(집에 두더라도 분산 보관해야 한다)

◇ 현관, 창문 등 바깥쪽 통로는 잠가놓되 별 귀중품이 없는 장롱 등 집안 내 가구는 잠그지 않는 것이 좋다. (절도범 침입시 가구가 훼손되는 제2의 피해를 입을 수 있다)

◇ 집 전화로 부재 여부를 확인하는 절도범도 있으므로 외출시 집 전화번호 돌려받기 기능을 사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경찰청 자료에 의하면, 2007년 경찰 1인당 담당 인구수는 509명. 시설, 기계, 특수경비 등을 모두 합쳐 국내 경비업체는 전국에 2,671곳이다. ‘경찰과 보안경비업체의 대응기법도 날로 고도화되고 있지만, 무엇보다 연말연시를 보내는 시민들 자신의 보안의식이 필요하다’고 보안경비업체 관계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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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기자 pinpl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