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서 시작한 산지 직거래, 양평등 수도권으로 확산…거품제거로 조용한 유통혁명

‘한우 소고기, 이제 돼지 고기 가격(?)으로 먹는다!’

한우 소고기의 유통혁명이 조용히 일어나고 있다. 다름 아닌 소비자가 한우 소고기를 산지에서 싼 가격으로 직접 사 먹는 ‘산지 직거래’가 확산되고 있는 것. 지난 해 여름 강원 영월에 들어서며 선풍을 일으켰던 산지 직거래 형태 매장이 최근 양평 등 수도권에도 문을 여는 등 한우 직거래 시장이 확산 태세를 보이고 있다. 또 의정부와 수원 등지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한우 마을 조성 추진이 시도되고 있다.

국내에서 한우 소비자와 생산자, 즉 축산 농가를 직접 잇는 형태의 직거래 시장 효시격으로는 전북 정읍 산외마을이 꼽힌다. 이 곳은 정육점 주인들이 대부분 직접 키운 황소를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며 돌풍을 일으킨 바 있다. 주말에는 관광버스로 동네가 꽉 찰 정도로 수년 전부터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을 정도.

지난 해 8월 문을 연 강원 영월군 주천면의 다하누촌. 섶다리마을로도 이름난 이 곳의 최근 풍경 또한 다르지 않다.

물 좋고 공기 좋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졌지만 한적하다 싶을 정도로 조그만 시골 동네였던 이 곳에는 주말이면 전국에서 몰려든 차량들로 홍역을 치른다. 지난 해부터 붐을 이루기 시작한 다하누촌에서 소고기를 값싸게 맛보려는 이들이 줄을 서기 때문이다.

다하누촌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일종의 ‘토종 한우 정육점형 식당촌’이라 할 수 있다. 한우 산지에 정육점과 고깃집을 접목한 형태라서다.

다하누촌을 찾는 이들이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은 정육점이다. 여기서 한우 소고기를 필요한 만큼 사다가 식당으로 가져가 먹는 방식. 지난 해 다하누촌이 처음 생겼을 때만 해도 정육점은 한 곳 뿐이었는데 지금은 모두 6곳으로 늘어났다. 정육점 하나로는 주말이면 100여m씩 줄을 서는 고객들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 정육점에서 판매하는 가격대는 평균 한우(거세 황소) 300g(반근) 8,000원, 암소는 300g(반근) 14,000원 내외 선이다. 이 정도면 서울 시내에서 거의 돼지 고기를 먹는 가격으로 소고기를 먹는다는 주장이 나올 만도 하다. 양평의 하누가 마을 역시 한우 모듬 600g에 2만9,000원선을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산지 직거래 한우마을이 “예상 외의’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된 데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다. 가장 먼저 ‘한우 가격 거품 빼기’의 가장 큰 요인은 유통 구조를 줄인 덕분이다.

보통 국내 축산 시장에서 한우는 여러 단계의 유통 과정을 거친다. 목장주나 축산농가부터 수집상을 거쳐 도축장, 도매업자와 소매업자, 그리고 각 식당이나 업소들까지 대충 훑어만 보아도 6~7가지 단계는 넘는다. 단계마다 마진이 붙어야만 하는 이런 과정에서 실제 소비자에게 도달할 때쯤 한우 가격이 산지가의 4~5배까지 껑충 뛰어 오른다는 것이 시장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산지 직거래 한우마을은 한우 유통 단계를 크게 줄였다. 수많은 유통 과정을 생략하고 생산자-도축-판매 등 3단계 형태로 단순 축소한 것. 한우의 가격 거품 빼기는 그래서 가능해졌다. 실제 이들 한우마을에서 ‘한우 거품 가격은 유죄, 한우의 변신은 무죄!’라는 홍보 문구를 찾아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리고 한우 가격 파괴의 숨겨진 또 다른 비결 하나. 답은 ‘소고기 모듬’이다. 즉 이들 한우마을에서는 대부분 소고기를 ‘모듬’으로 판다. 등심 안심 갈비살 허벅지살 등 한우의 여러 부위를 한데 모아 파는 형태이다.

이는 소고기의 비싼 부위와 값싼 부위가 적당히 섞여 있어 한우의 가격을 일정하게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해 준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잘 팔리고 값비싼 부위로만 수요가 몰려 가격이 치솟거나 다른 부위는 값이 추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소비자로서는 소고기의 여러 부위를 한 자리에서 골고루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으로 꼽히기도 한다.

직거래 한우마을의 정육점에서 고기를 산 고객들이 향하는 곳은 바로 옆에 자리한 마을 식당들이다. 아직 시골마을의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이들 식당에서는 불판과 채소, 밑반찬 등을 제공하면서 대신 상차림비(1인당 2,500원)를 받는다.

고객들이 늘어나면서 정육점 못지 않게 식당들도 최근 덩달아 특수를 누리고 있다. 영월 다하누 마을은 처음 5개에 불과하던 식당이 지금은 30여개로 늘어났다. 마을 주민들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불과 반년도 안돼 6배나 급증한 것. 최근 개장한 하누가도 3개의 식당으로 시작했지만 계속 늘어나는 것은 마찬가지다.

식당이 늘어나면서 식당, 메뉴들도 차별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다하누촌 경우 불고기전문점, 곱창구이전문점, 육회전문점, 연탄구이전문점, 베트남식 쌈 전문점 등 매장 별로 개성을 살리는 전문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식당 각각마다 매장 별 개성을 불어넣는 효과를 거두고 소비자들로서는 다양한 입맛 충족과 선택의 폭을 넓혀 호응도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양평 하누가는 체험과 함께 하는 한우먹거리 여행 프로그램으로 경쟁력 강화를 꾀하고 나섰다. 한우 마을 뒤편 1,600여평의 노지에 올 봄부터 상추 깻잎 고추 마늘 등을 유기농 재배해 고객들이 원하는 만큼 직접 수확해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 하누가 한우정육도매센터 남호정 대표는 “도시에서는 보기 어려운 가축 농장과 한우 우사 체험도 함께 운영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가격과 함께 산지 한우 직거래 마을의 조성으로 거둔 최대 소득 중의 하나로 소비자와 생산자 간의 ‘신뢰’를 빼놓을 수 없다. 다름 아닌 ‘진짜 한우’ 소고기 판매가 검증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들 한우마을에서는 정육점 마다 도축한 소들을 올려 놓고 부위별로 골라 내는 작업이 종일 이뤄진다. 소비자가 보는 눈 앞에서 ‘한우’를 가져다 포장해 판매하고 있다는 표시인 것. 양평 하누가나 영월 다하누 모두 한우 등급 중 최고급에 해당하는 1+(원플러스) 소고기만을 판매하고 있다. 값은 싸지만 고기가 질기거나 맛없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서다.

특히 다하누 마을은 소고기 모듬을 파는 4개의 정육점 외에도 최근 등심 안심 등 고급 부위만을 파는 ‘명품관’과 내장 뼈 등을 판매하는 ‘부산물 정육점’도 새로 문을 열어 성업중이다.

산지 직거래 한우마을이 인기를 끌면서 지역 경제도 활성화되고 있다. 하누가 마을이 조성된 양평 청운마을 경우 이전에 상권이 거의 ‘죽어 있던’ 지역이었는데 최근 소생 기미를 보이고 있는 것. 조용한 시골 마을에 불과하던 이 지역에 도시민들이 찾아 들고 소비가 이뤄지면서 주말이면 북적북적대는 시장의 모습이 다시 살아나고 있어서다.

영월 주천의 다하누 마을 경우는 ‘다하누 신드롬’이라고 할 만큼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외관상으로도 마을 전체에 ‘다하누’란 간판이 빼곡히 가득 차고 있다. 정육점은 물론 기존의 식당들이 새로 단장하면서 모두 ‘다하누’ 상호를 공동 사용하고 있어서다.

공순원점, 황금시대점, ‘다하누 상하이’ 다하누 민다방’ 등 이색 상호가 보이는 것은 이 때문. 예전에 ‘상하이’이던 중국집과 찻집이던 ‘민다방’이 시설을 고치고 한우 소고기 식당 영업을 하면서 종전 이름을 그대로 따다 쓰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들 직거래 한우마을에서 소고기를 싸게 팔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로는 이처럼 값싼 고정비 덕분이기도 하다. 워낙 ‘조용하던’ 동네이기 때문에 땅값이나 임대료가 비싸지 않기 때문에 소고기도 최대한 싸게 팔 수 있는 구조인 것.

상권 활성화 효과 덕분에 인구의 80%가 노인과 어르신이던 이 동네는 최근 일자리를 얻은 젊은이들도 몰려 들며 활기가 넘쳐나고 있다. 소고기 소비가 늘어나면서 도축세 수입이 늘어난 영월군청 또한 이정표를 새로 만들어 다는 등 경기 활성화를 위해 노력을 보태고 있다. 마을 주민들 역시 주말이나 5일 장터가 열리는 날에는 축제를 여는 등 도시 손님 맞이에 열심이다.

이 같은 한우 직거래 장터는 FTA로 인한 소고기 수입 개방에도 긍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값싼 수입 소고기에 맞서 값이 비싸기만 한 것으로 인식된 한우 소고기의 판로를 확보해 줌으로써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논리에서다. 다하누의 김희성 마케팅이사는 “한우 직거래를 통해 한 마을을 개혁하고 있다는 책임감도 느낀다”며 “수입 소고기 시장이 개방되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다하누촌 (033)372-0121(www.dahanoo.com)

하누가 (031)774-7747


글ㆍ사진 영월 양평=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