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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세계-39] 상거래분쟁 중재전문가 이주원
갈등의 시대, 다리를 놓는다
기업들간의 분쟁 중재·알선·상담, 신청에서 판정 때까지 모든 일 관장


“웬만한 변호사보다 훨씬 많은 사건들을 접했을 겁니다.”

우리나라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재판소가 있다. 법원과 비슷하지만 법원은 아니다. 판사도 없고 검사도 없다. 법정 대신 판정실이 있다. 이 독특한 직장에 이주원(54)씨가 근무한다. 올해로 25년째다. 이 기관의 정식 명칭은 대한상사중재원이다. 산업자원부 장관의 지정 아래 국고 보조를 받으며 운영되는 사단법인이다. 이씨는 현재 이곳 중재부 무역해사팀 팀장을 맡고 있다.

그는 중재 전문가다. 그가 하는 일을 알자면, 중재원이 어떤 곳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대한상사중재원은 상거래상 일어나는 분쟁만을 전문으로 다루는 기관이다. 건설, 무역, 해운, 해상, 일반 거래 등 기업들간의 분쟁을 중재 또는 알선, 상담한다. 국내만 아니라 국제 분쟁도 맡는다. 애초에 기관이 설립된 것도 1966년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끝나는 시점에서 속속 불거지는 수출업체들의 무역상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다.






- 법원 소송에 비해 저비용ㆍ신속처리

신청인의 입장에서 보면 법원의 소송보다 신속하고 비용도 적게 든다. 절차나 심리 분위기도 상당히 자유롭다. 이곳에선 판사가 아니라 중재인이 판결한다. 중재인의 신분도 다양하다. 변호사를 비롯한 법조계 전문가들은 물론, 교수, 기업인, 공인회계사, 변리사 등 관련 분야의 전문 지식과 경륜, 덕망을 갖춘 이들로 위촉된 외부 중재인단 약 930명으로 구성된다.

판정 결과에 대한 법적 강제력이 법원과 똑같다. 일단 판정이 내려지면 두 번 다시 뒤집을 수 없다. 단 한번의 심리로 끝나는 단심제이기 때문이다. 소액 사건은 접수에서부터 판정까지 채 한달이 걸리지 않는다. 빠르면 두어 주만에 끝날 때도 있다. 통상 국내건 4~5개월, 국제건은 5~6개월 정도 소요된다. 이에 드는 비용도 소송에 비하면 큰 차이가 난다. 분쟁의 상대가 외국 기업이라도 똑같은 법적 효력을 적용받는다. 관련 국제협약이 있어 세계 134개국에 걸쳐 통용되고 있다. 갈수록 치열한 갈등의 시대에 온갖 소송으로 과부하된 법원의 부담을 덜어주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이씨가 소속된 중재부는 법원 행정처와 같은 역할을 맡는다. 중재 신청을 접수한 뒤 판정을 받기까지 그 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모두 돌본다. 신청서를 접수하는 일에서부터 해당 분쟁건에 적절한 1차 중재인 후보단을 선정하는 일, 이에 대해 양 당사자의 의견을 묻고 조율해 최종 적임자를 정하는 일, 섭외와 조정, 통지, 심리 날짜와 절차를 준비하는 일, 갖가지 문서 작업 등 중요하고도 자질구레한 많은 일들이 이들을 거쳐간다. 중재부원을 다 합쳐봐야 20명 정도. 그 적은 인원으로도 지난해에만 중재사건 총 221건, 알선 조정 500여건, 상담 5,000여건을 처리해 냈다.

“국제건의 경우에는 일도 많고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예를 들어 파키스탄 같은 곳은 정부의 허가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저희가 초청장을 만들어 보낼 때도 있습니다. 원래 기업에서 해야 할 일이라도 경우에 따라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는 문제면 최대한 돕고 있습니다.”

예정된 심리 날. 중재부 한 켠의 판정실로 하나 둘씩 약속된 손님들이 모여든다. 중재인과 신청인, 피신청인, 그리고 중재 서기 역할을 맡은 이씨다. 작은 사건은 중재인 1명이 들어가지만, 큰 사건의 경우 3명이 공동으로 중재를 맡는다. 법원으로 치면 합의부와 같다. 심리 현장의 풍경은 소송 때와 사뭇 다르다. 앉는 자리부터가 타원형 원탁 테이블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배치되어 있다. 중재 서기가 심리의 시작을 알리면 중재인이 본격적으로 바톤을 건네받아 심리를 이끌어 나간다.

여기에서는 분쟁 당사자 누구든 마음껏 변론을 펼 수 있다. 욕설이나 중언부언만 아니라면 누구도 말을 막거나 제지하지 않는다. 중재 테이블에서나 가능한 특성 중 하나다. 심리가 끝날 때까지 배석한 중재 서기가 과정 전부를 녹음하고 메모한다. 필요할 때마다 중재인을 도와 절차상 문제들을 조언하기도 한다. 심리가 끝나면 녹음한 내용을 요약해 조서를 꾸미거나 얼마 뒤 중재인의 판정 결과를 받아 정리하고 통보하는 마무리까지 중재부 담당자의 몫이다.

- 시한폭탄 같은 ‘알선’, 합의율은 높아

중재의 경우는 대부분 평화롭게 심리가 진행되지만, 중재부의 또 다른 업무인 알선의 경우 시한폭탄과 같다. 중재와 달리 알선은 법적 강제력을 갖지 않는, 단지 분쟁 당사자들의 합의를 도와주는 일이다. 당사자들간의 신경전으로 알선 도중 싸움이 벌어지거나 욕설이 오가는 사태가 심심찮게 벌어진다. 알선 담당자의 역할이 크고 무겁다.

“한번은 알선 중에 전 동양챔피언 복싱 선수가 흥분해 일어나더니 갑자기 상대에게 ‘한번 맞아보겠냐’며 주먹을 치켜들어 급히 말린 적이 있습니다. 그외에도 남대문 시장에 옷을 납품하는 어떤 아주머니는 상스런 욕을 퍼부어대는 등, 알선 때는 황당한 일이 많이 벌어집니다. 그래도 일단 알선 테이블에 양쪽을 앉히기만 하면 합의율이 평균 60~70%에 이릅니다. 미리 알선 과정만 거쳐도 굳이 소송이나 중재까지 이르지 않고 원만한 해결을 볼 수 있는 거지요.”

오죽하면 중재원까지 찾으랴. 억울하고 어이없는 사건들을 적잖이 만난다. 지난해 말, 국내의 한 종합무역상사에서 편직기 수출업자를 대행해 스리랑카에 외상으로 납품했다가 대금을 받지 못한 사건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스리랑카 업자를 국내로 불러들여 중재가 시작됐다. 그런데 스리랑카 업자측에서 갑자기 ‘기계가 녹슬었다’며 등 품질 불량을 주장하고 나섰다. 열띤 공방 끝에 결국 스리랑카 업주의 주장도 일부 받아들여져 결과적으로 쌍방이 각각 상대에게 밀린 대금과 소정의 손해배상을 지불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스리랑카 회사는 이미 망해서 강제집행을 하려고 해도 돈이 한 푼도 없었어요. 그렇게 자신들이 치러야 할 대금은 안 주면서도 이 외국업자는 오히려 자신들이 떼먹은 돈에 비하면 얼마되지도 않는 손해배상액을 빨리 내놓으라고 한국업자에게 큰소리를 친 거예요.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었지요.”(웃음)

더 코미디 같은 일도 있다. 7,8년 전쯤 러시아에 담요와 스웨터 등을 외상으로 수출했다가 약 290만달러의 대금을 받지 못해 이씨에게 상담을 요청한 업주가 있었다. 상대 외국업자는 인도의 재계 3위 대재벌로 러시아에 현지법인을 세워 물건을 받아다 파는 식이었다. 수출업자가 작성했다는 계약서를 보니 거의 완벽하리만큼 잘 만들어져 있었다. 대금이 제때 지불되지 않을 경우 하루 지연될 때마다 얼마의 페널티를 물도록 한다거나 러시아 현지법인의 대표는 물론 실질적인 소유주인 인도회사의 대표 서명날인까지 받는 등 아주 세세한 조항까지 철저하게 확인해 둔 상태였다. 그 정도의 계약서라면 이미 다 이긴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중재 신청을 해놓기만 해도 한 달도 안 돼 상대가 연락해 올 것’이라고 조언한 이씨. 굳이 중재 판정까지 가지 않고도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중재 신청후 몇 달이 지나도록 수출업자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아 ‘잘 끝나 다행스럽다’고 안심하고 있었다. 마음을 놓고 있던 이씨 앞에 어느날 갑자기 그 업자가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그간 벌어진 이야기를 들었을 때 차마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사연은 그러했다. 한 달이 아니라 1주일도 안 돼 이 업자에게 인도에서 연락이 날아들었다. 신청만 철회해 주면 무슨 조건이든 다 들어주겠다며 인도로 들어와 달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현지를 찾아가자 문제의 인도업자는 대재벌답게 으리으리한 건물에다 총 든 사람들이 도처에서 왔다갔다하는 사무실에 수출업자를 앉혀 놓고 전연 엉뚱한 말을 꺼냈다. 받으러 간 돈의 30%를 되레 깎으려 했다. 그 뒤에 ‘당신 하나 없어져도 아는 사람이 없다’는 협박도 덧붙였다. 두려움에 떨며 마지못해 합의서에 도장을 찍은 수출업자는 일부만 선금으로 받아든 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뒤 러시아에 들어갔다가 다시 인도업자와 우연히 마주쳐 두 번째 봉변을 당했다. 인도업자가 수출업자를 붙잡고는 ‘지금 옆 커피숍에 러시아 마피아들이 와 있다’며 30%보다 더 깎아줄 것을 요구했다. 결국 인도업자의 협박에 밀려 계약서를 고쳐준 뒤 도망치듯 귀국했다. 그리고 생각할수록 당한 일이 억울해 다시 이씨를 찾아온 것이었다.

“무역하시는 분들 중에 생각보다 순진한 분들도, 보수적인 분들도 많습니다. 이 분도 애초에 처음 당했을 때 바로 찾아오缺만?적절한 방법을 찾아 훨씬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텐데 혼자서만 고민하고 체념하다가 더 큰 낭패를 본 거지요.”

- 효율적 중재인 관리시스템 마련에 주력

이씨는 1979년 중재원에 입사했다. 대학에서 무역학을 전공한 뒤 한 상업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것이 2년. 그러다 ‘전공을 찾고 싶다’며 그만두고 나와 친구의 한 오퍼상을 잠시 돕던 중 중재원 공채 공고를 만났다.

입사하자마자 당시 월간지로 발행되던 ‘중재’지의 편집업무를 맡아 5년간 일했다. 돌이켜보면 중재 전문인으로서 튼튼한 기초를 닦게 해 준 모범적인 훈련 코스였다. 관련 분야의 내로라 하는 석학들의 원고를 기고받아 꼼꼼이 읽어나가는 사이 이 일에 필요한 전문지식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조정인의 테크닉을 익히기 위해 직접 원서로 된 외국의 전문서들을 찾아 읽으며 공부하기도 했다.

이어 국제 알선과 홍보, 중재, 알선상담, 부산지부장 등을 맡으며 교육과 중재, 알선, 상담 등 다양한 역할을 맡아왔다. 여가와 잠을 줄여가며 외국어대 대학원과 동국대 대학원에서 각각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한 경영학박사이기도 하다. 그간의 중재업무 경력과 능력을 인정받아 그 자신 또한 중재인 명단에 등록된 전문가이기도 하다. 실제로 직접 중재를 맡아 판정을 내린 일이 몇 번 된다.

“이것은 참 보람되고 의미있는 일이라는 것을 늘 느낍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해주는 것뿐 아니라 많은 업체와 상담을 나누거나 그렇게 해서 실질적으로 그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을 때 보람을 느낍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일하고 나면 퇴근 때쯤 머리가 어질어질할 때가 많다. 그만큼 에너지를 흠뻑 쏟은 탓이다. 요즘은 ‘중재제도 활성화 방안’까지 고민하느라 가뜩이나 짧은 하루가 더 짧아졌다. 효율적인 중재인 관리 시스템을 개발하는 일외에도 베테랑다운 고난이도 숙제들을 몇 개 더 갖고 있다. ‘최소한 그 일들만 다 해놓아도 훗날 은퇴를 맞을 때 자랑스럽게 문을 나설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씨. 아쉽게도 그와 같은 길을 체험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가장 최근의 공채란 것이 3년 전에 1명, 4년 전에 2명을 뽑은 정도다. 어떤 의미에서든 운 좋은 사람들이 여기 모여 있다.



정영주 자유기고가 pinplus@empal.com


입력시간 : 2004-05-19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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