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운동가·정치인서 공기업 CEO로 변신 "복마전·불법온상 인식 반드시 해소하겠다"

“재야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고, 국회의원도 해봤고, KRA(구 마사회)회장도 하고 있지만,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우재 KRA회장.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민족통일 전국학생연맹 공동의장을 거쳐 1979년 한국크리스챤아카데미 사건으로 투옥되기도 했다. 이후 전민련 감사, 민중당 상임대표를 거쳐 96년부터 제15, 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진보 진영과 보수 여당(한나라당)을 넘나든 이채로운 정치 경력을 갖고 있는 그가 한국 경마의 본거지 KRA 수장으로서 또 하나의 인생 페이지를 써내려 가고 있다.

“마사회에 막상 와보니 기구가 무척 크고 세분화돼 있더군요. 밖에서 보는 것 이상이에요. 마사회가 복마전이라는 얘기도 있었지만 회장으로서 경험해 보니 ‘정이 떨어질 정도로’ 철저하게 투명한 조직입니다.”

“KRA 조직이 원활히 굴러가는 것은 조직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실무적으로 업무 처리를 잘 해오고 있는 덕”이라는 이 회장은 “회장으로서의 역할은 실무진이 자체적으로 풀 수 없는 구조적이고도 정책적인 방면의 해결책을 강구해 주는 것”이라고 자신의 임무를 규정했다.

벌써 회장직을 맡은 지 1년여나 지나서인지 ‘정치인 이우재’는 이미 ‘경마인 이우재’로 변신해 있다.

대뜸 경마 환급률 얘기부터 꺼냈더니 “경마팬들에게 돌아가는 환급률부터 인상해 주어야 합니다. 현재의 72% 환급률로는 가장 큰 문제인 사설 경마 횡행을 극복할 수 없으며 이로 인해 세금의 누수 확대 악순환은 지속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술술 답한다.

"정부가 조직 운영 자율성 확보해 줘야"

이 회장은 “경마 베팅액에서 배당금으로 되돌려주는 환급률이 선진국 수준인 85%는 돼야 한다”고 힘줘 말한다.

미국, 영국, 홍콩 등 선진 경마국들에게서 볼 수 있듯 세율 인하를 통해 환급률을 인상함으로써 세수 감소가 아닌 증대 효과를 거둔 실례를 정부가 참고해야 한다는 것. 이 회장은 이를 위해 조세연구원에 경마 제도에 대한 용역 평가를 의뢰, 그 결과를 토대로 공청회도 열고 국회에서 관련 법규 개정에도 노력을 쏟고 있다.

“2005년 KRA 매출액 약 5조2,000억원에 마권 과세율이 18%라는 점을 감안하면 KRA는 엄청난 세금을 내면서도 사회에 대한 기여도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회장은 “이제 정부가 KRA를 정부 산하기관 정도로 바라보는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 정부가 KRA 조직 운영의 자율성을 확보해 줘야 하며 회장 자신도 이런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힘쓰겠다고 한다.

때문에 그 자신도 KRA 조직 운영에서 책임성보다는 자율성을 더 강조한다.

“직원들이 커다란 조직에서 일하다보니 자기가 맡은 일만 책임을 지려고 해요. 한정된 범위 내에서의 보호 본능이랄까요. 하지만 저는 그런 소극적인 책임보다는 능동적 책임을 주려고 합니다.”

직원들이 ‘잘못하지 않고 책임도 안지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일을 벌리고 책임은 지되 부족한 부분은 스스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 그의 업무 신조다. 그동안 경마 정책의 변화에도 힘을 쏟아 그는 취임 후 경영 관련 상을 5개나 수상했다.

경마 산업은 2002년 7조6,000억원 대의 매출액을 기록한 이후 지금까지 가파른 하락 내지 정체 추세에 직면해 있다.

경륜, 경정, 카지노, 로또 등 유사 업종의 출현에 따른 경쟁도 있지만 우후죽순격으로 개설되고 있는 사설게임장의 등장으로 시장이 잠식된 탓이 크다. “때문에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가다가는 3년 이내에 KRA도 경영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전망이다.

그래서 환급률 등 경마에 대한 기존의 틀을 바꾸는 것과 함께 직원들이 과거 타성에 젖지 않고 도전적인 자세를 갖는 것이 절실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원래 이 회장은 수의사 출신으로 농민 운동가다. 예산농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수의과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외할아버지가 3만석꾼이었어요. 엄청난 부자였지요. 그렇다고 부모님이 부자는 아니였어요. 부모님이 외할아버지 논에서 농사도 짓고 일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망한 부잣집 가문 출신’이라는 그는 당시 충청권에서 명문고인 예산농고와 서울대를 졸업한 후 농민운동에도 투신했다.

“당시 사회문제라면 농민문제밖에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공업이나 서비스업이 발달한 것도 아니었으니깐요.” 이 회장은 65년 사단법인 한국농업근대회연구회를 설립, 사무국장까지 지냈고 국민대 농업경제학 강사,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소장 등도 역임했다.

“일생을 농업인으로 지냈다”는 그는 “KRA 회장도 농민단체가 추천하고 후원해 지명된 것”이라고 말한다.

노무현 대통령과는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이가 아니라고 한다. 민중당 시절 노무현 의원에게 같이 활동하자고 제의했으나 거절당했고 이후 의원시절 해양수산부 장관 때 한두 번 전화통화만 해본 것이 전부라는 것.

“한나라당을 탈당한 후 열린우리당에 입당했지요. 17대 총선 전 공천심사위원이었지만 일부러 당내 경선에 나가서 졌습니다. 당원들이 한나라당에서 옮겨온 나를 찍어주고 싶었겠어요?”

“두 번(15, 16대)씩이나 국회의원을 해봐선지 꼭 이번에도 국회의원 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다”는 그는 “꼭 국회의원만이 애국하는 길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국회의원과 공기업인 KRA회장 중 어느 것이 더 좋으냐’는 질문에는 간단하게 답했다. “마음 편한 건 국회의원이 더 나은 것 같아요. 그래서 너도나도 의원하려고 뛰어드나봐요?(웃음)”

"정당 조직은 조폭 같아"

그는 지금 열린우리당 당원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당에 대해 그는 아쉬움을 내뱉는다.

“열린우리당을 만들 때 이렇게 되리라고 누가 생각했겠어요? 좋은 당을 만들려고 했는데…” 그는 “갑자기 다수당이 돼 여러 가지 정책을 밀어붙이는 과정에 삐걱거렸고, 그 결과 민심이 등 돌리다보니 이제는 아무리 잘 해도 제대로 인정못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라고 조심스럽게 평했다.

재야 출신인 그는 ‘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신한국당에서 국회의원을 지냈다. 농민운동가 출신으로 민주화 투쟁에도 앞장 선 그는 진보정당인 민중당을 만들었지만 빛을 보지는 못했다.

그는 김영삼 정부 시절 민자당이 재야혁신 세력을 영입할 때 입당했다. “당시 민중당이 의석 확보에 실패했지만 지금 민주노동당은 원내 진입에 성공했잖아요. 비례대표제 없이 당시처럼 소선거구제만 있었다면 민주노동당 역시 실패했을지 모릅니다”

그는 한나라당에서 의원 생활에 대해 “뿌리부터 생리가 맞지는 않았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이후 다른 의원들과 함께 탈당했다. “국민은 변했는데 정치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지구당 해체 등 정치개혁을 주장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다른 길을 선택한 것.

“지역주의 정치에 기생하느니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가서 그것을 깨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적당히 붙어 있다 3선, 4선 하는 게 무슨 의미 있나 싶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이며 쓴웃음을 짓는다. “정당 조직은 조폭 같아요. 집단 의견에 휩싸일 수밖에 없고 자기 의견은 없어요. 그래서 똑똑하던 사람도 국회의원이 되면 다들 바보가 되는지 모르죠.”

한 번도 일반 회사에서 월급쟁이 경험을 해보지 못한 그는 이번에 처음으로 기업 조직에서 일하는 셈이다. 그것도 최고위직인 회장으로.

“제가 운동권 생활을 오래한 셈인데 운동의 핵심이 사람관계가 아닙니까. 무엇보다 사람을 잘 다루는 게 중요하죠. 민중당 대표을 맡았을 때도 그랬습니다. 대표로서 문제를 파악하는 데 6개월, 심층으로 이해하는 데 6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이 회장은 “정치나 기업이나 정책 방향과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결국 운동권이나 KRA라는 거대 조직이나 시스템은 같지만 ‘오히려 KRA가 더 쉽다’는 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다. 이유는 ‘KRA가 더 제도화되어 있고 체계적으로 잘 움직여서’다.

앞으로의 목표를 물어보니 이 회장은 우선 KRA가 가진 2가지 부정적인 이미지를 해소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한다. KRA가 돈이 철철 넘쳐 자기들 맘대로 쓰는 복마전 조직이라는 인상과 경마 베팅 과정에서 불법이나 부정이 있을 수 있다는 이미지를 씻어버려야 한다는 것.

임기 마치면 농업·통일 분야서 일할 것

36년생인 이 회장은 올해 68세로 이젠 고령이다. 하지만 가까이서 그를 접해 본 이들은 그를 “나이보다 훨씬 젊다”고 얘기한다. “건강관리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잘 자고, 잘 먹고···”라며 마음 편한 게 최고라는 지론을 편 그는 “단지, 요즘엔 몇 시간씩 운전하면 눈이 피곤해지는 것 같다”는 게 건강상의 문제(?)라고 말한다.

“가끔 졸리면 눈을 감아요. 깜빡 졸고 나면 기분이 상쾌해지는데 단잠이 선천적 건강유지 비결이죠.” 뒤늦게 비법을 살짝 공개한 이 회장은 민중당 대표 시절에도 토론 사회를 볼 때 양측의 논쟁이 격화돼 열기를 내뿜는 와중에도 ‘잠시 눈을 감았다가 살짝 졸고 깬 경우가 있다”고 털어놨다. “나중에 보면 별 것도 아닌 데 서로 ‘된다’ ‘안 된다’고 다투고 고집 부리는 것이 답답합니다.”

그가 운동권 시절 경찰서에 붙잡혀 가서 작성된 조서에서 형사들은 ‘솔직한 사람’이라고 기록했다고 한다. 실제 털털하고 솔직한 것이 그를 만난 사람 누구나 다 인정하는 부분이다.

KRA 회장의 임기는 3년이다. “3년 지나면 누가 더 시켜주겠어요? 우선 건강하니까 임기 마치면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해야죠. 농업과 통일 분야 말이예요. 귀향해서 농촌의 문화와 정신을 지키는 향토 운동도 해볼 생각입니다.” 농촌이 자꾸 어려워지면서 예전의 정신도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울에 있으면 돈만 많이 들잖아. 시골에 가서 건강한 야채 먹고 낚시도 하고. 또 좋은 일도 해야지, 효도 운동이든, 환경 운동이든.” 조랑말을 하나 사서 타고 다닐까 생각도 하는 중이란다. KRA회장답다.

“정치 안 했으면 뭘 했을까? 아마 목장을 경영했을지도 모르지. 나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팔자 좋은 사람 중 하나일지도 몰라. 하고 싶은 일 다 했고 마누라 덕에 돈 안 벌고도 살았으니까···” 이 회장의 아내는 대학교수다.

“인간들 중에 성취욕이 가장 강한 사람들이 아마 정치인일 겁니다. 정치는 죽기살기식의 권력게임 아닙니까. 하지만 정치가 전부인 사람도 있는데 그건 위험합니다. 개인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도움이 안 돼요.”

그는 또한 정치에 올인했다가 나중에 그만두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며 정치 지망생은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고 충고했다.

“난 돈이 없지만 전문 분야가 있잖아요. 가축병원이라도 하면 되거든요. 그래서 정치인 중에 변호사가 많나 봅니다”고 경험담을 털어놓은 그는 그렇지만 “국민들이 정치가 갖는 의미를 사회, 역사적으로 살펴보는 시각을 지녀야만 좋은 정치,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유권자의 깨어있는 의식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정치에서 한 발 벗어나 “우선은 경마를 통해 국가와 사회에 봉사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경마가 즐기는 여가문화로 정착될 수 있을지 그의 견마지로가 기대된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