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새 주말극 서 '팥쥐'역

예쁘다고, 남자 복이 많은 건 아닌 모양이다. 동그랗게 커다란 두 눈이 마냥 귀여운 느낌을 주는 탤런트 허영란(26)은 유난히 극 중에서 파트너 복이 없는 배우다.

드라마 ‘앞집 여자’(2003)와 ‘두 번째 프로포즈’(2004)에선 연거푸 유부남과 사랑에 빠지는 ‘불륜녀’로 등장했고, 전작 ‘서동요’에선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줬지만 끝내 서동왕자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우영공주’로 분했다.

새 MBC 주말드라마 ‘누나’(연출 오경훈ㆍ극본 김정수)에서도 그녀의 불운한(?) 연애는 이어진다. 조용하고 참한 성격이나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온 승주(송윤아) 때문에 남몰래 좋아해온 건우(김성수)에게 사랑표현 한 번 못해보고 물러난 ‘수아’역으로 출연한다. 이번에도 사랑은 그녀를 비껴가는 셈이다.

사실 배역 캐스팅 초기단계에서는 건우의 동생 ‘건세’(강경준)의 연인으로 출연할 예정이었지만, ‘팥쥐’ 수아로 배역이 교체됐다.

그래서일까. 7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누나’ 제작발표회장에서 만난 허영란은 다소 가라앉은 느낌을 주었다. 기자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기자회견에 나온 사람처럼 보인다”는 말이 돌았을 만큼.

허영란은 이 자리에서 “이젠 사랑 받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한 여자를 두고, 두세 명의 남자가 맹목적인 사랑을 보내는 것이 현실에선 불가능한 얘기잖아요. 극에서나마 ‘불륜’ 말고, 그런 사랑 해보고 싶었는데 아직은 때가 아닌가 봐요. 그냥 드라마에 충실하려고 해요.”

극중 수아의 건우를 향한 이룰 수 없는 사랑은 승주에 대한 열등감과 합쳐져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는 질투심으로 번진다. 부잣집 딸이었지만 아버지의 실종으로 하루 아침에 몰락한 승주를 지독하게 괴롭힌다.

김정수 작가의 추천에 "OK"

“어설픈 악역을 하고 싶지 않아요. 악역다운 악역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악역이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나름의 아픔이 있는 것 같고, ‘엄마의 바다’ ‘그 여자네 집’ 등을 집필한 김정수 작가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캐스팅을 추천했다는 점이 그녀가 ‘누나’를 선택한 직접적 이유라고 덧붙였다.

세간에는 ‘차갑다’ ‘당돌하다’는 평판이 있지만, 실제 허영란은 낯을 많이 가리는 조용한 성격. 스스로 ‘전형적인 A형’이라고 표현한다. 때문에 앞으로 지독한 악역을 어떻게 그려나갈지 내심 걱정도 된다고 토로한다.

생년월일: 1980년 9월 16일
키: 162cm 체중: 43kg 혈액형: A형
가족사항: 1남 2녀 중 막내
데뷔: 1996년 MBC 드라마 '나'
수상: 2004년 KBS 연기대상 조연상
출신학교: 경기대학교 다중영상매체학부

“사실 알고 보면 별로 독한 면이 없어요. 내숭이 아니고요.”

질투심의 대상인 승주 역의 송윤아와는 SBS 단막극 ‘유실물’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윤아 언니가 까다롭지도 않고, 저도 상대 배우를 의식하거나 질투하지 않는 편”이라며 여배우들 사이의 경쟁의식은 단연코 없다고 손사래 친다.

드라마 시작 전엔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었다. “그냥 집에서 쉬었어요”라는 간단 명료한 답변. 그러나 그 속에는 복잡다단한 심경이 비춰지는 듯했다.

사실 허영란은 전작 ‘서동요’ 출연 후 무척 지쳐 있는 상태였다. 촬영 이틀 전에야 캐스팅 통보를 받고, 사전 준비 없이 드라마 중간에 투입됐던 것. 열여섯 살 때 데뷔해 연기 경력 10년을 훌쩍 넘긴 베테랑이지만 사극 연기의 어려움은 생각보다 컸단다. 게다가 극 초반부터 동고동락해온 다른 연기자들과 달리 그녀만 홀로 ‘미운 오리 새끼’ 같이 중도에 합류해 적응이 쉽지 않았다.

“너무 지치게 촬영해서 나중에 병원 가서 펑펑 울었어요. 하지만 작가 선생님으로부터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섬세하게 표현해줘 고맙다’는 전화를 받았을 땐 정말 기뻤어요.”

다소 험난해도 꿋꿋이 제 길을 가는 허영란. ‘누나’에서 더욱 성숙해진 연기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 받고 싶은’ 그녀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