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 이방호 의원 꺾고 총선서 생환했지만 한미 FTA 비준 등 현안 산적32년간 걸어온 농민운동 외길… 농촌총각 결혼대책위 시절부터 수염 길러현역의원 사상 최장기 29일 단식투쟁… 14세 차 아내와의 멋진 로맨스 눈길

“사천도 놀라고 나도 놀랐습니다!”

18대 총선의 최대 이변은 단연 경남 사천의 승부였다. MB의 남자, 한나라당의 실세 이방호 의원을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간발의 차로 물리친 것. 언론에서는 강 의원의 ‘상큼한’ 승리를 18대 총선의 박하사탕, 골리앗을 이긴 다윗이라고 했다.

■ "박 간사 내가 니를 사랑하는 줄 몰랐더나?"

강기갑 의원은 1953년 사천에서 태어나 71년 사천농고를 졸업하고 농사일을 시작했다. 17대 국회 의정활동을 시작했던 2004년까지 젖소 90여 마리를 키운 30년 ‘베테랑’ 농사꾼이었다. 그는 76년 한국가톨릭농민회에 가입하면서 농민운동의 길을 걸었다.

87년부터 91년까지 가톨릭농민회 경남연합회 회장을 맡았던 그는 96년 사천 농민회 회장을 맡아 지역 농민을 이끌었고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의장과 경남도연맹 의장을 비롯해 각종 농민운동을 주도했다.

그가 결혼을 하고 수염을 기른 것은 <농촌총각 결혼대책위원회(이하 결대위)> 활동을 하면서다. 1989년 농산물 수입개방 반대 시위를 벌이다 전국 농민대표들이 경찰서에 연행된 적이 있다. 이때 연행된 노총각들이 모두 농촌 총각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유치장 안에서 결대위를 결성하고 강 의원에게 위원장을 맡겼다.

이때 강 의원은 ‘농촌 총각 첫 번째 쌍을 결혼시킬 때까지 머리카락과 수염을 자르지 않겠다’는 결의를 하게 됐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오늘날 강 의원의 트레이드 마크인 ‘수염’이 만들어 지게 된 것이다.

“그때 깎았는데 또 다음 쌍을 이루기 위해 기르고 하다 보니까 수염 기른 모습이 제 모습이 돼서 수염을 깎으니까 사람들이 잘 몰라보더라고요. 제가 수염을 깎아버리면 좀 미남입니다.”

100여 쌍의 부부가 탄생한 결대위에서 32번째로 탄생한 커플이 강기갑-박영옥(41) 커플이다. 결대위 위원장과 간사로 만난 이들은 14살 차이의 나이를 극복하고 결혼에 이르렀다.

2년간 대책위에서 일하며 같은 가톨릭 신자로 함께 새벽미사를 드리고 성경공부를 하는 동안 두 사람의 감정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박영옥 씨는 어느 날 강기갑 의원의 일기장에서 “평생 처음으로 한 여자가 맘에 들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울기도 많이 울고 기도도 많이 했지만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내용을 보고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후 강기갑 의원이 던진 “박 간사 내가 니를 사랑하는 줄 몰랐더나?”는 투박한 사랑 고백에 마음의 빗장이 풀리고 말았단다. 91년 결혼한 이들은 현재 맏아들 주원(14), 둘째 아들 주호(12), 딸 소화(8), 셋째 아들 금필(3)과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 국회로 간 농사꾼

농민운동을 해온 강 의원은 처음부터 정치에 뜻이 없었다. 농민운동에 전념하던 그는 2004년 17대 총선 후보 등록 3일을 앞두고 전농으로부터 농민 대표로서 민노당 후보로 출마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는 가족 지역조직과 대책회의를 할만큼 심각한 고민 끝에 전농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17대 국회에 입성했다.

지난 4년 간 그는 소속 계급에 가장 충실한 정치인이었다. 17대 국회에서 그는 가장 독특한 패션으로 주목 받았다. 길게 기른 수염과 한복, 하얀 고무신이 그의 트레이드마크.

농민이라는 계급 정체성을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회로 들어가며 그는 “의정활동과 농사를 병행하겠다”고 말했다. 비록 이 공약(?)을 지키지 못했을지라도 지난 4년간 그가 350만 농민을 대변해 왔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그는 의원직을 유지한 채 전농 부의장으로 활동했고 홍콩과 미국으로 국제적인 농민투쟁의 조직을 꾸리고 활동했다.

국정감사모니터단 평가에서 그는 2004, 2006, 2007년 우수의원으로 선정됐다. 한-칠레 FTA 비준안이 통과되고 박관용 당시 국회의장의 악수를 거절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당시 그는 “어머니를 팔아버렸기 때문에 손을 잡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2004년 쌀 개방반대 단식에 이어 2005년 5월과 11월 두 차례 쌀 개방 비준안 반대 단식농성을 했다. 2005년 5월, 29일간 진행한 그의 단식농성은 현역의원 사상 최장기 단식투쟁으로 기록되어 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고 그래도 해결이 안 되고 그럴 때는 곡기라도 끊고 굶으면서 또 뭔가 화두를 던지고 촉구하려는 절박함이 단식을 하게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식과 투쟁의 대명사로 알려진 농민의 대표였지만, 정작 그를 본격적으로 알린 것은 이번 18대 총선 경남 사천에 출마하면서 부터다.

선거 초반 한나라당 이방호 의원과 30%P 이상 차이가 났다. 해보나마나 한 선거 전망이었다. 총선 운동에서 그는 꼬장꼬장한 선비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청바지 차림으로 대학교 앞에서 ‘텔미’ 춤을 춰 화제를 낳았다.

사천 곳곳을 누비며 ‘선거 농사 잘 지어야 한다’며 호소했다. 민주노동당의 전폭적인 지원과 친박계열의 이방호 의원 낙선운동, 그가 봉사활동을 했던 충남 태안 주민들의 ‘보은 원정’도 한몫 했다. 결과는 178표 차의 극적인 승리.

그의 역전을 두고 한나라당 공천 사태의 주역인 이방호 의원을 낙선시키기 위해 친박 세력의 지지도 작용했다고 말한다. 강 의원 역시 “그런 것도 상당히 많이 작용했다고 본다. 공천 파동에 의한 민심이반이 상당히 강력히 일어났다”라고 인정한다.

하지만, 그의 승리는 지난 4년간 의정활동에 충실한 그의 진정성을 사천 주민이 읽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앞선다. 사천의 민주노동당 정당 득표율은 23.48%. 울산북구(23.6%) 다음으로 전국에서 민노당 정당 득표율이 높은 지역이다.

■ 그의 단식은 계속될까?

“살아서 돌아 오셔서 축하한다”는 인사에 강기갑 의원은 “죽으러 돌아온 심정”이라고 말했다. 얼마 후(4월 25일) 열릴 임시국회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4월 임시국회에서 표결을 해서라고 한미 FTA비준안을 통과시키겠다는 태세다. 그가 또 단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한미 FTA가 국회로 넘어온지는 오래됐습니다만 국정감사, 대선, 총선 등 그걸 검증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지 않았습니까? 정말 득인지 실인지 돋보기로 들여다보고 검증을 해야 합니다. 미국은 어차피 대선 주자들이 다 반대하고 대선이 끝난 내년 상반기가 되어야 미 의회에서 거론이 될 겁니다. 우리만 미국이 요구하는 쇠고기 내주고 이것저것 주문 다 들어주는 형국으로 자꾸 ‘보살펴 주시옵소서’하고 조공바치는 형식으로 가는 데 얼마나 굴욕적입니까?”

한미 FTA와 쇠고기 협상을 말하며 그는 “속에서 불 덩이가 올라온다”고 말했다.

“농어민은 국민의 밥상을 책임지는 어머니 역할을 하는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산업화의 물결 속에 농업이 희생지물로 통상협정에서 늘 이렇게 대접 받아왔습니다.”

그는 체질에 맞지 않는다는 4년의 의정활동을 누구보다 충실하게 해왔다. 그러면서도 “지난 4년처럼 열정적으로 의정활동을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크게 능력은 뛰어나지 못했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하겠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런 다짐뿐입니다.” 강 의원에게 국민의 기대가 큰 솔직함과 겸손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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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