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임지 현대미술 모은 나만의 미술관쿠바·한국등 동시대 아티스트 작품으로 집안 곳곳 아담한 공간 연출


미술 애호가라면 좋아하는 작품들을 박물관에 가서 감상하는데 그치지 않고, 수집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대부분 아트 컬렉션은 꿈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영국인들은 예외다. 그들은 대단한 부자가 아니더라도 수집광의 기질을 십분 발휘해 자기 집을 박물관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주한 영국대사관에 근무하는 조나단 노트 부대사 관저 역시 수집을 생활화한 영국인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세계 현대 미술관 방불케 하는 메인거실

삼청터널을 지나 북악산 스카이웨이로 접어들면 고급 주택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낸다. 2007년 봄 주한영국대사관 부대사로 부임해온 조나단 노트(Jonathan Knott·43) 씨의 서울 보금자리도 그곳에 자리잡고 있다. 북악산 기슭에 위치해 있고, 서울의 유명 사찰인 길상사가 보이는 등 주변 경관이 수려하다. 그러나 외관상 웅장하거나 화려한 느낌은 전혀 없다.

집 안으로 들어가면 웅장한 느낌과는 더욱 멀어진다. 노트 부대사와 부인 안젤라 여사가 살고 있는 부대사 관저는 소박한 가운데 집주인의 취향에 따라 수집한 물건을 모아 놓은 전형적인 영국 중산층 가정의 모습이다. 거실의 벽난로가 영국적인 집안 분위기를 더해준다.

실제 안젤라 여사는 영국 BBC방송에서 출간하는 유명 인테리어 잡지 '홈앤앤티크(Home & Antiques)'를 즐겨 보며, 영국적인 인테리어 감각으로 집안을 꾸며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영국적인 발상에만 머무르진 않았다.

직업 외교관인 노트 부대사는 부임지에서 그 나라의 현대미술을 사 모았다.

"전통을 중시하는 영국인은 옛 것에 집착하는 면이 있지요. 하지만 영국인이라고 꼭 골동품만 모으라는 법은 없지요. 그 나라의 현재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대미술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부임지마다 동시대 아티스트들과 교류하고, 그들의 작품을 사 모았어요. 그런 이유로 저희 집에 앤티크는 단 한 점도 없습니다."

2층 집인 관저는 거실과 서재 등이 모두 아담한 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그리고 공간마다 노트 부대사의 부임지였던 쿠바, 멕시코, 프랑스, 영국, 한국에서 구입한 현대 회화와 조각품들로 채워져 있다.

그 중 조나단 노트 부대사가 이 집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공간은 2층 메인 거실이다. 거실에 들어서면 소규모 현대 미술관을 방문한 듯하다.

2층 계단입구부터 여러 개의 얼굴이 그려진 쿠바 화가의 그림이 걸려있다. 그림의 원제는 '명상하는 얼굴들(Meditating Faces)'. 옆쪽엔 멕시코 산 도자기세트를 모아놓은 찬장이 보인다.

계속해서 거실 구석구석 프랑스에서 구입한 그림과 멕시코에서 구입한 말 조각품 등이 진열돼 있다. 어떤 작품은 옛날 느낌을 풍기지만 모두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이다.

벽난로 위에도 멕시코, 이탈리아, 영국 작가의 그림이 걸려 있다. 이 세 점 중 그는 영국화가의 작품을 가장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것은 유명 조각가인 헨리 무어가 그린 그림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색상의 프랑스 회화 밑에는 한국에 와서 산 현존하는 도예가의 백자가 수려한 모습을 뽐낸다.

1-멕시코그림
2- 멕시코산 도자기
3-부대사 관저 거실
4-쿠바그림

작품진열은 공간의 성격에 맞게

메인 거실 이외의 공간엔 값 나가는 작품보다는 여행 중에 구입한 사진이라든가 캐주얼한 장식품, 그림 컬렉션을 진열해 놓았다. 각각의 공간 성격에 맞는 작품을 모아 놓은 게 노트 부대사 집 컬렉션의 특징이다.

2층 손님 접대용으로 쓰이는 메인 거실 옆엔 가족만의 오붓한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아담한 거실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다.

전체적으로 검소하면서 포근한 가족적인 분위기인 이 공간 역시 현대 예술 작품들이 걸려 있다.

"값비싼 그림들이 아니에요. 벽에 걸린 3점의 그림 모두 그리스를 여행할 때 샀던 그리스의 전통 점성술 관련 작품이에요. 고가의 예술품은 아니지만 이 그림들은 우리 부부가 여행할 때의 소중한 추억들을 떠올리게 만들어 주지요. 개인적인 공간이라 가족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작품들을 모아 뒀지요."

10인용 식탁이 놓여 있는 식당은 두 식구가 이용하는 공간치고는 다소 웅장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손님 초대가 잦은 관계로 이곳은 대부분 화기애애한 파티 장소로 애용된다. 따라서 경쾌한 느낌을 주는 그림을 걸어 놓았다.

서재는 부대사가 이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 사람이 지나다니는 소리 등으로 독서와 업무에 방해 받는 일이 없도록 서재는 이 집에서 가장 조용한 곳에 위치해 있다. 독서를 하거나 집에서 공무를 수행할 때 그는 늘 이곳에 머무른다.

고풍스러운 책상과 아랍풍 탁자, 멕시코 산 나무 조각품, 벽면에 걸린 현대 미술 작품들과 데스크탑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책장에는 정치·경제와 전문 외교서적은 물론 영국 고전 문학과 예술 관련 서적들이 두루 꽂혀있다.

서재에 걸린 사진과 그림들은 전체적으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고, 차분한 기분으로 만들어 준다.

집을 안내해 준 뒤, 노트 부대사는 수집에 대한 소신과 노하우를 밝히기도 했다.

"영국은 작지만 세계에서 발명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입니다. 창의적인 발상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수집력에서 오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집 주인의 취향에 따라 한 종류의 아이템을 꾸준히 모으다 보면 그 방면의 안목이 넓어지고, 삶이 풍요로워집니다."

그러면서 그는 반드시 돈이 많아야 수집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충고한다.

"수집하는 물건 혹은 예술작품이 꼭 비싸야 하는 것은 아니지요. 저희 집은 현대 미술 작품들을 모아놓았지만 제가 부자라서 수집이 가능했던 것은 아닙니다. 외교관이 돈 많이 버는 직업은 아니잖아요?(웃음)사고 싶은 작품이 생기면 여유 돈을 털어 사 모으는 정도이지요. 또, 가격 부담이 전혀 없는 길거리 작품들도 많이 모았고요."

수집은 하고싶은데, 용기가 없거나 어떻게 모아야 할지 막연한 미술 애호가라면 수집광의 나라에서 온 현대미술 수집가 노트 부대사의 조언에 귀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조나단 노트 부대사는

영국의 명문 옥스포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지난해 한국으로 부임해온 이래 한-영 양국의 경제교류를 지원하며, 영국의 저탄소 정책의 노하우를 한국기업에 전파하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EU FTA 비준을 눈앞에 두고 매우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경제통인 그는 틈틈이 부인 안젤라 여사와 함께 현대미술작품을 모으는 취미 생활을 즐기고 있다.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