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초대석] 소설가 이외수인간 한계의 고민 선계와 환상의 세계 통해 해답 찾아

깊게 패인 주름과 반백의 수염, 길게 땋아 늘어뜨린 머리. 흡사 도인을 연상케 하는 이 사람은 한때 괴짜 행적으로 이름을 알린 작가 이외수다. 사흘 밤낮을 술에 취해 있고, 개집에서 잠을 자며, 스스로 집안에 교도소 철문을 달아 세상과 단절한 채 글을 썼다는 그의 과거는 전설로 남았다.

그는 이제 젊은 세대와 인터넷을 하고, 글잘 쓰는 에세이집을 발간한다. 라디오 DJ도 자처하며, 시트콤 ‘크크섬의 비밀’에도 출연했다. 젊은 세대는 그를 ‘무릎팍 도사’와 ‘네이트 CF’로 기억한다.

그러나 이외수를 설명하는 수식어의 향연을 즐기는 동안, 대중은 이 반백의 노인이 그들 앞에 존재하는 단 한 가지 이유를 간과했다. 바로 ‘문학의 위기’라는 이 척박한 현실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작가라는 사실 말이다.

경제학자 우석훈 씨는 어느 경제 칼럼에서 “2008년의 이 부문(문학) 절대강자 3명, 황석영·이외수·공지영의 인세를 간단하게 추정해봤는데, 이들 3명이 전체의 10%가량을 가지고 가는 그런 시장구조로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작가 이외수는 한국에서 잘 읽히는 글을 쓰는 ‘톱 쓰리’ 중 하나인 셈이다.

하악하악

“그렇게 입고 있으면 흉봐요.”

맨발로 일행을 맞는 이외수 작가를 보며, 부인 전영자 씨가 눈치를 준다. ‘싸모님’이 코디한 옷을 갈아입는 동안, 그가 사용한다는 컴퓨터를 찾았다. 하루 5시간 인터넷을 하는 그는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와 DC인사이드 이외수 갤러리 등 4,5군데 홈페이지에 매일 댓글을 단다.

댓글 내용은 독자들의 고민 상담이 주를 이룬다. 옷을 갈아입고 나온 작가는 “한 줄 만으로도 읽히는 맛, 행복감과 즐거움이 있는 글을 써야 해요. 내가 명색이 작가인데”라고 말했다.

“얼마 전에 고 3학생에게 야동 끊는 법을 상담한 적이 있어요. 평생 끊기는 너무 힘들고 딱 1년만 끊자고 했죠. ‘그 동안 야동은 더욱 업그레이드되고, 고급한 내용과 화질로 너를 기다릴게다. 이렇게 써서 붙여 놔라. 엄마가 YD가 뭐냐고 물으면 연세대라고 대답해라.’ 나름대로 고심했던 상담 중 하나입니다.”

그의 글이 젊은 세대에게 읽히는 비결은 ‘귀도 열고 마음도 여는’ 쌍방향성에 있는 듯했다. 작가는 10대의 언어로 10대를 타이르고 감싸고 꾸짖는다. 인터넷을 통한 소통은 하루 중 시간이 날 때 하는 일이다. 오후 4시부터 5~6시간, 그는 오프라인으로 소통한다. 인터뷰를 하고, 하산한 문하생을 만나고, 각계에서 온 손님을 맞는다.

“집필은 언제 하세요?”

“아, <청춘불패> 나왔잖아요. 이종격투기 선수도 한 게임 뛰면 최소한 육개월은 쉬는데, 나도 좀 놀 때가 있어야지.”

그의 장편을 보고 싶다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 <하악하악>, <글쓰기의 공중부양> 그리고 최근 나온 <청춘불패>까지. 그의 최근 저서는 모두 에세이다. 수십 권의 책을 쓰고 그 책의 대부분이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작가지만, 사실 그가 30년 간 쓴 장편 소설은 7편이 전부다.

데뷔 때부터 과작(寡作)을 쓰기로 결심했던 그는 장편 하나를 쓰는데 평균 4~5년이 걸린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이외수를 분석한 글에서 “들끓는 성욕을 끊으려고 돌로 자신의 성기를 짓이기는 수도자의 처절한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고 썼다.

장편을 쓸 때 항상 처음부터 거듭 읽고 고치고 또 그 다음을 쓰는 방식을 끔찍할 정도로 반복하는 그의 집필 습관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작가는 “<괴물>같은 경우에 첫 머리 400매를 40번 바꿨다”고 말했다.

“같이 술 먹던 친구들은 술 먹고 글 쓸 거라고 생각하죠. 그 사람들은 내가 칩거하고 글 쓸 때 본 적이 없어요. 글 쓸 때는 두문불출하기 때문에 술 먹을 때와 다르죠. 내가 늘 머리 기르는 건 아닙니다. 장편 쓸 때는 깎아. 근데 깎은 거 한 번도 못 봤잖아요.”

그렇게 쓴 소설은 선계와 현실을 뛰어넘는다. 도가와 유학 사상을 담은 메시지는 유머러스한 문장으로 남는다. 작가의 말처럼, 우울하고 비참한 현실을 웃어넘기는 여유는 ‘고수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이 고수의 경지는 그의 ‘2기 작품’에서 보이는 특징이다.

흔히 이외수 장편 소설을 1기와 2기로 나눈다. 그가 문단에 이름을 알린 <꿈꾸는 식물>을 비롯해 <들개><칼>을 1기로 둔다면, 10년의 칩거 끝에 내놓은 <벽오금학도>를 기점으로 <황금비늘>, <괴물>, <장외인간>을 2기로 친다. 비루한 현실에서 인간의 한계를 고민하는 1기의 작품 속 화자들은 2기에 들어서며 선계와 환상의 세계를 통해 해답을 찾아 나아간다.

내 집 장만을 위해 <칼>을 쓰고 죄책감에 빠져 한 동안 붓을 꺾었다, 다시 이 과오를 만회할 방법은 좋은 작품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해 다시 펜을 들었던 10년의 세월은 <무릎팍 도사>를 통해 온 국민이 다 아는 스토리가 됐으니, 인터뷰에서 그 이야기는 생략했다.

대신, 작가의 세계관을 설명해 달라고 했다. ‘아버지는 개였다’고 시작하는 소설 속 화자는 바로 자신이었노라고, 작가는 얼마 전 출간한 <청춘불패>에서 밝혔다. 또한 선계와 현실을 오가는 중간자적 주인공이 대중과 소통하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은 그간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 그가 누누이 말해왔던 사실이다.

거의 모든 작가가 자신의 현실을 작품에 그대로 쓰지 않는다. 그러나 작가의 삶이 작품의 화수분이 되는 것은 어떤 작가도 피할 수 없는 보편적 진리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자와 섹스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무기력한 인물(1978년 작, <꿈꾸는 식물>)이 사람을 독침 쏘아 죽이는 괴물(2002년 작, <괴물>)로 변하는 동안 작가 이외수의 세계관은 어떻게 변했을까.

“당시 절망하고 좌절했던 나의 분신들, 작중 인물을 어쨌든 구원해야 하잖아요. 그런 시련과 고통을 겪게 하고 무책임하게 자살하거나 주저앉게 해서는 안 되겠다, 그래서 생각한 게 한국 고유의 관점인 선계였죠.”

고뇌와 유머, 갈등과 해학이 넘치는 작품을 통해 그는 가장 사랑 받는 작가 중 한 명이 됐다. 3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대한민국에 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알게 됐고, 또한 그의 이름을 아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를 좋아한다.

일주일에 평균 200명의 사람들이 오직 그를 만나기 위해 화천 시골마을을 찾는다. 한때 피해의식의 결정체였던 작가에게 더 이상의 결핍은 없는 것 같다. 이제 작가는 무엇을 쓸 수 있을까?

“정말 행복을 찾은 사람들에게는 예술이 필요치 않습니다.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살아낼 힘을 주는 것, 결국 나의 옛날을 겪고 있는 그런 사람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게 글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소재의 빈곤이라든가 방법의 어려움은 겪고 있지 않습니다. 쓰고 싶은 게 아직 많으니까.”

문학의 위기에서 살아남기

감성마을이라 일컫는 그의 집에는 수많은 식솔이 드나든다. 그 중에는 문하생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이외수 작가의 일상을 보필(?)하며 문학을 (독학으로) 공부하고, 소정의 창작 기금을 받는다. 3년간 ‘얼음밥’을 먹으며 묘사적 문체를 개발했던 작가는 문하생들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홀로 자기 길을 가게 한다.

이 방식이 효과가 있는 모양이다. 그가 문하생들을 집에 둔 것은 10년이 넘었는데, 올해 모 일간지 신춘문예 당선자를 비롯해 많은 문하생이 문인의 길을 걷고 있다. 지금도 3년차, 5개월차 2명의 문하생이 그의 밑에서 공부한다. 물론 독학으로.

문인을 소망하는 사람들을 대신해 그에게 묻고 싶었다. 문학의 위기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느냐고. 문학으로 밥을 먹고 살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그는 “그냥 소설이나 써볼까, 란 마음으로 시작하지는 말았으면 한다”고 운을 띄웠다.

그리고, 자신의 청년 시절을 이야기 했다. 춥고 배고프던 그 시절, 그는 김동리 선생의 <문장 작법>에 ‘첫 째, 진실하게 쓰라’는 말이 기억나 원고지에 ‘춥다’라고 썼다. 그 문장을 아무리 쳐다봐도 ‘안 추워 보여서’ 웃통을 벗고 밖에 나가 눈발을 맞았단다.

그리고 ‘그 우라지게 추운 겨울바람’은 그냥 바람이 아니고 면도날이란 생각이 들었고 단편 하나가 순식간에 머리를 지나갔단다. 그리고 그 작품으로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최종심사위원이 김동리 선생이었단다.

줄곧 ‘인디’로 살아온 자신을 가리키며 “독자, 출판사, 작가의 3각 구도만 유지하고 평생 글을 써왔다”고 말했다. 자신을 등단시켜준 김동리 선생과 당시 문단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작품을 인정해준 문학평론가 김현을 한 번도 찾아 뵌 적 없는 그는 30년간 굳건히 살아남았다. 작가는 “예술가가 자신감을 갖고 있으면 자기 작품이 어느 수준인 줄 알게 되어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 어떤 것도 난 사랑이라고 봐요. 독자에 대한 넘치는 애정이 문장을 만들어 내고, 사물에 대한 애정이 이야기를 만들죠. 애정이 핵심이라고 보면 돼요. 독자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죠. 재미있는 작품, 그건 결코 아부나 속임수가 아닙니다. 독자에 대한 애정입니다.”

이외수는…



1972 강원일보 신춘문예 <견습어린이들>로 등단

1975 <세대>지에 중편 <훈장勳章>으로 신인문학상 수상, 강원일보에 잠시 근무

1978 장편 <꿈꾸는 식물> 출간

1980 창작집 <겨울나기> 출간

1981 중편 <장수하늘소> 단편 <틈> <자객열전> 장편 <들개> 출간

1982 장편 <칼> 출간

1992 장편 <벽오금학도> 출간

1997 장편 <황금비늘> 1, 2 출간

2002 장편 <괴물> 1, 2 출간

2005 장편 <장외인간> 1, 2 출간

2009 산문집 <청춘불패> 출간





화천=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