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앙팡테리블] (57) 바이올리니스트 조가현두 번의 계기 통해 긴 슬럼프 탈출… <영파워 시리즈> 첫 무대 장식

"무한한 가능성과 지성을 겸비한 연주자" 2009년 워싱턴 국제 콩쿠르에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쉬무엘 아쉬케나지는 우승자인 조가현(27)에게 이런 찬사를 보냈다.

당시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은 상황을 알았는지 또 다른 심사위원은 "그럼에도 굉장히 잘 해주었다"며 토닥였다.

3년마다 한 번씩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세 부문이 동시에 진행되는 워싱턴 국제 콩쿠르는 바이올리니스트 조가현에겐 또 하나의 도전이라기보다는 일상에 가깝다.

그녀의 프로필은 화려하다. 손열음(피아노), 권혁주(바이올린) 등의 연주자와 같은 1기 금호 영재로 발탁된 조가현은 10세에 코리안 심포니와 데뷔 무대를 가졌다.

국내의 유수 음악 콩쿠르를 모두 석권하고 교육인적자원부가 선정한 대한민국 대표 영재 50인(2004)에도 이름을 올렸다. 서울대를 수석 입학졸업하고 레오폴트 모차르트 국제 콩쿠르 2위(2006) 등 국제 콩쿠르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현재는 피천득 시인의 외손자 스테판 제키브가 졸업한 음악학교로도 유명한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에서 도날드 웨일러스타인(Donald Weilerstein) 교수를 사사하고 있다.

순탄해 보이는 연주자로서의 삶에도 위기는 오기 마련이다. 네 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한 후에는 줄곧 '바이올린 연주가 가장 쉬웠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활을 잡는 것부터 낯설어지는 기나긴 슬럼프가 찾아왔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연주 활동을 계속해도 되는 건지,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다.

"어릴 때는 멋모르고 연주하면서도 연주자로 사는 게 편했어요. 쉽게 연주가 됐으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 모든 게 새로워졌지요. 이걸 내가 어떻게 연주했나, 내가 활을 어떻게 잡았던가, 기본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어요. 사실 지금도 극복하는 단계입니다. 결국은 자신과의 싸움인 것 같아요."

과거에 찾아왔던 위기를 극복해냈던 건 두 번의 계기를 통해서였다. 동아콩쿠르 입상 후 음악에 대한 흥미를 잃고 더 이상 비전을 찾을 수가 없었던 시절. 대학에 입학해 김영욱 교수의 지도를 받으면서 그녀는 음악의 또 다른 세계를 알게 됐다. "악보가 입체적으로 보였다고 할까요. 음표 너머의 세계가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때부터 음표 하나하나에서 의미를 찾게 됐죠." 이후 유학생활을 하면서 음악의 다양성을 경험한 것이 두 번째 계기였다. 기교를 넘어 지금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고 만들어가는 중이다.

오는 4월 1일, 조가현은 금호문화재단의 첫 번째 <영파워 시리즈> 무대에 선다. 처음으로 레퍼토리도 혼자 선정했다. 오페라도 작곡했다는 공통점을 가진 세 작곡가의 바이올린 소나타 곡이다. 모차르트의 소나타 K.306, 야나체크의 소나타 JW 7/7, 슈트라우스 소나타 Op.18 등.

"모차르트 곡은 처음 듣고 반했어요. 피아노 연주의 화려함, 경쾌함과 씩씩함이 묻어나요. 야나체크 곡은 자주 연주되지 않아 생소하죠. 체코의 억양이 살아있는데, 야나체크는 특히 3악장을 작곡하면서 '강철이 충돌하는 소리가 들린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특이해요. 슈트라우스는 스케일이 크고 드라마틱하면서도 아름다운 곡으로, 제가 가장 아끼는 곡입니다."

1998년부터 금호에서 대여한 1763년생 과다니니 바이올린을 사용하는 그녀는 악기의 목소리를 "누군가는 금빛 같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번 공연에 이어 오는 4월, 뉴욕 카네기 홀에서 바딤 글루즈만(Vadim Gluzman), 아니 쉬나흐(Ani Schnarch), 아타르 아라드(Atar Arad) 등과의 실내악 연주와 솔로 연주를 앞두고 있고 2011년에는 워싱턴 케네디센터에서 독주회가 예정되어 있다.

바이올린을 하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지만 매 순간 넘어야 할 산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바이올리니스트 조가현은, 그러나 힘든 고비를 넘기면서 멋지게 비상하고 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