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백영옥 첫 단편집 등단작 '고양이 샨티'서 '푹'까지 5년간 발표한 8편 묶어

스타일. 다이어트의 여왕.

백영옥의 두 장편은 2000년대 현대 도시여성의 삶을 집약하고 있다. 첫 장편 <스타일>이 패션잡지 기자의 일상을 통해 그들의 물질적 기반인 자본주의의 단면을 드러낸다면, 두 번 째 장편 <다이어트의 여왕>은 그 패션을 완성시킬 옷걸이, 즉 몸에 대한 여성의 욕망을 그리고 있다.

이런 의미 부여는 소설을 한층 그럴듯하게 포장한다. 하지만 이런 사회과학적 해설과 상관없이 백영옥의 소설은 시장에서 후한 평가를 받는다. 패션과 음식, 다이어트 등 그녀가 애용하는 소재는 늘 20~30대 여성들의 화두였으니까. 잡지사 에디터와 요리사, 의사와 방송국 PD는 직함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캐릭터이니까.

이들의 고민이 제 입장에서 얼마나 절박하든, 풍요의 시대에 태어난 이 세대는 안락한 성장통을 겪고 자라난 바, 인물들은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꼼지락거릴 뿐, 이 세계 밖을 상상해 낼 수 없다.

백영옥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이 특징은 그녀의 소설이 평단의 야박한 평가를 받는 이유인 동시에 독자의 열렬한 지지를 이끌어 내는 지점이기도 하다. 우리는 누구나 국민국가나 자본주의를 욕하면서도 이 시스템 밖으로 튀어나갈 재간은 없으니까. 이 아이러니를 논리적인 말로 설명해 낼 재간은 더더구나 없으니까.

영수증을 사랑한 여자

신간 <아주 보통의 연애>는 작가의 첫 번째 단편소설집이다. 첫 장편 <스타일>이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대중의 뇌리에 장편 작가로 각인됐지만, 백 씨는 단편소설로 2006년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이 책에는 등단작 '고양이 샨티'를 비롯해 지난해 여름 발표한 '푹'까지 5년간 발표한 단편소설 8편이 실렸다.

"저는 사회생활을 카피라이터에서 시작했거든요. 온라인 서점 편집자, 잡지 기자를 거쳐서 작가된 건데 카피 한 줄에서 시작해서 잡지 기사 30매, 장편소설 1680매로 늘어난 게 제 글쓰기 과정이었던 거죠. 한 줄과 1680매 사이에 단편소설이 있어요. 이 책은 10년 동안 겪었던 착오들의 결과물이죠."

표제작 '아주 보통의 연애'는 영수증과 사랑에 빠진 여자 이야기다. 잡지사 관리팀에서 일하는 김한아는 기자들의 영수증을 처리하며 '영수증은 우리가 토해낸 일상을 투명하게 반영한다'(10페이지)고 믿는다. 그녀는 짝사랑하는 패션팀 수석 이정우의 영수증을 몰래 복사해 노트로 만들며 남자의 삶을 그려간다.

"제 소설은 질문에서 시작하거든요. 영수증은 수치화된 정보잖아요. 그렇다면 영수증으로 누군가를 읽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표제작은 이런 질문에서 쓴 단편인데, 영수증에 관한 에피소드를 모으니까 상당히 많더라고요. 이 소설집에 묶인 단편 8편은 전부 이렇게 우연히 발전한 이야기들이에요."

파산과 함께 삶의 기반이 무너진 젊은 사업가(육백만원의 사나이), 고객의 결혼식에 찾아가 가족사진을 찍는 청첩장 디자이너(청첩장 살인사건), 문장을 다듬고 작가를 보필하는 출판사 편집자(강묘희 미용실). 백영옥의 소설에는 자본주의 시대를 착실하게 살아가며 고뇌하는 인간 군상들이 자주 출몰한다.

이야기 초반 이들은 현대인이 닮고 싶은 자기계발의 표본들이다. 그 안락하고 견고한 세계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인물은 각자 돌파구를 찾아보려 나름 아등바등해보지만 결국 해답은 없다. 이들의 명함에 박힌 그럴듯한 직업은 독자의 판타지를 자극하고, 이들이 파국을 맞으며 느끼는 불안감은 '주인공도 나와 같다'는 감정이입의 기제가 된다.

"제가 시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작가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는데, 그건 아니에요. 제 소설이 그렇게 보인다면 저에게 대중적 감수성이 있는 거겠죠. 소설가였던 시간보다 직장인이었던 시간이 더 많았으니까. 그런데 한편으로 저는 불멸하는 작품을 쓰겠다는 욕망도 없고요. 제 쓴 책이 그 시대에 읽히고 사라져도 좋다고 생각해요."

아주 보통의 욕망

"소설을 쓸 때 염두 하는 게 뭔가?"란 질문에 작가는 "기준은 단 하나 재미"라고 답했다. 초고 650매를 쓰고 150매로 줄여 단편을 발표했다는 일화로 보아 작가 스스로 재미있게 작업한다는 것은 사실인 듯 싶다. 표제작 '아주 보통의 연애'도 500매로 쓴 소설을 150매로 줄인 작품이다.

"작가들마다 문학관의 차이겠지만 저는 스토리와 캐릭터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제 소설은 단편이지만 묘사가 적고, 밀도도 높지 않죠. 근데 재미있게 쓰는 것도 테크닉이 필요하거든요. 스토리가 강한 대가들의 작품을 보면 문단을 일일이 조율하고 호흡을 만들죠. 상당한 기술이 필요해요. 영화 <마이클 클레이튼>의 주제는 딱 하나잖아요. 곤경에 빠진 변호사. 그 단순한 주제로 아주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죠. 전 장르소설에서 그런 테크닉을 많이 배워요."

최근 작가는 세 번째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하며 경기도 일산에 집필실을 마련했다. 한국과 중국에서 온라인으로 동시 연재될 예정인데, 5월말까지 30% 이상의 완성본을 중국으로 보내야 한다고. 800매 가량 '콤팩트한' 장편을 쓰는 게 목표인데, 아직 제대로 시작도 못했다며 작가는 인터뷰 내내 너스레를 떤다. 요즘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고 일주일에 하루, 강의가 있는 날만 서울 집을 찾는다.

"예전 SNS로 작품연재도 했는데, 그건 또 블로그에 연재하는 것과 피드백이 확연히 다르더라고요. 이번 한중 연재를 준비하면서 소설 형식이나 구성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 대중문학-순수문학, 한국문학-중국문학 같이 뭔가를 구분 짓는 게 점점 더 의미가 없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중국독자가 한국 중산층의 관심사와 의식주 코드, 유행하는 대중문화를 이해할 때 백의 소설은 가장 유용한 바로미터가 될 것이고, 이 점이 중국 출판계가 그녀의 소설을 주목한 이유일 게다.

'한 장의 영수증에서는 한 인간의 소우주가 담겨 있다. 취향이라는 이름의 정제된 일상, 흡연처럼 고치지 못한 악습들, 다이어트를 의식하며 살아야 하는 삼십대 도시인의 정체성까지. 그날 밤 그는 일기를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에겐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답이 있다.' (10페이지, '아주 보통의 연애' 중에서)

백영옥의 소설은 이 사회 '아주 보통의' 욕망을 말한다. 그의 소설의 읽으며 독자가 판타지에 젖어드는 것, 그 속에 감정을 이입하는 것, 그럼에도 책을 덮고 2% 아쉽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터다.

어쨌든, 그녀의 소설은 재미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