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최수철 '침대' 출간분석ㆍ해체 밀어낸 서사성… 개인의식서 사회구조로 이야기판 확장

중견 작가 최수철 씨가 장편 <침대>를 출간했다. 의식의 해체, 엄정한 문체, 지적인 사유로 대변되는 그의 스타일에 서사성이 가미된 형태다. 작가는 이제 이야기의 판을 개인의 의식에서 사회구조로 확장했고 체스판처럼 조율된 구체적 공간에 인물과 사건을 펼쳐놓는다.

고로 신작을 들추며 예전 그의 소설을 떠올리는 건 금물이다. 그는 "분석과 해체를 밀어낸 서사성 그 자체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모든 것을 위한 침대

남자가 여자에 대해 착각하는 많은 오해 중 하나는 여자들이 예쁜 여자를 싫어할 거란 망상이다. 사실 여자는 남자보다 예쁜 여자를 좋아하고, 예쁜 여자보다는 잘생긴 남자를 더 좋아한다.

여자들이 욕하는 여자는 예쁜 여자가 아니라 예쁜 척하는 여자다. 그러니까 남자들이 생각하는 예쁜 여자의 기준에 맞추려고 되지도 않는 교태 부리는 여자말이다.

같은 의미로, 필자는 예쁜 척하는 글을 싫어한다. 나이든 성이든 계급이든 기존 이데올로기에 갇힌 글들이다. 대중 다수가 읽고 운다는 감동 어린 베스트셀러는 대부분 이런 '그렇다고 믿고 싶은 의지'를 건드린 작품이 많다.

예쁜 척하지 않아서, 최수철 소설은 자꾸 읽게 된다. 그는 해답 불가능한 문제, 일탈적 주제를 촘촘한 문체로 엮어낸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이질적이고 독자적이고 어렵다. 또한 그래서 그는 한국 문단에서 예외적인 작가로 지목되지만, 한편으로 귀한 작가이기도 하다. 신작은 그의 작가적 변모를 보여준다.

'나는 침대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서시베리아 침엽수 지대에서 자란 자작나무인 '나(침대)'는 활엽수지만 침엽수 지대에서 자란 탓에 침엽수의 심장과 영혼을 갖고 있다. 이 나무의 수액을 먹고 자란 미누는 그와 그의 연인 우그리아를 해치려는 칼리우과 대결을 펼친다.

칼리우는 인간의 잠과 꿈을 방해하는 악마. 대결 끝에 칼리우에게 사랑하는 우그리아를 빼앗긴 후 미누는 자작나무인 나를 베어 우그리아와 그의 안식처를 만든다.

침대가 된 나는 벌목꾼에게 발견돼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실려 대륙을 가로질러 리에파야 항구에 도착한다. 이로부터 시베리아-리에파야 항구-발틱-희망봉-싱가포르-대한해협에 이르는 100여 년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장편 쓰는 방식은 두 가지인 것 같아요. 첫째는 어떤 정황을 생각하고 푸는 것. 두 번째는 소재를 정하고 연구하는 것. 정황을 갖고 쓰면 자기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운데, 소재중심 작법은 자기가 잘 모르는 것도 공부해가며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몇 가지 떠오른 소재 중 하나가 침대였는데, 자료를 찾다 보니 침대가 뛰어난 소재라는 걸 금방 알았어요."

작가는 침대가 인간의 몸과 부딪치는 물질적인 면과 잠으로 대표되는 정신적인 면이 맞물리는 공간이라고 덧붙였다. 원고지 2000매의 이야기는 구상한 지 5년, 집필에 들어간 지 3년 만에 완성됐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소설은 소재인 침대를 밑천으로 만든 작품이다. 소설의 양식을 갖췄지만, 기승전결의 근대소설 패턴을 따르고 있진 않다. 이 이야기처럼.

침대는 의사 자격으로 참여하는 안드레이의 침대로 병원선에 실려 전쟁의 참상을 겪고, 병원선이 일본 함대에 나포돼 무라사키라는 일본 군인의 수중으로 들어가게 된다.

장교 전용 구락부의 온천탕 휴게실에 놓인 침대는 기생 후쿠쓰케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고, 후쿠쓰케는 패망한 조선의 지식인 장선우와 사랑에 빠져 침대 위에서 아이를 잉태하는데, 다시 출산 중 그 침대에서 죽고 만다. 침대는 홀로 조선으로 흘러들어가고, 다시 한국전쟁을 겪으며 후쿠쓰케의 아들 홍일과 만나게 된다.

소설의 줄거리를 시간 순으로 요약했지만, 사실 이 소설은 어느 부분부터 읽어도 상관이 없다. 작가는 근현대 100년사를 9장에 나눠 담았고 각 장은 다시 4절에서 10절로 잘게 쪼개진다.

신화와 전설, 희곡과 편지 등 다양한 형식의 문체가 버무려져 읽는 재미를 더한다. 필자는 작가에게 "양피지에 둘둘 말린 천일야화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작가는 "예전 내가 추구했던 누보 로망(nouveau roman, 1950년대 전후 유럽에서 유행한 실험소설)에서 많이 벗어났지만, 기승전결 방식은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누보 로망에서 추구한 소설 모델이 모빌이었다.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지만, 한 실로 꿰어 있듯이 이야기가 한 축에 꿰인다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 역시 후쿠쓰케와 그 아들 홍일, 중후반부 출연하는 하람과 최불, 악령의 근원인 칼리우 등으로 이야기가 한 축에 꿰인다는 점에서 일종의 모빌 같은 모습이다.

작가는 이전의 방식을 많이 버렸다고 하지만, 여전히 지적 사유가 소설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를테면 이런 장면들.

'그와 동시에 그는 풍자시도 쓰기 시작했다. 주로 침대를 제재로 하여 제정과 부르주아지의 타락상을 고발하는 시들이었다. (…) 그는 그 시들을 익명으로 발표했다. 그의 시들은 여러 경로로 사람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세간에는 시인이 무정부주의자라는 소문도 돌았다.' (56페이지)

'그러던 어느 어두운 밤에 갑판 위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던 그는 수면 위로 거대한 고래 등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 크고 축축하고 미끈거리는 동체는 단번에 그의 시야를 가득 채우더니, 곧 그의 머리와 심장을 압도해버렸다. 그날 이후 그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고, 어렵게 잠에 들고 나면 고래 배 속에 갇힌 꿈을 반복하여 꾸었다.' (87페이지)

침대에 누워 영감과 꿈을 얻으려다 침대와 자신이 너무 일체화되는 걸 두려워한 나머지 도망치는 최불의 모습 역시 이전 그의 이야기 풍경과 닮아 있다.

조선에 첫 상륙한 일본 기생 후쿠쓰케, 박정희를 극화한 박기수 등 역사적 인물 차용도 눈에 띄는 점이다. 작가는 "역사소설의 한 특징을 갖고 있다"고도 말했다. 80~90년대 최수철의 소설에서 볼 수 없는 면모다.

휴전 후 침대는 병원 특별진찰실에 자리잡게 되고 세상이 어지러운 틈을 타 군 동요가 심해지자 박기수는 쿠데타를 일으키고 독재자가 된다. 박기수의 독재와 죽음, 침대 조각가 최불 이야기를 거쳐 이야기는 소설의 1장 칼리우와의 재대결로 대단원을 맺는다.

책 읽으면서 '최수철 작가의 소설은 본래 서사 중심이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소설은 서사 중심으로 술술 넘어가던데요.

"2000년대부터 분석적, 해체적인 소설에 서사성을 결부하자 생각했죠. 예전 80, 90년대에는 이데올로기 투쟁에나 그에 대한 대립의식이 강했는데, 이제는 독자가 책을 읽고 창조성을 스스로 확보해나가는 시기구나 하는 걸 깨달은 거죠."

소설은 침대란 큰 테마 안에서 각 이야기가 개별적으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의 형식이 편지, 소설, 희곡 등 제각각이고요.

"인물마다 이야기가 다르니까 다른 어법이 필요하더라고요. '이 단락은 동화, 이 단락은 전설' 이런 식으로. 의도한 건 아니지만, 다 쓰고 보니 결과적으로 소설에서 내용의 총체성뿐 아니라 형식의 총체성이 일어난다는 느낌이 들었죠. 내용의 총체성은 처음부터 염두한 부분이죠. 기승전결 형식이 갖고 있는 허위성이 있어요. 잘 읽히는 방식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독자의 세계관을 흔들어놓지 못하죠. 그렇다면 기존의 모든 형식의 이야기 그러니까 편지, 독백, 희곡, 대화, 판소리체 등등 다 집어넣어서 총체적 인식을 주면 어떨까, 생각했죠. '총체적 인식은 기승전결이 가진 힘을 넘어서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요."

선생님 소설, 아름답긴 한데 또 한편에서는 난해하다는 불만도 많았죠? 이번 장편은 예전 소설에 비해서 수월하게 읽힌다는 얘기 많이 들었을 것 같아요.

"그럼요. 집에 '쉽게 쓰자'고 걸어 붙였어요. 그 밑에 구체적으로 행동지침도 쓰고.(웃음) '틀을 간단하게 짠다. 모든 사유는 제거한다. 모든 분석도 제거한다. 해체, 심리분석, 분석적 세계관은 이야기 속에 스며들게 한다. 스며들지 않으면 버린다.' 앞으로 쓸 장편도 그럴 것 같아요."

서사성을 내세운 이유는 앞서 설명하셨고…. 그렇게 쓰실 작품은 또 어떤 건가요?

"망각에 대한 소설이에요. 이를테면 아우슈비츠를 잊어야 하느냐, 잊지 말아야 하느냐, 같은 문제죠. 기억과 망각에 대한 이데올로기 싸움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죠. <문학과사회> 봄호에 150매짜리 단편으로 발표해봤는데, 잘 풀려요. 앞으로 이 소재로 장편을 쓸 예정입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