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나눠 쓰고 차는 빌려 타고… 소유욕 버리면 '새로운 세상'새로운 경제 패러다임 생존전략 키워드로 '공유' 급부상재화, 필요한 만큼 빌려 쓰고 필요하지 않으면 나눠 쓴다안쓰는 물건은 물물교환… 지식ㆍ경험ㆍ재능도 나눔 대상

2014년 생존전략 키워드로 '공유'가 급부상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이제 재화를 소유하는 데 연연하지 않는다. 필요한 만큼 빌려 쓰고, 필요하지 않다면 나눠 쓴다. 가족이 아닌 타인과 집을 나눠 쓰고 차를 돌려 타며 밥을 함께 먹고 지식을 나눈다. '공유경제(Sharing economy)'의 개념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에 널리 퍼진 '아나바다 운동'과 흡사하다. 하지만 IT기술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과 맞물려 대상의 폭이 한층 넓어졌다. 이에 <주간한국>은 현대인의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각광받는 공유경제의 세계를 들여다보았다.

삶의 공간 공유하는 '셰어하우스'

지난해 초 방송을 시작한 MBC <나 혼자 산다>는 혼자 사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다뤄 큰 인기를 얻었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인기 연예인들은 '혼자서도 즐거운 삶'을 보여주며, 혼자라서 부족한 부분은 서로 채워줬다. 가령 전세 계약 만료로 이사를 가게 된 김광규는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파비앙에게 나눠 줬고, 영어를 잘하는 전현무와 노래를 잘하는 육중완은 각각 서로의 재능을 배웠다.

1인가구가 급증하면서 독신남녀의 라이프스타일을 다루던 TV프로그램들이 이제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른 '셰어하우스', 즉 함께 사는 삶을 다루기 시작했다. 최근 방송을 시작한 SBS <룸메이트>와 올리브TV <셰어하우스>는 모두 혼자 사는 남녀의 공동주거생활을 보여준다. 프로그램의 포맷은 간단하다. 혼자 살아도 살 만할 것 같은 인기 연예인들이 모두 한 집에 입주한다. 침실 같은 개인 공간은 따로 두지만 거실ㆍ화장실 ㆍ주방 등은 함께 사용한다. 방세나 공과금 등은 같이 부담하고 공동 생활 규칙을 만드는 식이다.

'셰어하우스'는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이 아닌 타인과 한집에 사는 거주 형태를 뜻하는 신조어다. 사실 1인가구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럽과 일본에서는 이미 새로운 주거 방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이웃 일본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셰어하우스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지진과 재난, 각종 강력 범죄, 외로운 죽음 등이 빈번해지면서 1인 가구에도 타인과의 공감대 형성이 절실했던 탓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셰어하우스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2011년 서울 연희동에 등장한 '수목 마이바움 연희'는 지상 5층 건물에 37개 실을 갖춘 원룸주택이다. 개인생활 공간과 공동생활 공간을 분리했다. 각 방에는 개인별 세탁실, 화장실을 갖춰 개인생활을 보장하고 2층에는 북 카페, 공용주방, 공용식당 등이 있어 입주자들끼리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다. 전 월세 대란을 피해 공동생활로 주거 비용은 아끼고, 삶의 방식은 공유하는 게 가장 큰 이점이다. 이러한 이점이 정책에 반영되기도 한다. 서울시는 도봉구 방학동에 '셰어하우스 형 임대주택'을 선보인 데 이어 예술분야 종사자들의 생활공동체인 '만리동 예술인 마을' 등을 만들기도 했다.

타인과 공유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

공유경제는 차나 집 등 자신이 소유한 물건이나 공간, 재능, 경험 등을 타인과 공유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뜻을 지녔다. 2008년 미국 하버드 법대 로렌스 레식(Lawrence Lessig) 교수가 "물품을 소유의 개념이 아닌 서로 차용해 쓰는 개념으로 인식하는 경제활동"이라는 의미로 처음 사용했다. 2011년에는 미국 타임지는 공유경제를 '세상을 바꾸는 10대 아이디어'로 선정했을 정도로 우리 생활에 깊숙이 진출해 있다.

수원에 사는 김상혁(28)씨는 요즘 '카 셰어링(Car Sharing) 서비스'를 자주 이용한다. 인터넷이나 스마트 폰 앱으로 원하는 시간과 차량 종류를 정해 예약하면 손쉽게 차량을 쓸 수 있다. 김씨는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보다 절차가 훨씬 쉽고 편리하다"며 "10분 단위로 예약할 수 있는 곳도 있어서 택시비보다 저렴할 때도 있어 굳이 차를 살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말했다.

카셰어링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사업은 아니다. 미국에서 2011년 4월 첫 등장한 카셰어링 업체 '집카(Zipcar)'는 공유경제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힌다. 카셰어링은 차를 직접 소유했을 때 드는 높은 유지비용 없이 필요한 시점에서 쉽고 빠르게 이용하는 장점이 있다. 주택가나 업무지구, 대중교통 거점에 마련된 지정 주차장에 차량을 배치해 회원들이 차를 돌려 쓰기 때문에 효율적이다. 이때 차량 예약과 이용은 인터넷과 스마트폰 앱을 통해 손쉽게 이뤄진다. 렌터카 업체를 직접 방문해 차 키를 받을 필요 없이 스마트 폰 앱을 이용해 차량 문을 제어하는 식이다.

차량만 나눠 쓰는 게 아니라 집을 빌려 쓰기도 한다. '소유'의 개념으로만 여겨왔던 집을 '공유'하기 시작한 것이다. 호텔이나 펜션, 게스트하우스의 목적은 '여행객을 위한 숙박 업소'라면, 숙박공유 업체는 살고 있는 집의 공간을 내어준다는 게 특징이다. 집의 일부를 외국인 관광객이나 일반 여행객과 공유해 집주인도 여행객도 서로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

세계적인 숙박공유업체 '에어비앤비'는 자신의 방이나 빈집, 별장을 임대할 수 있게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수료를 받는다. 현재 전세계 192개국 3만개 도시, 30만개 이상의 방이 에어비앤비의 회원사다. 할리우드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는 에어비앤비 서비스를 이용하는 남녀가 얽히게 되는 인연을 다뤘을 정도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1년 '비앤비히어로'가 설립되면서 숙박공유 서비스가 활발해지고 있다. 단, 현행법상 우리나라의 일반 가정에서 빈방을 빌려주는 서비스는 외국인을 상대로만 가능하다. 관광진흥법 시행령에 따르면 내국인에게 방을 빌려주기 위해서는 호텔 업으로 등록하거나 한옥 민박, 농어촌 민박인 경우에만 가능하다. 또한 일반주택도 '외국인관광도시민박업'으로 규정되기 때문에 기초단체장에게 신고한 뒤 방을 빌려줘야 하는 등 제약이 있다.

재화ㆍ서비스는 '공짜 수준' 하락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저서 '소유의 종말'에서 "소유의 시대는 끝났다"고 공언했다. 시장 경쟁체제 틀에서 기술이 발전하면서 생산 비용은 떨어졌고 많은 재화와 서비스의 값은 '공짜 수준'으로 하락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판매 그 자체보다는 판매 이후의 이익 창출이 더 중요해졌다는 점을 짚었다. 재화를 공유하면서 발생하는 사용료, 서비스 등으로 '추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걸 강조한 셈이다.

재화를 '소유'한다는 집착을 버리고 나면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무한해진다. '젊음의 거리' 홍대에서는 현명한 소비를 콘셉트로 내세운 물물교환 매장 '오브젝트'가 인기다. 이곳의 디자이너들은 오래된 옷, 철 지난 신발, 유행 지난 가방 등등 '헌 물건'으로 액세서리를 만든다. 버려진 물건은 이들의 손을 거치면 반지가 팔찌, 목걸이 등 훌륭한 액세서리로 변한다. 물건끼리 교환할 수 있는 코너도 있어 싫증나거나 활용도가 떨어지는 제품을 원하는 물품으로 골라 가져갈 수도 있다.

온라인으로 들어오면 물물교환의 장은 한층 넓어진다. 여섯 살, 세 살 난 형제를 키우는 장은영(38)씨는 아이옷을 공유하는 '키플'을 자주 애용한다. 키플은 '안 입는 옷을 나눠 입자'는 합리적인 소비 방식을 제안한다. 예컨대 장씨가 안 입는 아이옷을 보내면 키플은 옷을 검수한 후 등급을 매겨 키플머니를 적립해 준다. 장씨는 키플머니와 현금50%를 사용해 키플에 등록된 다른 옷을 구입하면 된다. 키플에 등록된 아이옷의 가격은 적게는 몇 백 원부터 많게는 몇 천 원에 불과해 가격 부담이 적고, 무료 나눔 상품도 있다. 장씨는 "아이들 성장에 맞춰 매번 새 옷을 사주는 게 부담됐는데 키플을 이용하면서 가계부담이 줄었다"며 "엄마들이 직접 보낸 옷인 만큼 믿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버려두는 공간을 활용하는 주차장 공유기업인 '모두의 주차장'도 인기다. 주차 공간 부족은 심각한 도시 문제 중 하나다. 예컨대 '거주자 우선 주차 지역'은 자리가 비어도 버려둬야 하지만, 모두의 주차장은 이를 빌려주고 소정의 수입을 얻는 방식을 제안했다. 모두의 주차장 앱을 설치하면 이용자의 위치를 바탕으로 가장 가까운 주차장의 이용시간과 요금을 바로 확인해 준다. 빈 주차장을 찾기 어렵거나 무료 주차장을 찾는 이용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이 밖에 면접 때 딱 한 번 입고 옷장 깊은 곳에 있는 정장을 대여해주는 '열린옷장'이나 읽지 않는 책들을 모아 나눠 읽는 '국민도서관 책꽂이'는 널리 알려진 공유기업이다.

지방자치단체도 공유경제 모델을 적극 활용 중이다. 서울시복지재단이 운영하는 'e-품앗이'는 지역단위의 가까운 거리의 이웃들이 정해진 공동체 내에서 물물교환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장이다. '문'이라는 가상의 공동체화폐를 이용해 물건을 거래하거나 기술이나 재능을 온·오프라인에서 나눌 수 있다. 주민 간 '신뢰'를 바탕으로 거래가 이뤄지므로 소통과 교류가 활발해진다는 장점이 있다.

경험ㆍ지혜 무형의 자본도 나눈다

공유할 수 있는 대상이 물질에 한정된 건 아니다. 경험이나 재능도 나눔의 대상이 된다. '위즈돔'은 인생의 경험이나 지혜화 같은 무형의 사회적 자본을 나누는 사회적 기업이다. 사람이 책이 돼서 빌려주는 '사람책 도서관'을 표방한다. 유명인사의 강의 대신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경험과 노하우를 전달한다. 위즈돔 홈페이지에 가입한 후 자신의 프로필을 소개하고 관심 있는 주제를 선택하면 해당 분야의 인사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

위즈돔의 첫 화면에 소개된 만남의 종류를 보면 '퇴사할래? 창업할래?','추진력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회사원들의 대화','아빠의 리더십은 과연 어떤 것일까'등 인생경험을 나눌 수 있는 콘텐츠들이 눈에 띈다. '20대를 위한 글쓰기 특강', '홍보 마케팅의 모든 것'등 전문가들의 강연도 있다. 혈연, 학연, 지연 등으로 이뤄진 인맥의 한계를 넘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쉽게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혼자 사는 이들이 함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장을 연 소셜다이닝 업체 '집밥'도 인기다.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끼니를 거르는 이들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으로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주신 음식처럼 따뜻한 집밥을 나눈다는 의미다.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공통의 관심사를 주제로 얘기를 나눈 다는 점이 매력이다. 누구나 모임을 개설하고 참가할 수 있다.

공유경제가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공유기업의 기반은 '선(善)'이다. 이용자간의 '신뢰'가 사업의 바탕이 되므로 이 믿음이 깨진 후 발생할 문제들에 대해선 꼼꼼한 대비와 확실한 대책이 필요하다. 가령 숙박공유업체를 통해 집을 빌려줬는데 그 이용객이 도둑질을 했다면 책임소재를 가려낼 조항이 필요한 것이다. 기존 산업을 지배해온 경쟁업체와의 충돌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유경제는 각종 경제 문제를 해결할 사업모델로 각광받고 있는 만큼 미래가 기대된다.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