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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대북 특사설, ‘따지고 보면 그만한 인물도 없다’
남북문제 전문가들, 가능성과 별개로 '역할론'엔 한목소리
김정일 답방설 맞물려 초미의 관심, DJ도 가능성은 열어둬






지난 6월 중순 어느날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장남인 김홍일 의원(민주당)이 급히 동교동 DJ 집을 찾았다. 그날 오후 한화갑 민주당 대표로부터 들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주변 인사들에 따르면 그 ‘소식’은 대충 이렇다. 민주당 이정일 사무총장이 6월 12일 중국 옌지(延吉)에서 북측 고위 인사를 만나 DJ의 방북을 타진했고, 북측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사무총장은 12일 옌지에서 김국경 북한 내각 부총리를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김 부총리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DJ의 의전을 맡았던 인물. 옌지 회담에는 김 부총리를 비롯해 장성택 통일전선부 부장(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매제)의 동생인 장성길 인민군 중장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총리는 김정일 위원장의 친서와 초청장을 휴대했다는 소문도 뒤따랐다.

그러나 김홍일 의원으로부터 ‘소식’을 들은 DJ는 ‘쓸데없는 일을 했다’는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이 사무총장이 북측 인사와 접촉한 것이 DJ의 뜻과 무관하다는 것을 추정케 하는 대목이다. 오히려 정가에서는 이 총장이 북측 인사를 만나고 귀국해서 “빠른 시일 내에 한화갑 대표가 김 전 대통령의 친서를 갖고 중국을 방문해 김 전 대통령의 방북일정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밝힌 것에 주목해 한 대표가 DJ를 의식해서, 또는 당의 회생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자가발전 차원에서 추진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 민주당발 ‘DJ 방북설’

이 일로 ‘DJ 특사설’이 불거지자 김한정 DJ 비서관은 “모르는 일”이라고 부인했고, 이 총장도 “우리 정부측 요청으로 북측 인사를 만난 것은 아니다”고 말해 정부 공식 라인과 무관하게 DJ의 방북 문제를 논의 중에 있음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DJ 특사설’은 1회성 해프닝에 불과한 것인가. 남북문제 전문가들은 DJ의 방북 특사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만 ‘특사’ 역할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남북정상회담의 디딤돌 역할을 했던 박재규 전 통일부장관은 “6ㆍ15 공동선언의 정신을 이어가는 데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면서 “김 전 대통령이 답방을 성사시키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북정상회담에 참여했던 DJ의 한 측근 인사는 “6ㆍ15선언에는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 ‘약속’이 들어 있어 김 전 대통령이 특사로 방북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도 “남북관계 발전의 가교로 김 전 대통령만한 인물이 없다”고 말해 또 다른 의미의 ‘DJ 특사설’이 여전히 유효함을 강조했다.

여권에서도 ‘특사 DJ’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현 정부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원은 6월 12일 CBS 라디오에 출연, ‘DJ 대북특사론’에 대한 질문에 “6ㆍ15 남북정상회담을 하신 분이고 그 분이 희망하신다면, 또 남북 양측이 합의한다면 적격자 중 한 분”이라고 말했다. 남북문제 연구기관인 한반도재단의 김근태 신임 보건복지부장관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DJ를 향해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북한에 대한 평화특사가 돼 달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울 그랜드 힐튼 호텔에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4주년 기념 국제학술토론회 개회식을 마친 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그러나 ‘특사’와 관련한 관건은 DJ의 의지와 국내외 여건, 그리고 북한의 입장이다. DJ는 지난 5월 프랑스 방문 때 한국 특파원과의 간담회에서 “건강과 시간이 허락하는 한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혀 ‘특사’ 역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또한 6월 30일 베이징에서 장쩌민(江澤民) 중국 군사위 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전직 대통령으로서 현직에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와 6자회담의 성공을 위한 노력을 미력이나마 지원하려고 한다”고 말해 그 같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도 2차 정상회담이나 남한 답방에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DJ의 중국 방문을 수행한 김한정 비서관은 “지난 4월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 정부의 한 고위 인사에게 ‘적절한 시기에 남조선을 방문할 것’이라며 답방 의사를 밝혔고, 그러한 얘기를 그 고위 인사로부터 직접 들었다”고 말했다.


- 청와대도 DJ 역할 기대

노무현 대통령도 2차 정상회담이나 김 위원장의 답방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으며, 그 과정에 DJ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은 일찍이 북측에 정상회담을 제안했고, 이를 위해 대선 직후인 2003년 1월 말 DJ의 대북특사였던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과 이종석 국가안보회의(NSC) 사무처장이 평양을 방문한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노 대통령은 또한 DJ의 햇볕정책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했고, 6ㆍ15선언 4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DJ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지지를 보낸 바 있다. DJ-노 대통령 회동 직후 정가 주변에서는 노 대통령이 DJ에게 모종의 역할을 요청했다는 ‘DJ 특사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러나 ‘특사’ 가능성과 관련해 최대 변수는 북핵, 6자회담, 미ㆍ중의 한반도 파워게임 등 외생 변수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실제 노 대통령은 지난해 3월 북측이 ‘특사 교환’ 을 제의했을 때 핵문제 등을 이유로 거절한 바 있다.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 장악하고 있는 부시 정부가 건재한 이상 남북 해빙 움직임은 제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상황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6자 회담이 이어지고, 대선을 앞둔 부시 정부가 남북한을 압박하기 어려운 상황은 2차 정상회담이나 김 위원장의 답방에 기회를 줄 가능성도 있다. 지난 4월 네오콘의 우두머리인 체니 미 부통령이 이례적으로 중국을 방문한 것은 6자 회담이 깨져 북한이 핵카드를 다시 꺼낼 것을 우려해서다. 이라크 문제로 위기에 처한 부시정부 입장에선 북핵 문제까지 불거질 경우 재선에 치명적인 악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나 김 위원장 입장에선 케리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 전격적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을 견제하려는 중국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와 같이 가교 역할을 맡을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최근 한반도문제 전문가들 사이에서 10월경 김 위원장이 경의선을 타고 답방한다거나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중재로 남북 정상이 극동 연해주에서 2차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는 전망은 그래서 나온다.

DJ의 중국 방문을 전후해 베이징에선 DJ와 북한의 리용철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간의 비밀접촉설이 파다하게 퍼졌다. 리 부부장은 2000년 1차 정상회담 때 평양 공항에서 DJ를 맞은 인물로 노 대통령이 DJ를 통해 북측에 모종의 메시지를 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됐다. 김한정 비서관은 ‘접촉’ 자체를 부인했지만 ‘DJ 특사설’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DJ든, 제3 인물이든 ‘대북 특사’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요즘이다.



박종진기자 jjpark@hk.co.kr


입력시간 : 2004-07-07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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