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 파문으로 불거진 盧와의 갈등, 불씨 남기고 봉합

'김의 전쟁'은 계속된다
연기금 파문으로 불거진 盧와의 갈등, 불씨 남기고 봉합

‘한국형 뉴딜 정책'과 관련, 연기금 활용 방안을 놓고 벌어진 ‘김근태 쇼크’는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연기금 발언 파문이 예상밖으로 확산되자 김근태(GT) 보건복지부 장관이 서둘러 진화에 나섰기 때문이다.

김 장관은 연기금 사태에 대해 공개 사과를 한 데 이어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직접 ‘이해’를 구하기도 했다. “하늘이 두쪽 나도 국민 연금을 지키겠다”던 김 장관 초기의 모습과는 딴판이어서 일각에서는 “GT가 노 대통령에 백기를 들었다”는 평가와 함께 대권 주자로서 큰 상처를 입었다는 분석도 뒤따랐다.

연기금 파문이 커진 데는 진원지인 김 장관이 여권의 실세 장관인데다 차기 대선의 유력한 주자라는 사실과 직결돼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김 장관의 대권 행보에서 비롯된 ‘김의 전쟁’이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그 전쟁은 조기에 막을 내렸지만 그 후유증과 상징성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오히려 대권 레이스에 잠복돼 있던 김 장관과 노 대통령의 갈등이 연기금이라는 돌발 요인으로 인해 수면 위로 부상했다는 해석도 적지 않다.

• 본질은 연기금 파문과 무관
그러나 본래 의미의 ‘김의 전쟁’은 연기금 사태와 무관하다. 김 장관의 의도가 전달 과정에 착오가 생기고 ‘정치적’ 해석으로 확대되면서 대권 행보로 비쳐진 측면이 크다. 그렇다고 ‘김의 전쟁’의 불씨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연기금 사태는 11월 19일 아침 김 장관이 복지부 홈페이지에 ‘뉴딜 정책은 필요하지만 국민 연금을 투자하는 문제는 신중해야 하며, 아직 구체적인 투자처가 결정되지 않았다’는 글을 올린 것이 발단이 돼 그것이 ‘국민 연금 동원 반대' 선언으로 해석되면서 ‘파문’으로 치달았다.

충격을 받은 여권은 그날 밤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홍재형 정책위의장, 이종걸 원내수석부대표, 김광림 재경부차관, 송재성 보건복지차관, 청와대 김병준 정책실장 등과 함께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긴급 회의를 갖고 파문을 진정시키는 한편 20, 21일 연속 회의를 열어 당ㆍ정ㆍ청 합의사항을 이끌어 냈다.

그런데 21일 오후 이목희 제5 정조위원장이 사실관계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당ㆍ정ㆍ청 합의 사항과 다른 얘기를 하면서 문제가 꼬였다. 즉 다음날(22일) 오전 김 장관이 CBS 라디오 대담에서 “국민연금 투자를 완전 민간 기구에 맡길 경우 손해가 나면 누가 책임지느냐”며 정부의 책임성을 강조한 것이 당정청 합의결과에 반발한 것이라는 해석으로 증폭돼, “‘김의 전쟁’의 2라운드가 시작됐다”는 식으로 파문이 확산된 것. 급기야 남미를 순방중이던 노 대통령까지 김 장관의 발언을 접하고 강한 유감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 GT 왕따론에 독자행보 주장도
주목되는 것은 연기금 사태에서 엿보인 여권 내부의 움직임이다. 김 장관의 연기금 관련 발언이 ‘정치적 목적'을 위한 처신으로 해석돼 파문이 확산됐음에도 당에서는 책임지고 해명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소위 GT계 사람들은 당권파와 친노 직계 그룹이 김 장관을 왕따시키고 궁지에 몰아 넣으려고 했다는 ‘음모론’까지 제기했다. 일부에서는 연기금 사태를 계기로 GT가 대권 전략상 ‘독자 행보’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반면 친노 직계 그룹으로 분류되는 한 386 초선 의원은 “대통령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뉴딜적 경기 부양을 위해 연기금 활용을 강조했는데, 김 장관이 정면으로 반발한 것은 근시안적인 안목을 가졌거나 다른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친노 인사인 전 노사모 회장 명계남씨는 11월 20일 ‘김근태라는 개인, 대권을 염두에 두고 있는 정치인의 이해 타산과 과욕을 읽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GT를 둘러싼 당내 제 세력의 이해 관계는 당장 내년 3월 전당 대회와 함께 본격화될 대권 레이스가 얽혀, 점차 차츰 파워 게임의 양상을 띠고 있다. 특히 노 대통령과 GT는 여러 측면에서 갈등 요소가 잠재, 궁극적으로 ‘동행(同行)’하기 어려운 인연이라는 게 정가의 분석이다. 이번 연기금 사태를 둘러싼 양측의 갈등도 그러한 인연과 무관하지 않다?지적이다.

두 사람은 1997년 국민회의라는 공간에서 정치적 인연을 쌓기 시작해 2000년 8월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을 계기로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2002년 대선, 신당 창당, 최근의 개각 논란에 이르기까지 수 차례 경쟁과 갈등의 단면들을 드러냈다.

특히 재작년 대선 과정에서 노 대통령이 2002년 8ㆍ8 재보선에서 참패한 뒤 당내에서 ‘노무현 흔들기’가 한창일 때 김 장관에게 선대위 요직 참여했다가 거부당한 것이나, 대선 승리 후 17대 총선 승리를 위해 개혁세력에 신당 창당을 주문했을 때 맏형격인 김 장관이 분당형 창당에 반대하다 막판에 합류했던 과거에 ‘앙금’이 남아 있다는 후문이다.

김 장관측도 대선 과정은 물론 개각 파동에 이르기까지 노 대통령이 견제 내지 무시했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 지난 1ㆍ11 열린우리당 당 의장 경선에서 노 대통령이 정동영 전 의장을 밀어 불출마할 수 밖에 없었던 점이나, (통일부 장관)입각을 전제로 원내대표 재도전을 포기했음에도 복지부 장관에 머문 점 등을 대표적 이유로 꼽을 수 있다.

• 당권 놓고 다시 부딪칠 수도
연기금 파문과 관련, 노 대통령과 GT는 11월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사랑의 열매 전달식’ 전에 별도로 만나 ‘오해’를 푼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양측의 뿌리 깊은 갈등의 인연은 여전하다는 게 중론이다. 현재 열린우리당 내에서 내년 3월 전대를 앞두고 당권, 나아가 2007년 대선에서 유리한 지형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서바이벌 경쟁이 그러한 인연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노 대통령측은 친노 그룹이 앞장서 당권을 확보해 노 대통령의 후반기 국정 운영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한다는 계획인데 반해, GT측은 내년 3월 전대가 대권 레이스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가에서는 열린우리당의 세력 분포상 친노그룹이 당권 경쟁에서 다소 유리한 구도에서 당권파와 재야파가 도전하는 국면으로 분석한다.

그러나 최근 친노 그룹이 ‘국민 참여 연대(국참연)’의 발족으로 분화하고 있고 개혁 당파인 ‘참여 정치 연구회(참정연)’와 ‘적자’ 논란을 벌이는 등 당내 사정이 급변하고 있어, 상황은 극히 유동적이다. 게다가 당권파는 국참연과, GT계인 재야파는 참정연과 연대 움직임을 보이면서 당권의 향배는 지극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마땅한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GT가 직접 당권 도전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GT측에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고, 대리인을 내세우거나 타 세력과 연대해 당권을 차지한다는 복안이다. 대리인으로는 장영달ㆍ임채정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실질적인 ‘김의 전쟁’은 이미 시작된 셈이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12-02 16:09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