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는 사건 1위는 '행정수도 이전 위헌 판결' 44%'대통령 탄핵 사태'가 2위. 국보법 논란 등 정치적 이슈 많아

여론으로 본 2004년 - 헌재가 쥐락펴락한 한국·한국인
기억에 남는 사건 1위는 '행정수도 이전 위헌 판결' 44%
'대통령 탄핵 사태'가 2위. 국보법 논란 등 정치적 이슈 많아


그 어느 해보다 정치적 격변이 많았던 2004년. 국민이 가장 기억하는 사건은 무엇인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소장 김현태)가 12월 9일 발표한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행정 수도 이전 위헌 판결’이 44.0%로 2004년 한해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선정됐다. 이어 탄핵 사태(38.2%), 경기 침체(32.9%), 이라크 파병(24.9%), 국가 보안법 폐지 논란(19.1%) 등이 뒤를 따랐다. 연구소측이 선정한 ‘10대 여론 뉴스’에는 이 사건들 외에도 △진보 정당 원내 진출(6.6%) △국정 운영 지지도 20%대로 하락(6.6%) △박근혜 당 대표 선출(6.4%) △북핵 문제(5.7%) △4ㆍ15 총선과 열린우리당 과반의석 획득(5.3%) △보수 운동 대중화 조짐(2.5%) 등이 포함돼 있다.

이는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지난 1년간의 여론 조사에 근거, 가장 관심이 많았거나 가장 높은 지지/비판을 받았던 이슈, 여론이 팽팽하게 맞섰던 이슈를 중심으로 10개 항목을 선정한 뒤 7일 전국의 성인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른 것이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7%)

행정수도 문제, 서울·충청권에서 높은 관심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선정된 ‘행정 수도 이전 위헌 판결’은 서울(52.8%)과 충청권(59.5%)에서 특히 높은 관심을 보인 반면, 친 한나라당 성향을 보인 영남권에서는 ‘탄핵 사태’를 더 중요하게 평가했다. 정당지지층별 최고 이슈도 달라 열린우리당 지지층은 47.1%가 탄핵 사태를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꼽은 데 반해, 한나라당 지지층은 행정수도 위헌 판결(43.2%)을 중요 사건으로 선정했다. 또 행정 수도 위헌 판결 후 대안으로 행정부를 충청 지역으로 이전하는 방안에 대해 반대 의견(53.4%)이 찬성쪽(42.9%)보다 높았고, 위헌 판결에 대해 국민은 정부 여당(50.3%)의 책임이 한나라당(44.9%)보다 크다고 평가했다.(11월 9일 조사)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은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아 노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59.9%, 3월9일 조사)와 함께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율도 44.2%로 급상승했지만(5월25일 조사), 탄핵 거품이 걷히고 거대 여당으로서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데 실패하면서 지지도는 반토막(22.4%)나고 말았다(11월 23일 조사). 노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도 역시 탄핵 기각 직후인 5월 말 50%대까지 올라갔으나 이후 급락해 하반기 내내 20%대를 넘지 못했다.

40대에 이어 핵심 지지층으로 불리던 30대까지 이탈하면서 20%대로 떨어진 국정 운영 지지도는 ‘386세대’의 정체성 논쟁까지 불러 일으켰다. 연구소측은 “행정 수도 위헌 판결과 탄핵 사태, 모두가 정치권의 문제 해결 능력 부재로 헌법재판소로 넘어 간 이슈라는 점에서 정치권의 무능과 정치 위에 법이 존재하는 법치의 힘을 보여준 한 해”라고 평가했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 최고조에 달해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최고조에 달해 정치권이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응답이 80%에 이르러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15.8%)보다 5배 이상 높았다(12월 7일 조사). 이는 작년 12월 조사 때와 비교했을 때보다 14% 포인트나 높은 수치다. 연구소측은 그 원인으로 △극심한 정쟁 △정치권의 무능 △이념 갈등 격화 △장기화된 경기 침체 △여야 지도부의 리더십 부재 등을 지적했다.

‘경기 침체’는 대다수 국민에게 경제 불안감을 고조시켰는데 특히 자영업층과 경제 활동 중심 연령층인 30대와 40대에서 경제 위기로 작용, 경제 문제 해결이 다른 어떤 과제보다 절박하게 제기됐다. 1월 조사에서 경제 전망이 ‘좋아질 것’이란 응답이 28.6%로 ‘나빠질 것’이란 응답(18.6%)과 불과 10% 포인트 차이를 보였지만, 12월 조사에서는 ‘나빠질 것’이란 전망이 46.6%에 ‘좋아질 것’이란 쪽은 13.8%로 나타나 그 격차가 28.8%나 됐다.

그래서 내년 참여정부 경제 정책의 방향과 관련해서는 ‘규제 완화 등 기업의 투자 촉진이 우선이다’는 견해가 25.2%에 ‘사회 안전망 등 서민 생활의 보호가 우선이다’는 쪽이 74.2%로, 국민 여론은 서민 생활 안정을 내년 경제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올 한해는 시민 단체의 이라크 파병 반대 운동과 김선일씨 피살 사건 등으로 어느 때보다 전쟁과 평화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게 나타났다. 국민 여론은 비록 이라크 전쟁이 명분은 없지만(‘의미 있는 전쟁’12.6%, ‘의미 없는 전쟁’84.3% - 6월 29일 조사), 미국과의 동맹 관계 유지를 위해 파병은 불가피하다는 실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은 올 하반기 가장 뜨거운 이슈로 등장, 정부 여당의 강력한 추진에도 불구하고 끝내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국가보안법이 인권 탄압의 수단으로 악용돼 왔다는 점에서 시급히 개정돼야 한다는 여론은 높았으나, 남북 대치 상황과 북핵 문제 등 안보 불안 심리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완전 폐지’보다는 ‘일부 개정’쪽으로 여론이 기울었다.

민노당 제도권 정치 진입도 '사건'
원내 진출에 성공한 민주노동당의 약진은 한국 정치사에서 새로운 이정표로 기록될 만큼 큰 사건이었고 제3당의 입지를 구축한 이 당의 행보에 국민적 관심이 자연 쏠렸다. 4ㆍ15 총선 직후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 민주노동당의 의회 진출에 대해 ‘정치 발전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는 응답이 75.2%나 됐다는 점이 선명히 말해 준다. 하지만 이후 제도권 정당으로 연착륙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서 정당 지지도가 10%대에 머물고 있다.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으로 침몰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이 긴급 처방으로 박근혜 대표를 선택하고 이른바 ‘박풍’덕에 되살아난 것도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박 대표는 4ㆍ15 총선 이후 대권 후보로 급부상, 최근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고건 전 총리(32.1%)에 이어 2위(19.2%)를 차지, 여당 후보 뿐만 아니라 당내 잠재적 경쟁자인 이명박 서울시장(9.9%)과 손학규 경기지사(1.1%)보다 월등히 앞 선 것으로 나타나 주목을 받고 있다.

북핵 문제도 국민의 주요 관심사였다. 북핵을 둘러 싼 미국과 북한의 대립속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국민 여론이 정착된 해이다. 북한을 군사적 위협국이 아닌 평화 통일의 동반자 개념으로 받아 들여(북한에 대해 ‘군사적 위협인 주적’39.0%, ‘평화통일 동반자’56.7% - 7월13일 조사), 향후 한반도 문제에서도 남북 관계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올해는 보수ㆍ진보간의 이념 갈등이 대중적 차원에서 수 차례 격돌하면서 보수 운동이 대중화 조짐을 보였다. 보수 우익 단체의 대중 집회에 대해 ‘공감한다’(45.9%)와 ‘공감하지 않는다’(45.0%)가 대등한 양상을 보였듯이(10월 5일 조사), 그 동안 보수 운동이 ‘대중성 결여’ 등의 이유로 국민의 외면을 받았던 것과 달리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해 간 해였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12-22 17:19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