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이 자본·기술, 북한이 노동력, 러시아가 토지 공급 '3국 협력특구' 조성

연해주 프로젝트… 남·북·러 뭉친다
남한이 자본·기술, 북한이 노동력, 러시아가 토지 공급 '3국 협력특구' 조성

남북한 러시아 3국 협력특구의 유력한 후보지인 연해주 한카호 인근 호롤군 입구. 러시아 우스리스크 대학 농업아카데미교수들과 한국측 충북대 농과대 교수들이 입지타당성 조사를 하고 있다.

극동 러시아에 위치한 연해주에 남북한과 러시아가 참여하는 ‘연해주 프로젝트’가 추진중이다. 남한이 자본과 기술을 대고 러시아는 토지를, 북한은 노동력을 공급해 ‘3국 협력특구’(대규모 농업ㆍ경공업 단지)를 조성하고 나아가 ‘고려인 자치주’를 건설한다는 구상이다.

외교통상부 산하 단체인 재외동포재단(이사장 이광규)과 민간단체인 국제농업개발원(원장 이병화)은 최근 러시아 정부 관계자들과 접촉을 갖고 이 같은 특구 건설을 추진키로 했다고 밝혔다. 국제농업개발원 이병화 원장은 3월 15일 ‘고 - 러 연해주농업개발협력지구 수립추진협의회’창립 총회에 참석,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까운 한카(興凱)호 일대에 총 26억 평 규모의 단지를 개발할 계획”이라며 “이를 통해 북한의 식량난을 해결하고 장차 고려인들이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고려인 자치구 가능성
3국 협력특구가 조성되면 1937년 러시아가 고려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뒤 ‘고려인 자치구’가능성이 열리게 되는 셈이다. 재외동포재단과 국제농업개발원측은 “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03년 11월 ‘민족문화자치회에 관한 법령 개정안’에 서명해 고려인 자치구를 건립할 수 있는 법적 토대가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연해주는 북쪽으로 하바로브스크, 남쪽으로는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있어 대규모 초지는 물론 석유, 가스, 다이아몬드 등 지하 자원이 풍부한 지역. 한국측의 연해주 개발 시도는 1990년 한ㆍ소 수교 이후 본격화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92년 말 노재봉 당시 총리를 통해 연해주에 고려인 자치촌을 세운다는 구상, 이른바 ‘광개토대왕 프로젝트’를 추진한 것이다.

한ㆍ소 수교 당시 러시아에 건넨 차관(14억7,000만 달러)이 소련 연방이 무너지면서 상환이 어렵게 되자 차관의 일부를 연해주 개발에 활용하자는 속내였다. 그러나 광개토대왕 프로젝트가 연해주 현지 및 국내 사정으로 중도에 좌초되고, 95년 9월 전두환 전 대통령측에서 수립한 연해주의 남북한 식량기지화 계획도 박계동 의원이 폭로한 비자금 사건에 휘말리면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최근 연해주의 곡창 지역을 남북한과 러시아가 공동으로 개발, 북한에 식량을 공급하고 나아가 이 지역의 에너지 자원을 개발하자는 목적 이상의 의미를 띤다. 그에 더하여 농업 도시 형태의 고려인 정착촌을 건설하려는 ‘신 광개토왕 프로젝트’인 셈이다.

3국 협력 특구가 건설될 곳은 연해주에서 농업 생산성이 가장 뛰어난 ‘호룰군’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가운데서도 한카호 부근 6억평(서울 여의도 넓이의 660배)이 핵심 지역으로 인근 야누친스크군에서는 대순진리회(종무원장 이유종)가 2000년부터 농작물을 재배, 매년 수백톤의 곡물을 북한에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10~11월 대통령 직속 자문기관인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위원장 장원석)’은 행정자치부, 해양수산부, 농림부 등 위원회에 파견된 각 부처 실무자들과 함께 호롤군 일대를 답사한 결과, 농업 협력 특구로 매우 적합하다는 내부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연해주 건설 초기 재원은 1990년 한ㆍ소 수교 때 우리측이 제공했던 차관(잔액 15억8,000만 달러) 상환금이 거론되고 있다. 이병화 원장은 “상환금 중 10억 달러는 ‘극동러시아 자원 개발 기금’으로 한ㆍ러 공동 펀드를 만들고 나머지 5억,8000만 달러를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해 러시아 전문가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밝혔다.

3월15일 한국일보사 건물 송현클럽에서 열린 고-러 연해주 농업개발협력지구 수립추진협의회 창립총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연해주에 ‘고려인 자치구’ 건설 추진은 민간 차원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고 - 러 연해주농업개발협력지구 수립추진협의회’공동 발기인인 유진각 두만강연해주개발 사장은 “러시아 정부는 연해주의 쇠락을 막기 위해 고려인(남북한 포함)들의 이주를 적극 환영하는 입장”이라며 “먼저 자치구를 만든 다음 향후 3년 동안 3만명까지 확보해 고려인 자치주를 세우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재외동포 관련 시민단체인 동북아평화연대의 강영석 이사장은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로의 이주가 자유롭지 못한 중앙아시아 동포들이 고향(연해주)에서 살 수 있도록 고려인 자치구를 만드는데 전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치권도 지원방안 모색
정치권 역시 연해주 지역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3월 3 ~ 7일 러시아 사할린과 연해주를 방문하고 돌아온 여야 국회의원들은 에너지ㆍ자원 개발을 위한 대책 마련에 주안점을 두는 동시에 연해주 지역 동포들에 대한 지원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러한 구상이 현실화되기까지는 난관이 적지 않다. 우선 재원 마련과 관련,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러시아 차관은 2007년부터 2025년까지 전액 현금으로 돌려받기로 2003년에 합의가 된 상태”라고 말했다. 고려인 자치주에 대해서도 발레리 수히닌 주한 러시아 부대사는 “연해주에는 자치주(구)를 이룰 만큼 고려인이 많지 않고 엄연한 러시아 국민인 만큼, 문화 자치를 인정하는 ‘문화 자치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또 다른 시각에서 연해주 프로젝트의 실현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강력한 러시아 건설’을 내세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시베리아 개발 구상, 사할린 가스관의 남북 관통을 목표로 하는 ‘사할린 프로젝트’, 노무현 대통령이 신년 기자 회견서 밝힌대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남북정상회담’에의 의지 등은 분위기를 한층 무르익게 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시베리아 발전 계획으로 채택한 ‘2010년 극동ㆍ시베리아 개발 계획’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시베리아 개발을 위해 2010년까지 총 4,412억루블(142억 달러)을 투자하기로 돼 있다.

‘동북아 마샬플랜’으로 일컬어지는 사할린 프로젝트는 사할린의 무궁무진한 천연가스를 남북한, 중국, 일본에 공급한다는 계획. 미국의 부시 대통령 가문과 가까운 에너지 재벌인 엑슨 모빌이 사업권을 갖고 개발을 진행중이라는 대목도 유념할 만하다. 이 계획이 현실화되면 부시 가문에게도 막대한 이익이 돌아가게 돼 부시측에서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관측 때문이다.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북핵과 관련, 사할린 프로젝트를 매개로 북한이 에너지를 공급 받고 미국으로부터 안전을 보장 받는 조건으로 비핵화를 선언하는 북 - 미, 남 - 북 간 대타협이 이뤄지게 되면 세계 평화에도 일대 전기를 마련할 전망이다.

현재 각국의 이해 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상황에서 최고의 중재자 입장에 서 있는 주체는 러시아. 만일 푸틴 대통령이 북핵 문제의 돌파구를 마련해 경제 재건이라는 ‘내치’는 물론, 동북아 안정이라는 ‘외치’에도 성공한다면 차기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 남북 정상 회담의 중재에 나서, 만일 성사된다면 수상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게 된다.

최근 국내 안팎에서 ‘남북정상회담 러시아 개최설’이 비중 있게 흘러 나오고 연해주가 개최 장소로 거론되고 있는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남북한과 러시아가 참여해 ‘3국 협력 특구’를 조성하고, 에너지 개발과 고려인 자치주를 건설한다는 ‘연해주 프로젝트’에 그만큼 더 힘이 실리고 있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5-03-23 17:29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