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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주에 취한 의원, 폭탄 맞은 정치권
'정치와 술' 불가분의 관계 인식, 추문 끝이지 않아



한나라당 최연희 전 사무총장이 여기자 성추행 사건으로 의원직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지난달 24일 동아일보 기자들과 식사 후 가진 술자리에서 여기자를 성추행한 게 직접적인 이유였다. 당시 동석했던 의원은 “폭탄주를 과음한 게 화근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지난해 9월에도 주성영 의원이 국정감사 기간에 피감기관 검찰 간부, 동료 의원들과 폭탄주를 마시다 술집 여주인과 여종업원에게 욕설을 했다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같은 해 6월에는 곽성문 의원의 대구 출신 의원과 지역 상공인들이 골프를 친 뒤 폭탄주를 돌리다 노희찬 대구상공회의소 회장과 말싸움이 벌어져 맥주병을 내던진 ‘맥주병 투척사건’이 있었다.

2004년 9월에는 김태환 의원이 한 골프장에서 골프를 친 뒤 술을 마시다 60대 경비원을 폭행해 물의를 빚었다.

이렇듯 중견 정치인이 술로 인해 명예와 권력을 한순간에 날리고, 술자리에서 벌어진 일이 대중에 노출돼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정치와 술의 관계, 술 문화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안가·요정 정치에서 한정식 정치로

정치와 술은 박정희 정권 때부터 불가분의 관계를 맺었다. 안가(安家)정치, 요정(料亭)정치가 주류를 이루면서 정치와 술이 한몸이 되다시피한 것.

청와대 근처인 궁정동과 구기동, 청운동 등에는 12개의 안가가 있어 밤에 이뤄진 안가 정치는 밥과 술을 한꺼번에 해결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성 접대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맥주잔에 양주를 가득 채우고 술내기를 한 것으로 유명했다.

안가 정치가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특수 권력층의 공간이었다면 요정 정치는 보다 일반적인 정치인들의 막후 무대였다.

국회가 낮의 정치의 중심이었다면 요정은 ‘밤의 정치’의 산실이었던 셈. 삼청각ㆍ대원각ㆍ청운각 등 요정에서는 여야 정치인들의 밀실거래가 이뤘고 남북적십자회담과 한일회담의 막후 협상 장소로 활용되기도 했다.

정치와 술이 요정을 중심으로 엮어지다보니 요정에서 술로 인해 불상사가 일어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86년에 일어난 ‘국방위 회식사건’은 대표적인 예.

그해 3월 임시국회 개회를 마치고 국회 국방위 소속 여야 의원 10여명과 육군 수뇌부 8명은 중구 회현동의 요정 ‘회림’에 모여 질탕하게 술잔치를 벌였다.

육군쪽 참석자는 79년 12ㆍ12사태 때 정승화 참모총장을 체포하는 데 1등공신이었던 박희도 참모총장(대장), 5공 초기 현역으로 전두환의 경호실장을 지냈던 정동호 참모차장(중장), 12·12 때 전방 노태우 장군의 9사단 병력을 이끌고 서울로 쳐들어왔던 구창회 총장비서실장(준장) 등 전두환의 최측근 수하들이었다.

국방위에서는 공군 소장 출신인 천영성 위원장을 비롯해 김동영 신민당 원내총무, 이세기 민정당 원내총무, 김용채 국민당 원내총무, 남재희 의원 등 소속 의원들이 자리를 같이했다.

술자리가 길어지고 만취가 되면서 군인과 정치인 사이에 언쟁이 오가고 급기야 주먹다짐까지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참석 장교가 예편하거나 좌천되는 것으로 마무리됐지만 폭탄주에 대한 일반인의 호기심을 자극해 이때부터 군, 검찰, 정치인들만의 은밀한 행사였던 폭탄주 문화가 대중화되는 계기가 됐다.

술 때문에 국회가 파행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89년 9월 ‘공안정국’ 문제로 여야가 첨예하게 대치했던 국회 법사위에서는 의원들이 저녁식사 때 폭탄주를 너무 많이 마셔 허형구 법무장관이 답변을 시작할 무렵, 의원끼리 말다툼을 하다 끌려나가는 일이 있었다.

94년에는 상무대 비리의혹 국정조사과정에서 술에 취한 나모ㆍ정모 의원이 돌출발언을 하는 바람에 회의가 엉망이 됐는가 하면 96년 서울지검 국감 때는 폭탄주에 취한 한 의원이 자정이 넘을 때까지 회의장 밖 휴게실에서 곯아떨어져 문제가 되기도 했다.

안가ㆍ요정 정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안가를 없애면서 크게 줄어들었고 대신 한정식집이 정치인들의 회동장소로 이용됐다.

80년대 초 한정식집의 원조격인 ‘장원’과 나중에 생긴 ‘수정’은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이 깊어 동교동계 인사를 비롯한 호남 정치인들의 비밀 공간이 되기도 했다.

술자리가 한정식집으로 옮겨가면서 이에 따른 사건도 적지 않았다. 87년 전두환 정권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표와 당직자, 국회의원들이 ‘장원’에서 회식하던 중 노 대표가 후계자로 내정된 것에 대해 당내 인사 일부가 술에 취해 “왜 군인끼리 해먹느냐”며 대들자, 노 전 대통령이 술잔을 날리며 싸우기도 했다.

술자리서 치고 받기 다반사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2000년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20주년을 맞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에 내려간 민주당 초ㆍ재선 385의원들의 이중적인 행동이 문제됐다.

전야제가 열리던 17일 행사장 인근 룸가라오케에서 여종업원들과 어울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춘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었던 것.

술자리에서 내뱉은 말 때문에 파문을 일으킨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1994년 서석제 전 총무처 장관은 비보도를 전제로 ‘노태우 전 대통령 4천억원 비자금 보유설“을 꺼냈다가 이 발언이 보도되어 전직 대통령이 법정에 서는 사태로 이어졌다.

이회창 전 총재는 97년 시내 한 중식당에서 기자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자신에게 비판적인 글을 쓴 기자들에게 농담으로 “장을 절단내겠다”고 했다가 이것이 외부로 알려져 곤욕을 치렀다.

2001년 7월에는 민주당 추미애 의원의 취중욕설이 화제가 됐다. 추 의원은 소설가 이문열씨가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을 문제삼아 기자들 앞에서 “이문열 같은 가당찮은 놈이 X같은 조선일보에 글을 써” 등 험한 말을 해 파문이 일었다.

정동영 최고위원, 이호웅 대표비서실장 등과 2차 폭탄주를 마신 게 주사의 화근이었다.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공개정치가 일반화되고 접대문화가 줄어들면서 정치인들의 술 문화도 달라졌다.

룸살롱을 찾는 문화는 거의 사라지고 소주와 백세주를 반반씩 섞은 ‘오십세주’를 마시거나, 맥주에 소주를 타서 마시는 ‘소폭’을 한 뒤 노래방으로 가는 코스가 생겼다.

국회에서도 술과 관련한 상반된 친목모임이 결성됐다. ‘폭소 클럽’과 ‘조폭 클럽’이 그것. 폭소클럽은 '폭탄주 소탕클럽‘으로 지난해 9월 한나라당 박진 의원과 우리당 김명자 의원 등 여야 의원 43명이 모여 “폭탄주 없는 건강한 국회상을 구현해 청정정치를 실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모임에는 폭탄주에 일가견이 있는 이계진, 최구식, 정두언 의원을 비롯해 권영세, 김문수, 김석준, 김정훈, 노회찬, 박세환, 박찬석, 배기선, 송영선, 전재희, 의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조폭 클럽'은 '조용히 폭탄주를 마시는 의원들의 모임'으로 술을 좋아하지만 ‘조용히’를 앞세운 데서 알 수 있듯 건전한 음주문화를 지향한다.

국민중심당 정진석 의원이 회장으로 우리당 노현송, 한나라당 유기준 의원 등이 회원으로 있으며 폭탄주 대가인 한나라당 박희태 국회 부의장, 우리당 유인태 의원이 고문이다.

정치문화가 바뀌면서 그에 따라 술문화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정치권 최고 술 대가는 누구?

박희태, 유인태, 권영길, 김무성 이상민 등 꼽혀

현역 정치인 중 최고 술 대가는 누구일까. 여야를 불문하고 단연 한나라당 박희태 국회 부의장이 꼽힌다.



박희태 의원, 유인태 의원, 김무성 의원 (왼쪽부터)



















폭탄주 22잔이 그의 공인기록이다. 그렇다고 실수한 적은 한번도 없다. 요즘은 자제하는 편이나 아직 5~6잔 정도는 가볍게 마실 수 있다.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과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도 술에 관한 한 대가로 알려졌다. 유 의원은 청와대 정무수석이던 2004년 한 언론사의 기사 문제로 해당 기자와 밤새 대작을 한 관계로 다음날 지각한 적이 있다.

유 의원은 아무리 술을 마셔도 지각한 적이 없었던 터라 청와대에서는 지각 사건이 화제가 됐는데 당시 유 의원이 마신 폭탄주가 30잔을 넘었다는 후문이다.

권영길 의원은 1972년 서울신문 사회부 기자 때부터 어떤 술자리건 마지막까지 남아 술을 더 청할 정도였다. 권 의원은 '술을 가리지 않고 주는 잔 마다 않는' 인사로 알려져 있다.

열린우리당 김혁규 최고 위원도 주당 반열에 든다. 경남도지사 재직 때 2인, 3인, 4인 등 자리에 따라 조를 맞춰 폭탄주를 함께 돌려 마시는 일명 '화합주'로 명성을 날리기도 했다.

초선 의원 중에는 우리당 이상민 의원이 손꼽힌다. 올초 젊은 기자 4~5명과 ‘1 대 1’식으로 폭탄주를 마셔 압승을 거뒀다고 한다.

한나라당에서는 김무성 의원을 비롯해 주성영, 최구식, 김양수, 권경석 의원 등이 술에 일가견이 있다. 김무성ㆍ주성영 의원은 폭탄주 20잔 정도는 거뜬히 마시며 기자 출신인 최구식 의원은 평소에도 폭탄주를 즐기는 주당이다.

권경석 의원은 소주에 맥주를 섞는 ‘소폭’을 즐기고 자수성가한 사업가인 김양수 의원도 실력가로 꼽힌다. 이계진 대변인도 폭탄주 7~10잔 정도는 마시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건·이명박·손학규 '酒流' 정동영·김근태·박근혜 '非酒流'

현재 거론되고 있는 대권 주자들을 굳이 분류하자면 고건 전 총리,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는 주류(酒流)에,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과 김근태 최고위원,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비주류(非酒流)에 속한다.



고건 전 총리는 자타가 인정하는 술꾼이다. 아버지인 고 고형곤 박사가 공직에 나서는 고 전 총리에게 ‘여자ㆍ돈ㆍ술’ 세 가지를 조심하라고 당부했지만 끝내 술 약속만은 지키지 못했다.

고 전 총리의 주량은 확실하지 않으나 지인들에 따르면 남들보다 먼저 취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서울시장 시절 기자들과 25대 1로 마시고 나서도 전혀 자세를 흐트러트리지 않은 일은 아직도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고 전총리는 젊은이들과의 ‘호프미팅’으로도 유명하다. 명지대 총장 시절 학교 앞 호프집에서 학생들과 만난 데서 유래해 참여정부 총리 시절에도 이어졌다.

호프미팅은 밤 12시까지 이어지더라도 2차는 없는 게 원칙이라면 원칙이다. 대학로의 한 호프집이 그의 단골집인데 피자를 시켜놓고 폭탄주를 돌리기도 한다.

고 전 총리는 폭탄주 대신 자신의 이미지로 내세우고 싶어하는 ‘화합’을 붙여 ‘화합주’라고 부른다. 술 마신 다음 날에는 반드시 사우나로 건강을 챙긴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주량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술이 세다. 상대에 따라 한 잔을 마시기도 하고 수십 잔을 마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시장은 스스로“양보다는 기(氣)가 세다”고 말한다. 현대 입사 시절 강릉에서 열린 신입사원 환영회에서 정주영 회장과 단 둘이 남을 때까지 자리를 지켜 정 회장이 “그만하자”고 해서 술자리가 끝났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진다.

이 시장은 폭탄주를 20여 잔까지 마실 수 있으나 분위기를 좋게 하기 위해 대부분 4~5잔만 마신다. 또 교회 장로여서 술을 자제하는 편이다.

손학규 경기지사는 술을 잘 먹고 즐겁게 마신다. 보통 폭탄주 5~8 잔 정도의 주량이지만 술자리 분위기를 띄우고 대화를 많이 해 많은 술을 마신 것처럼 여기게 하는 비법(?)이 있다.

또 술자리에서는 ‘러브샷’을 빠뜨리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4년 일본에서 외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는 그들에게 폭탄주를 돌려 호응을 얻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정동영 의장의 주량에 대한 평가는 상반된다. 일각에서는 술이 세다는 말도 있고 맥주 1병, 폭탄주 1잔이 적당량이라는 견해도 있다.

통일부 관계자들은 정 의장이 통일부 장관 재직시 북한 측과 접촉하면서 과음도 마다하지 않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말한다.

반면 정 의장의 측근들은 “정 의장이 상황에 따라 오버하는 경우가 있지만 폭탄주 3잔이 한계”라고 말했다.

직접 폭탄주를 만들어 본인은 딱 한 잔 마신 뒤 좌중에 계속 돌리는 식이라는 것. 실제 정 의장은 지난해 10월경 통일부 출입기자단과 가진 만찬에서도 3시간 동안 두잔 반 정도 마셨다고 한다.

동료인 박영선 의원은 “방송사 기자시절에도 비슷했다”고 말한다. 정 의장은 술자리가 많다보니 술상무가 자주 따라 붙기도 한다.

김근태 최고위원은 술을 좋아하지도 않고 잘 못마시지도 못한다. 다만 한잔 정도는 사양하지 않는 일주불사(一酒不辭)형이다.

김 최고는 소주 반 병이 주량이라고 하지만 불가피한 자리에서만 한두 잔 마실 정도다.

김 최고위원은 술 자리에서도 진지한 대화를 즐긴다. 한두 잔 마신 뒤에는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가끔 ‘사랑으로’‘찔레꽃’등의 애창곡을 자청해 부르기도 한다.

박근혜 대표는 소주 4잔이 주량으로 알려졌으나 거의 마시지 않는다. 부득이한 경우에는 ‘흑기사(자청해 술을 대신 마시는 사람)’가 나선다.

특히 폭탄주는 입에만 살짝 대고 흑기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지난해 4월 박 대표는 4ㆍ30 재보선을 앞두고 리더십 부재 논란에 휩싸였을 때 당내 인사들과의 연쇄 회동에서 직접 폭탄주를 제조해 돌리는가 하면 흑기사 도움없이 폭탄주를 마셔 주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박 대표는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많으며 자택으로 손님이 찾아오면 전통주를 담은 ‘계영배(戒盈杯)’를 내놓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계영배는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잔의 70% 이상이 채워지면 밑으로 흘러내려 가도록 만든 술잔으로, 박 대표의 트레이드 마크인 ‘절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

사진=김동호 기자


입력시간 : 2006-03-0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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