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출신·친노그룹 의원 등이 주축… '17인회'도 우군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이 “어디서 일해도 내 뜻과 맞출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신망이 높다. 노 대통령이 2002년 3월 단기필마로 민주당 당내 경선에 출마했을 때 단 한 사람의 현역 의원인 천 전 장관이 그의 곁에 있었다.

천 전 장관은 서울법대를 수석졸업한 엘리트 법조인으로 예비 판사를 꿈꿨으나 공군 법무장교 때 황석영의 소설 ‘어둠의 자식들’을 읽고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1993년 법률사무소 ‘해마루’대표로 있을 때 노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후 고비 때마다 그의 편에 섰다.

2002년 경선 당시 이인제 후보가 노무현 후보를 색깔론으로 공격하자 이를 ‘해당행위’로 규정했고, 같은 해 10월 후보단일화협의회가 노 후보를 흔들자 “썩은 살은 도려내야 한다”면서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노 대통령 당선 이후엔 개혁파 의원들과 ‘열린개혁포럼’을 결성, 노 대통령의 정치개혁 추진에 첨병역할을 자임했다.

천 전 장관은 94년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을 중심으로 만든 ‘통일시대 민주주의 국민회의’의 사무총장을 맡으면서 정계에 입문한 이래 ‘개혁’의 선봉에 서 왔다. 정동영ㆍ신기남 전 의장과 함께 우리당 창당 및 각종 개혁, 세대교체를 주도해 ‘천ㆍ신ㆍ정’이란 말이 생겨났고 특히 천 전 장관은 ‘강경파’,‘탈레반’이란 별명이 따라다녔다.

15~17대 3선 의원으로 2004년 17대 총선 이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이해찬 전 총리를 누르고 원내사령탑이 됐으며 그해 말 4대 개혁입법 처리가 좌초되자 2005년 1월 사퇴했다. 2005년 6월 법무부장관에 취임해 재임 13개월 동안 인권보장, 민생안정, 경제정의 실현에 노력했다.

천 전 장관은 7월 말 5ㆍ31 지방선거 참패와 당ㆍ청 갈등으로 만신창이가 된 우리당으로 돌아왔다.

정동영ㆍ김근태 전·현직 당의장이 주도하던 당내 대선레이스가 흔들리면서 이른바 ‘친천정배’의원들도 서서히 늘어가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출신인 임종인, 송영길, 최재천 의원, 호남의 유선호, 정동채, 지병문 의원, ‘신진보연대’를 이끌고 있는 신기남 의원, 친노 개혁그룹인 백원우, 이광철, 이화영, 조정식 의원 등이다.

천 전 장관이 원내대표시절 당직자들의 친목모임인 ‘17인회’의 우윤근, 전병헌, 최성, 문병호, 박영선, 오제세, 이종걸, 김영춘 의원 등은 일부가 정동영계로 분류되지만 천 전 장관과도 가깝다.

천 전 장관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동북아전략연구원’의 이사장은 ‘옷 로비 의혹 사건’ 특별검사였던 최병모 변호사가 맡고 있고 이사에는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원장, 이성재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IT정책 특보였던 이주헌 한국경영정보학회 회장, 김태일 열린우리당 대구시당 위원장 등이 있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