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업고 우리당+민주당+고건 신당+노무현 '그림 그리기 행보' 해석한나라·민주 긴장… 우리당 통합신당 움직임에도 직격탄
열린우리당에서는 정계개편을 놓고 계파간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중이었고 한나라당은 호남에 공을 들이며 ‘서진(西進)’ 공략에 속도를 내던 터였다. 민주당은 호남의 맹주임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DJ와 노 대통령의 만남은 각 당의 그런 꿈을 깨는 것이었다.‘비정치적’이라는 청와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회동의 상징성만으로도 정치권에 파열음을 내기에 충분했다. 당장 우리당은 대세를 이루던 통합신당론, 즉 ‘우리당+민주당+고건 신당-노무현’의 등식이 도전을 받게 됐다. 노 대통령을 배제한 정계개편론이 뜻밖의 장애물을 만난 것이다.
친노(親盧) 인사인 우리당 김혁규 의원은 7일 “정계개편의 동력은 결국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나올 것”이라고 해 노 대통령이 나설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결국 통합신당을 추동해온 우리당 김근태 의장과 정동영 전 의장에 직격탄을 날린 격이어서 당 주도권을 정동영ㆍ김근태 계에 넘기지 않겠다는 ‘노심(盧心)’을 드러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DJ는 그동안 “분당이 비극의 씨앗”이라며 우리당 창당을 비판하고 민주당과의 연대를 독려해 “민주당과의 연대는 지역주의 회귀”라고 강조한 노 대통령의 생각과 상충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친노 호남 인사인 염동연 의원은 “노 대통령은 민주당과의 연대에는 반대하지만 민주당을 포함한 범민주세력 연대에는 찬성한다”고 했다. 다시 말해 ‘우리당+민주당+고건 신당+노무현’의 정계개편론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DJ껴안기 '정계개편 대선과 관련'시각
이달 초 노 대통령을 만난 김혁규 의원은 “노 대통령은 대선전략에 있어서 전선구축을 늘 강조해 왔는데, 다음 대선에서 호남의 도움 없이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DJ와 만나고 7일 광주를 찾은 행보가 대선과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밖에 친노 직계인 386 의원은 “노 대통령은 지역주의 극복과 대북 포용정책을 임기 이후에도 유지할 것”이라고 해 노 대통령이 DJ와의 회동을 통해 그러한 면을 부각시키려했다는 분석도 있다. DJ 입장에서도 북핵 사태 이후 도전을 받은 햇볕정책이 노 대통령을 통해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게 돼 만남이 서로에게 윈-윈 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판단한 것. DJ는 북한이 핵실험을 한 10월 9일 햇볕정책의 당위성을 주장했고, 노 대통령은 다음날 전직 대통령을 청와대로 초청한 후 햇볕정책을 옹호, DJ에 화답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DJ와 노 대통령 사이가 ‘밀월’ 관계가 아닌 ‘갈등’관계라는 분석도 있다. 즉 미국이 북한의 해외자금을 옥죄기 위해 마카오의 BDA은행 계좌를 추적하는 과정에 DJ정부 때 북한에 보낸 현금 내역을 발견, 노 대통령에 통보했다는 것이다. DJ가 호남의 상징으로 정치적 비중을 높여 대선에 개입하려는 것에 대해 노 대통령이 BDA 정보를 앞세워 DJ의 행보를 통제하려고 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는 설이다. 그러나 신빙성은 약하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