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정국 시끌… 온갖 정치적 악재로 정권 붕괴 위기군 참모총장직 사임 비장의 카드 꺼냈지만 대통령 운명은 '글쎄'

페르베즈 의 정치적 운명은 어떻게 될까.

안팎에서 터져나오던 온갖 악재로 정권 붕괴의 위기에까지 몰렸던 무샤라프 대통령이 베나지르 와 권력분점에 합의함으로써 발등의 불을 껐다.

대통령이면서 군 참모총장을 겸임하는 초법적 지위가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를 촉발한 하나의 빌미가 됐다는 점에서 권력의 일부를 포기하기로 한 것은 성난 여론을 진정시키는데 일단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30일 외신들의 보도에 따르면 무샤라프 대통령은 영국 런던에 망명중인 와 참모총장직에서 사퇴하고 에게는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총리직을 보장하는 권력분점안에 합의했다.

참모총장직 포기의 대가로 가 이끄는 파키스탄인민당(PPP)은 9월 15일에서 10월 15일 사이에 치러질 의회의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이 대통령직 연임을 지지하기로 했다.

와의 그동안의 권력분점 협상이 난항을 거듭한 이유가 참모총장직을 놓지 않으려는 무샤라프 대통령의 고집 때문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참모총장직 포기는 사태가 그만큼 녹록치 않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

사실 군부에 대한 통제권은 미국의 지지와 함께 무샤라프 정권을 지탱시켜온 양대축의 하나여서 무샤라프 대통령으로서는 참모총장직을 놓는 것이 쉬운 결정이 아니었던 것은 분명하다.

참모총장직을 지켜야만 군부를 등에 업고 권좌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과 그것을 버려야만 민심의 이반을 되돌이킬 수 있다는 상반된 논리 사이에서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는 자신의 생사를 가를 수 있는 중차대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으로서 참모총장의 겸임은 그동안 숱한 초법적 시비를 일으키면서 무샤라프 정권의 정통성에 치명적인 약점으로 지적돼 왔다.

파키스탄 헌법에는 ‘군인은 정치적 지위를 갖지 못한다’고 규정돼 있다. 무샤라프 대통령 본인도 과거 대통령 권한을 대폭 확대하면서 대신 참모총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가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취소하는 등의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따라서 무샤라프 대통령으로서는 권력분점을 통해 이런 논란을 불식하고 공세적으로 정국을 주도하는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계산을 했음직 하다.

부토 전 총리

무샤라프 대통령이 이토록 애지중지하던 참모총창직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첫번째 대형 실착은 이프티카르 초드리 대법원장에 대한 무모한 축출시도이다. 독재에 항거하는 정의로운 지도자의 이미지를 갖고 있던 초드리 대법원장은 현 정권의 각종 비리에 철퇴를 내리는 판결을 주도해 무샤라프 대통령에게는 눈엣가시였다.

특히 그는 대통령 선거를 집권당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현 의회가 아닌 차기 총선 이후에 들어설 의회에서 선출해야 한다는 야권의 주장에 동조하면서 무샤라프 대통령의 제거대상 1호가 됐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초드리 대법원장이 자신의 아들을 경찰 고위직에 임명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비리를 내세워 지난 3월 전격적으로 대법원장 직무정지 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이는 무샤라프 정권의 지도력을 심각히 훼손하는 부메랑으로 작용했다.

대법원이 대통령의 직무정지 조치는 위헌이라며 그를 대법원장에 복귀토록 판결했기 때문이다. 직무정지 조치 이후 변호사협회가 이틀간 재판을 거부했고, 카라치 라호르 등 대도시에서는 파업이 잇따랐다.

무샤라프와 초드리 양측 지지자들의 충돌로 200여명이 사상하는 참사까지 발생했다. 정권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진 것은 물론이다.

7월 정부군이 이슬라마바드의 ‘랄 마스지드(붉은 사원)’를 점거한 이슬람 급진주의 세력을 유혈 진압한 사건은 민심의 이반을 부른 결정타가 됐다. 양측에서 100여명이 넘는 희생자를 낸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슬람 세력은 본격적인 무샤라프 퇴진 무력시위를 전개했다.

그렇잖아도 미국의 대 테러전에 협력하는 정권을 못마땅해했던 급진 이슬람 세력은 아프가니스탄 접경지대 등에서 정부군에 대한 공격의 강도를 높여나갔다. 7월말까지 무장세력의 공격은 지난해 전체의 두배에 육박하는 90여건에 달했다.

이 와중에 미국 정부마저 파키스탄 정부를 이례적으로 공개 비난하고 나서면서 무샤라프 대통령은 더욱 궁지로 몰렸다. 알 카에다 조직이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아프간 접경지역에 대해 무샤라프 대통령이 너무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는 것이 미국의 불만이었다.

사실 무샤라프 정권의 통제력은 접경지역까지 미치지 못하는 데다가 오히려 이슬람 세력을 달래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미국이 요구한 접경지대에 대한 강력한 대응은 무샤라프 대통령으로서는 충족하기 불가능한 요구였다.

정적이나 다름없는 에게 총리직까지 제시하며 연대를 모색한 것은 사면초가에 빠진 무샤라프 대통령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마지막 카드였다.

그러나 권력분점 합의가 무샤라프의 정치생명에 득이 될 것이라고 보는 건 아직까지는 속단이다. 우선 집권당인 파키스탄무슬림연맹(PML_Q) 내부에서조차 이번 합의를 ‘야합’이라고 강력 비난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등 기류가 심상치 않다.

1999년 쿠데타로 쫓겨난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의 지지자들이 사자를 동원해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반대를 주도하는 세력은 8년 전인 1999년 무샤라프 대통령이 쿠데타로 쫓아냈던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 측 인사들이다.

이들은 샤라프 총리 축출 이후 이슬람 세력에 대한 지지기반이 같다는 명분으로 무샤라프 진영으로 옮겨왔으나, 최근 샤리프 전 총리가 올해말이나 내년초로 예정된 총선에 출마할 목적으로 조만간 귀국할 것으로 알려지자 다시 그에게 합류하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자칫 집권 다수당이 대규모 탈당으로 붕괴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이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 샤리프 전 총리에게 귀국을 강행할 경우 축출 당시 얽어맸던 탈세 및 반역 혐의 등으로 재판을 재개하겠다며 위협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반 무샤라프 진영의 상징이 된 초드리 대법원장이 사법부를 장악하고 있어 쉽지 않다.

지난 22일 “샤리프 전 총리에게는 귀국할 수 있는 양도 불가능한 권리가 있다”며 그의 입국을 허용하는 판결을 내린 것도 초드리의 대법원이었다.

파키스탄 정가는 ‘적과의 동침’을 감행하면서까지 강한 권력복귀의 의지를 내보이고 있는 와 역시 무샤라프에게 빼앗긴 권좌를 되찾기 위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귀국을 강행하려는 샤리프 전 총리의 등장으로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국면으로 흘러가고 있다.

권력분점이라는 무샤라프의 도박이 결코 낙관적이지만 않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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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