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토 암살 그 후, 총선 연기로 갈등은 일단 봉합됐지만…'부토는 미국의 앞잡이' 비난해온 알 카에다·이슬람 반군 등 테러 배후 거론유일한 야당지도자 샤리프 급부상 예상… 미국의 영향력 급속히 위축될듯

불안하게 유지돼온 파키스탄 정국에 2007년 세밑 기어코 핵폭탄이 터졌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의 권력분점 파트너로 알려진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가 지난달 27일 라발핀디에서 총선 유세 도중 자살폭탄 테러로 폭사하면서 파키스탄 정국은 그야말로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속으로 빠져들었다.

부토 전 총리의 사망 소식에 흥분한 지지자들과 시민들은 수일째 관공서와 은행, 상점, 자동차 등에 대한 무차별 방화에 나섰고, 무장 경찰은 시위군중을 향해 발포하는 등 일부 도시는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부토 전 총리 사망 후 발생한 소요사태로 수십명이 사망하고 수백개의 관공서와 건물이 불에 타거나 습격을 받았다.

이번 폭탄 테러는 특히 1월 8일 실시 예정이었던 총선을 불과 10여일 앞두고 발생했다는 점에서 파장이 더욱 컸다.

부토 전 총리가 이끄는 야당인 파키스탄인민당(PPP)이 제1당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점쳐진 총선에서 지도자가 유세 도중 폭사했다는 것은 여권은 여권대로, 야권은 야권대로 온갖 억측과 음모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무샤라프를 지지하는 파키스탄무슬림리그(PML_Q)는 부토 전 총리가 권력분점의 한 당사자였다는 점에서 일찌감치 정부 연루의혹 차단에 나섰고, 또 다른 야권 지도자인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가 이끄는 파키스탄무슬림리그(PML_N)를 비롯한 야당들은 정부가 총선을 무산시킬 빌미를 찾기 위해 테러를 배후 조종했다고 일제히 공격했다.

총선은 일단 연기됐다. 파키스탄 선거관리위원회는 2일 부토 전 총리의 암살로 비롯된 현재의 혼란스런 상황에서는 자유로운 선거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총선을 6주 후인 다음달 18일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테러 직후 총선 강행을 주장하던 야당들도 선거 연기의 불가피성을 인정해 총선으로 인한 갈등은 일단 수그러든 상태다.

문제는 누가 어떤 이유로 테러를 저질렀으며, 무샤라프 정권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파키스탄 정부를 앞세워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던 미국 정부가 받을 대외정책의 타격이 어느 정도일까 하는 점이다.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워싱턴에 있는 파키스탄 대사관에 차려진 부토 전 총리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 파키스탄 정보부 테러설도

테러의 배후는 국제 테러조직 알 카에다와 이슬람 반군세력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들에게 부토 전 총리는 무샤라프 대통령과 함께 그 동안 공적 1호로 지목돼 왔다. 수차례 부토 전 총리에 대한 테러 경고도 잇따랐다.

부토 전 총리가 자신들의 대척점에 있는 무샤라프 대통령의 권좌를 지속시키기 위해 권력분점이라는 야합을 시도했다는 이유에서다. 애초 샤리프 전 총리와 함께 강력한 야권 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예상됐던 부토 전 총리는 무샤라프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그를 지지하는 대가로 총리직을 보장받는 권력분점을 논의해 왔다.

이슬람권의 지지를 받는 샤리프 전 총리가 부토를 격렬히 비난한 것은 이슬람권의 지지를 잃은 현 정권을 향한 부토의 회색적인 태도 때문이었다.

더욱이 부토 전 총리와 무샤라프 대통령 간의 권력분점안이 미국 정부의 강력한 중재 하에 나왔다는 것이 파키스탄 국민의 반감을 부른 결정타였다.

미국은 대 테러전의 파트너인 무샤라프 정권이 이슬람권의 반감을 사면서 붕괴될 조짐을 보이자 친미성향을 갖고 있으면서 야권에 상당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는 부토 전 총리를 끌어들여 무샤라프 정권을 연장시킨다는 계획을 추진했다.

부토 전 총리가 수년간의 망명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10월 귀국하게 된 데는 콘돌리사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이슬람극단주의자와 알 카에다에게 부토 전 총리가 미국의 앞잡이로 비쳤던 것은 이런 점에서 당연했다.

또 하나 거론되는 배후는 파키스탄 정보부(ISI)이다. 요인 암살과 테러 사주 등 독재권력의 수족으로 온갖 악명을 떨치고 있는 ISI가 ‘미국의 배신’이라는 만일의 가능성에 대비해 미리 잠재적 위협 요인을 제거했다는 시각이다. 지난해 10월 부토 전 총리 귀국 당시 수백명의 사상자를 낸 폭탄테러 참사의 배후로도 알 카에다와 ISI가 거론됐으나 결국 규명되지 못했다.

미국은 대 파키스탄 정책의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파키스탄 내의 영향력도 급속히 위축될 것은 분명하다.

쿠데타로 권력을 빼앗은 뒤 독재를 자행해 온 무샤라프 대통령을 ‘테러와의 전쟁’의 파트너라는 이유로 집착한 결과 부토 전 총리 암살로 이어졌다는 비판에서다. 부토 전 총리를 끌어들여 정정불안을 해소하고, 한편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계속 수행토록 하는 ‘두 마리의 토끼’를 쫓다가 결국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잃을 수 있는 상황으로 몰린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부토의 사망으로 야권의 유일한 지도자로 등장한 샤리프 전 총리의 행보가 한층 주목받게 됐다. 특히 이슬람 보수층을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파키스탄 정국 안정에 미치는 샤리프의 역할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미국 정부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과 연계돼 있다고 의심하면서도 그를 부토를 대신할 또 다른 대안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분석은 이런 맥락에서다.

■ 미국, 핵 안전성 확보에 총력

부상하는 샤리프와 대조적으로 부토 전 총리의 파키스탄인민당(PPP)의 위상 추락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PPP는 부토 전 총리의 아들인 빌라왈 부토 자르다리(19)와 남편인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51)를 공동으로 당의 새 지도자로 임명했다.

그러나 빌라왈은 지난해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 갓 입학한, 나이 19세의 정치 무경험자라는 점에서, 남편은 아내의 집권 시절 상하원의원과 환경부 장관을 지낸 바 있지만, 수차례 뇌물수수 의혹을 받은 구태 정치인으로 낙인이 찍힌 인물이다.

‘미스터 10%’라는 별명은 아내의 후광을 이용해 이권에 개입하면서 커미션으로 10%를 요구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남편 자르다리가 이런 점을 의식해 당 대표직을 고사하긴 했지만, 당의 구심력은 급속히 이완될 가능성이 높다.

1998년 핵실험에 성공한 뒤 현재 80~120개의 핵탄두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파키스탄은 이슬람권의 유일한 핵보유국이다. 테러와의 전쟁에 사활을 걸고 있는 미국 정부가 무샤라프 정권에 맹목적일 정도로 강한 집착을 보이는 것은 이런 핵무기의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도 크다.

미국 정부의 앞으로의 대 파키스탄 정책이 어떤 모습을 보일 지 속단할 수 없지만 핵무기 유출 방지가 강력한 명제가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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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석 한국일보 국제부 차장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