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배후설' 도마에… 또 다른 비선실세 A씨의 실체

외곽서 정권핵심 만나 조언도…천문학적 자금 움직이는 인물로 알려져
올 초부터 김기춘 비서실장 교체 추진 놓고 권력암투 벌어져
“안봉근 이재만 정호성 3인방은 직접 인사개입 못하는 사람들”평
박지만-정윤회-김기춘 충돌… 십상시 일선서 손 떼나


최근 불거진 청와대 문건유출 파문은 박근혜정부 최대 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치권에 메가톤급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청와대 문건유출로 검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정윤회(59)씨의 국정개입 의혹과 관련해 온갖 추측과 분석이 난무하고 있다. 그동안 각종 설로만 떠돌던 ‘문고리 권력설’ 중 일부가 사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검찰 수사결과에 따라 청와대가 본격적으로 수술대 위에 오르게 될 수도 있다.

청와대는 문건유출 사건의 핵심을 ‘누가 문건을 유출했는가’에 맞추고 있다. 하지만 여론은 유출된 문건의 내용이 사실인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검찰은 청와대의 의중에 따라 수사방향을 정한 듯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건발생 직후 문건유출사건을 ‘국기문란행위’로 규정하고 검찰의 강력한 수사를 촉구했다.

하지만 이는 유출자에 모든 초점을 맞추겠다는 일종의 가이드라인 제시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선 유출자 색출이 중요한 게 아니라 문건 내용과 같이 실제로 정윤회라는 인물이 국정에 개입했는지 밝히는 게 더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에는 청와대를 움직이는 비선실세로 정씨 외에 또 다른 인물이 있다는 말도 들린다. 그 내용을 들어보면 박근혜 대통령과 특수관계인 A씨가 정씨와 더불어 청와대의 비선실세이며 정권핵심인사들이 이 인물과 은밀히 접촉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A씨는 외곽에서 핵심인사들과 만나 국정운영과 관련된 여러 현안을 논의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청와대 움직이는 실세의 정체

<주간한국>은 올해 중반부터 김기춘 비서실장의 교체와 관련된 기사를 보도한 적이 있다. 해당 기사를 통해 “청와대 문고리권력이 김기춘 실장을 교체하기 위해 안팎으로 힘을 쓰고 있다는 의혹이 있다”는 내용을 보도하면서 핵심실세를 영문 이니셜로 지목하였다.

의혹의 중심 인물은 바로 정씨였다. 또 정씨를 비롯해 이른바 ‘십상시’로 분류되는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이 청와대뿐만 아니라 여러 기관과 여당의 각종 인사문제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을 보도하기도 했다.

특히 <주간한국>은 지난 11월 28일자를 통해 청와대가 김기춘 비서실장 교체를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공교롭게도 문건이 보도된 날과 같은 날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정씨의 김 실장 교체에 대응하기 위해 문건을 흘린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 추측이 사실인지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문건 내용대로 라면 김 실장의 교체를 청와대가 추진했고 그 중심에 정씨가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난다.

올해 초 경 청와대 주변에선 김 실장에 대한 교체가 적극 추진되고 있다는 얘기가 회자됐다. 그러나 교체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 때문에 문고리 권력 3인방을 비롯해 정씨가 여러 방안을 고민 중이라는 말들이 돌았다. 또 정씨를 중심으로 이른바 ‘십상시’로 거론되는 인사들이 사정기관 정보라인 등 각종 망을 동원해 김 실장 흔들기를 시도한다는 소문도 들렸다. 이에 따르면 당시 수집된 정보들에는 관심을 끌만한 내용들도 엿보인다. 가령 ▦김 실장 퇴진이 임박했으며, 이미 후임자와 교감을 나눈 상태 ▦김 실장이 순순히 물러나지 않아 정치적 현안을 통해 책임론 부각 작업 ▦VIP측근 비리 가능성 제기에 따라 청와대 내 박지만 측근 제거 ▦국정운영과 관련해 김 실장과 문고리 권력 간 보고라인 혼선으로 갈등 심화 등등.

그러나 최근 신뢰할 만한 청와대 소식통에 따르면 십상시 중 핵심 3인방으로 꼽히는 이재만ㆍ정호성ㆍ안봉근 등은 인사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닌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은 지시를 이행할 뿐이며 이들의 인사개입은 현재 청와대 조직구조에서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소식통은 “최근 십상시가 청와대 인사문제 등에 개입했다며 안봉근, 이재만, 정호성 등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지만 실상 이들은 인사개입을 할 위치에 있지 못하다”며 “특히 안봉근은 인사문제에 절대 나서지 않아 VIP의 신뢰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이들이 인사문제에 대해 어떤 결정권을 행사했다는 것은 청와대 내부 상황을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청와대 주변과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인사문제에 핵심적인 결정권을 행사한 인물이 따로 있다는 말이 그럴듯하게 퍼져 있다.

이와 관련 앞서 소식통은 “정씨와 외곽에 있는 A씨 등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안이 있을 때마다 박 대통령 측근들은 서로 긴밀하게 의견을 조율해 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십상시들은 결정권자의 틀 안에 있는 인물들이 아니며 그저 메신저 역할만 하는 이들로 보면 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주간한국>이 추적한 바에 따르면 정씨 외에 청와대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인물로 알려진 A씨는 스스로 박 대통령과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다. 하지만 그를 찾아오는 인물들을 살펴보면 예사롭지 않다.

A씨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언론에 조명된 적 없는 인물이다. 박 대통령과의 관계를 아는 이들도 거의 없다. 심지어 주변인들조차 그러한 사실을 철저하게 함구하고 있어 베일에 가려진 인물로 꼽힌다.

현재 새누리당의 유력 인사와 친박계 핵심 인사들이 정기적으로 A씨와 만남을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A씨는 여권 핵심인사들에게 정국운영과 관련해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기도 한다. 청와대 소식에 밝은 소식통은 “여러 사람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A씨의 의견이 대부분 반영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A씨는 연락이 잘 닿지 않는다. <주간한국>이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잘 아는 이를 통해 그 같은 사실들을 일부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 박근혜 정부가 대대적으로 벌이는 방산비리수사도 A씨의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주목할 점은 A씨의 재산관련 소문이다. 일부에서는 A씨가 천문학적인 재산을 가졌다는 말도 들린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A씨는 실상 박 대통령과 별다른 친분이 없으며 재산도 그리 많지 않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과거 관계 때문에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다는 상반된 소리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현 정권 실세들과 교감을 나누고 있으며, 어떤 이유에서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면에서 미스터리다.

박 대통령의 미묘한 인사결정

‘정윤회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박 대통령이 중요한 결정을 하는 시기가 미묘하다는 말이 많다. 묘한 인사 패턴을 두고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해외에서 정씨 등과 함께 인사문제를 논의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박 대통령이 해외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에 중요결정을 밝히는 경우가 비교적 많다는 것이다. 예컨대 지난 11월 18일 해외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박 대통령은 신설된 국민안전처 장관 등 일부 장ㆍ차관급 인사들을 내정ㆍ 발표했다.

또 일부에선 지난해 10월 박 대통령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했을 때 정씨가 현지에서 박 대통령을 만났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정씨는 이를 부인하고 있지만 정씨의 인도네시아행에 대해서는 아직도 여러 추측이 무성하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십상시 중 안봉근 등 핵심 3인방이 이번 파문의 여파로 일선에서 잠시 물러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미 청와대 내부에서 “검찰수사까지 시작된 상황이고 야권의 추궁이 심각하니 십상시로 거론된 핵심인사들은 일단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방안이 고려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여권의 한 인사는 “십상시들로 분류되는 인사들은 정권 창출 이후 줄곧 청와대의 핵심에 서 있던 인물인 만큼 일선에서 물러나기가 쉽지 않고 설령 그렇게 되도 잠시 물러나 있는 것일 뿐 곧 다시 복귀할 것”이라며 “올해 안에 물러났다가 빠르면 내년초에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여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 일각에서 박 대통령이 동생인 박지만씨 보다 정씨의 말을 더 신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번 일과 관련해서도 박지만씨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박씨의 한 주변인사는 “이번 문건 사건에 비춰 청와대가 박씨보다 정씨를 더 신뢰하고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며 “심지어 문서 유출 사건에 박씨가 연관돼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인데, 이것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 인사는 또 “사건 발생 직후 박 대통령은 문서유출을 국기문란행위로 규정했는데, 이는 검찰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함과 동시에 동생 박지만씨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른바 ‘정윤회 문건’ 보도로 촉발된 정권 비선 실세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는 것을 넘어 그 후폭풍이 청와대를 덮치는 쓰나미가 될 조짐이 보인다.

국회도 크게 술렁이고 있다. 국회의 각 상임위원회에서 이 문제가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파행 위기를 맞고 있어 연말 ‘법안국회’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 5일 ‘비선 실세’ 의혹을 규명하겠다며 국회 운영위 전체회의 소집을 요구했지만, 새누리당은 운영위원장인 이완구 원내대표를 제외한 전원이 불참하면서 20여 분만에 산회했다.

야당 의원들은 비선실세로 지목된 정윤회 씨와 청와대 안봉근·이재만·정호성 비서관 등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의 관계, 비선 라인과 김기춘 비서실장 간 권력다툼설의 실체 등을 규명하기 위해 운영위를 정상 가동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우윤근 원내대표는 “온 국민이 의혹을 갖는 정윤회 게이트, 비선실세의 농단 등에 대해 청와대 김 비서실장을 비롯한 의혹에 휩싸인 분들을 국회로 불러 질의ㆍ응답하는 게 가장 정상적인 국정 운영”이라면서 “그럼에도 여당 의원들이 외면하는 것은 국회의원의 책무를 포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야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전체회의에서도 이 문제를 놓고 정면으로 충돌했다.

특히 이날 한 언론에 “박근혜 대통령이 부처 국ㆍ과장 교체까지 직접 지시했다”는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발언이 보도되면서 여야 간 신경전이 더욱 치열하게 전개됐다.

야당은 또 문화부를 상대로 정윤회씨가 승마선수인 딸을 위해 승마협회를 좌지우지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의 진실 여부도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정부 여당은 공무원연금ㆍ공기업 개혁 추진과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 통과, 야당의 사자방(4대강 사업·자원외교·방위산업) 국정조사 대응에 진력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형 악재가 터진 데 대해 상당히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이번 연말 문서유출 파문은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여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본 기사는 <주간한국>(www.hankooki.com) 제355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