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마다 되풀이되는 '고질병'… '권력-돈' 한통, 한국 정치 후진성 작용

저축은행 등으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
MB정부 게이트 현재진행형… '영포라인' 각종 비리에 연루
노무현정부 '박연차 게이트'로 노 전 대통령 극단 선택 불러
김대중정부 잇단 게이트에 대통령 세 아들 실형 선고받아
김영삼정부 차남 김현철 '소통령' 불려… '한보사태'로 몰락
노태우정부 '황태자' 박철언… 전두환정부 '장영자 사건' 불거져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주머니에서 나온 메모 한 장이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성 전 회장의 로비 리스트라는 의심을 받고 있는 해당 메모에는 친박계 주요 인사들의 이름이 대거 포함돼 있어 박근혜정부를 벼랑 끝으로 몰고가고 있다. 이른바 '성완종 게이트'다.

권력형 비리를 의미하는 게이트는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매 정권 빠짐없이 되풀이되는 '고질병'과 같다. 이는 권력과 돈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속성에다 한국 정치의 후진성이 작용한 결과다. 역대 정권에서 일어난 정치 게이트를 살펴봤다.

이명박정부 '영포게이트'

앞서 이명박정부에서는 이른바 '영포게이트'가 불거졌다. 이 전 대통령의 고향인 영일ㆍ포항 출신 인사들이 비리에 연루된 사건이다. 이로 인해 이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의원과 '멘토'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오른팔'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 측근들이 줄줄이 엮여 들어갔다.

'박연차 게이트'의 주인공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최 전 위원장과 박 전 차관은 '파이시티 인허가 로비 사건'에 연루됐다. 이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물터미널 자리에 지하 6층과 지상 35층의 복합유통센터를 건립하는 사업이었다. 투입되는 자금만 2조4,000억원 달하는 단일 복합유통단지로는 국내 최대의 사업이었다.

해당 사업의 시행자로 파이시티가 나서 추진했다. 그러나 2006년 건물 용지 매입을 마무리한 뒤 인허가가 지연되며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설계상 문제점을 보완하는 시건축위원회를 2008년 세 차례에 걸쳐 통과한 뒤 2009년 결국 건축허가를 받아냈다.

그러나 이후 검찰 수사 과정에서 사업의 인허가가 정관계 로비를 통해 이룬 결과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최 전 위원장과 박 전 차관은 2012년 5월 파이시티 인허가 로비 명목으로 각각 8억원과 1억6,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상왕' 이상득 전 의원은 2007년 9월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3억원을 받은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아 1년2개월간 수감생활을 했다. 같은해 12월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3억원을 받은 혐의에 대해선 무죄 판결을 받았다.

측근들뿐 아니라 인척들도 권력형 비리 사건에 이름을 올렸다. 이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오빠 김재홍씨는 제일저축은행에서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고, 김 여사의 사촌언니 김옥희씨는 국회의원 공천을 해주겠다며 금품을 받아 구속기소됐다.

'진승현 게이트'로 진승현 전 MCI코리아 부회장이 호송되는 모습.
이처럼 주변인물들이 줄줄이 감옥에 갇혔지만 이 전 대통령은 건재했다. 그러나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다는 평가다. 이명박정부의 게이트는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조성된 사정정국의 시발점인 포스코건설 수사의 총부리가 이 전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있어서다.

노무현정부 '박연차 게이트'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집권 시절엔 '생수회사 장수천 사건'과 '나라종금사건', '썬앤문 불법 자금 의혹 사건', '오일게이트' 등 정부 실세가 개입됐다는 의혹을 받은 사건이 여럿 있었다. 그러나 이전 정권처럼 대형 게이트로 비화되지는 않았다.

다만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비리·비위 혐의는 뼈아팠다. '봉하대군'으로 불린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는 세종증권 인수 과정에 개입해 29억여원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건평씨는 또 대우건설 사장 연임로비에도 개입됐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정작 노 전 대통령을 벼랑 끝으로 내몬 건 그러나 퇴임 이후 터진 '박연차 게이트'다. 이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홍기옥 전 세종캐피탈 사장의 세종증권 매각 사건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박 전 회장이 수많은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건넨 사실이 밝혀진 비리 사건이다.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이 한보 청문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여기에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인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서갑원 전 의원, 정상문 당시 청와대 총무 비서관, 후원자인 강금원 전 창신섬유 회장 등이 연루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뿐만 아니라 권양숙 여사를 비롯한 가족까지 금품수수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게 됐다. 이로 인해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비극적인 최후를 선택하고 말았다.

김대중정부 임기말 잇단 게이트

사상 첫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정부도 권력형 비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임기 3년차에 불거진 '진승현 게이트'를 시작으로 퇴임을 1년 앞둔 시점에 '이용호 게이트'와 '최규선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김대중정부는 상당한 레임덕에 시달려야 했다.

'진승현 게이트'의 시작은 2000년 금융감독원이 진승현 전 MCI코리아 부회장이 자신이 대주주인 열린금고에서 377억여원을 불법대출받은 사실을 검찰에 고발하면서다. 이후 비리 사실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김 전 대통령 측근이 대거 연루됐다.

당시 검찰은 권노갑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김은성 전 국정원 차장과 민주당 당료 출신인 최택곤씨를 통해 진 전 부회장의 자금 수천만원씩을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이후 관련자들을 구속기소했지만 검찰은 정관계 로비 의혹을 입증하지 못했다.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된 혐의로 구속기소된 최규선 전 유아이에너지 대표.
당시 김 전 차장은 사건의 배후로 지목됐지만 그뿐이었고, 김영재 전 금감원 부원장보는 금품을 받았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무죄 석방됐다. 검찰은 이후 김 전 차장과 정성홍 국정원 경제과장이 구명로비 명목의 자금을 받은 혐의를 밝혀내는 선에서 수사를 종결했다.

이듬해인 2001년에는 게이트 사건이 연달아 불거졌다. 먼저 '이용호 게이트'는 2001년 이용호 전 G&G그룹 회장이 계열사 전환사채 680억원을 횡령하고 보물선 발굴사업 등을 미끼로 주가를 조작해 250억원의 시세차익을 챙긴 혐의로 구속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이 사건은 정치인과 검찰간부, 국정원, 금감원 등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권력형 비리의 종합판'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특히 국정원은 보물선 발굴사업에 대한 사전 검토작업은 물론 사업자 선정과정에서도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이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와 처조카 이형택씨의 비리가 추가로 밝혀지면서 김대중정부는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홍업씨는 이후 검찰 수사에서 이 전 회장으로부터 이권청탁의 대가로 47억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구속기소됐다.

같은 해 벌어진 '최규선 게이트'에는 김 전 대통령의 삼남인 홍걸씨가 연루되면서 김대중정부의 체면은 바닥에 떨어졌다. 이는 최규선 유아이에너지 대표가 홍걸씨를 등에 업고 정부의 각종 이권에 개입해 기업체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권력형 비리 사건이다.

'이철희-장영자 어음 사기사건'으로 구속된 장영자씨.
홍걸씨는 당시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등 이권에 개입해 거액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여기에 정권 교체 직후인 2003년에는 장남 홍일씨가 나라종금 로비사건으로 불구속 기소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아들 세명이 모두 사법처리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김영삼정부 '한보 게이트'

김영삼정부에서는 건국 이래 최악의 금융 부정 사건으로 명명된 '한보사태'가 벌어졌다. 발단은 1997년 재계 서열 14위이던 한보그룹이 부도를 내면서다. 한보그룹이 당진제철소 건립을 위해 은행들로부터 차입한 자금이 문제였다.

당초 2조2,800억원으로 계획한 차입금은 2년 만에 5조7,000억원대로 불어났다. 정부와 채권은행단이 한보그룹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투자비를 계속 지원한 때문이다. 이후 금융기관이 기존 대출금의 회수에 나서면서 1997년 한보그룹은 최종 부도처리됐다.

이후 한보사태를 초래한 은행들의 무분별한 대출이 정관계와 금융권 수뇌부가 유착한 결과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일로 정 전 회장은 공금횡령 및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고, 그로부터 돈을 받은 정치인과 전직 은행장 등 10명이 구속됐다.

국회에서는 한보사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열려 이른바 '정태수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 33명이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또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가 이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이후 YS정부는 '식물정권'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노태우정부 '6공화국 황태자'

노태우정부에서는 부인 김옥숙 여사의 사촌동생 박철언씨가 권력형 비리에 연루됐다. 박씨는 '6공화국 황태자'로 불리며 권력을 휘둘렀다. 박씨는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해 월계관을 쓰자'며 조직된 노 전 대통령의 사조직 월계수회를 이끌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할 정도의 실세였다.

그러나 정권이 바뀐 직후 박씨는 슬롯머신 업자로부터 6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노태우 정권 집권 4년 차인 1991년에는 정ㆍ재계 인사들은 물론 대통령까지 연루된 수서택지 분양 특혜비리 사건이 터졌다.

전두환정부 '이철희-장영자 게이트'

전두환정부의 권력형 비리로는 '이철희-장영자 어음 사기사건'이 대표적이다. 1982년 당시 사채시장의 큰손으로 불리던 장영자와 남편 이철희가 어음사기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는 과정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인척 연루가 밝혀졌다.

장씨는 국회의원과 국가안전기획부 차장을 지낸 이씨를 내세워 고위층과 긴밀한 관계를 과시한 후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들에 자금지원 대가로 2배에서 최고 9배짜리 어음을 받아 이를 사채시장에 유통시키고 돈을 착복했다.

어음과 담보로 받은 견질어음 모두를 시중에서 할인한 후 다시 굴리는 방식으로 6,400억원의 어음을 시중에 유통시켜 1,400여억원을 챙겼다. 이 사건으로 인해 소위 '장영자 후폭풍'이라는 정계·경제계는 물론 사회 각 분야에 엄청난 파문이 몰아쳤다.

특히 경제계에 엄청난 파문이 일었는데 공영토건ㆍ일신제강 등 어음을 발행한 기업들이 부도를 내고 무너졌으며, 이 사건으로 한국에서 처음으로 금융실명제 논의가 본격 시작되기도 했다.

검찰 수사 결과 이들 부부의 배후에는 장씨의 형부이자 전 전 대통령의 처삼촌인 이규광씨가 버티고 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건은 게이트로 비화됐다. 이 사건으로 두 사람은 물론 은행장 2명과 공영토건, 일신제강 등 내로라하는 기업인 등 모두 32명이 구속됐다.



송응철 기자 se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