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ㆍ검사 짜고 증거위조 의혹…압수수색부터 재판까지 의문 잇따라

SAT문제유출 사건, 내사단계에 압수수색 실시… 위법성 인정

한ㆍ미 사법공조 관련 자료, 조작 의혹 제기

한국 NGO연합 사법감시배심원단 “판ㆍ검사 공조한 허위증거 제작한 명백한 정황ㆍ증거 있어”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 문제유출 사건’ 재판이 큰 파열음을 일으키고 있다. 재판에 참여했던 관계자 그리고 법률관련 시민단체 회원들 다수가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재판부가 진짜 증거를 숨기고 허위 증거를 만들었고, 판사와 검사와 공조해 허위증거로 선고를 내렸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은 초기 수사와 기소절차에서부터 다양한 문제가 제기돼왔고, 2년 넘게 끌어왔던 재판의 녹취록이 공개되며 일부 법조인들의 비난을 샀다. 특히 한국 NGO연합 사법감시배심원단 등 시민단체 측에서 주장하는 검사 측의 가짜서류에 대한 명확한 정황과 증거가 제기되며 20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서도 크게 다뤄지고 있다.

이 사건은 지난 2013년 일부 학원 강사들이 수강생과 지인 그리고 브로커 등을 통해 불법으로 SAT 기출문제를 구입했고, 이를 복사본ㆍ파일로 만들어 강의와 교재에 활용한 사실이 적발되며 시작됐다.

SAT는 미국 칼리지보드(College Board)가 문제를 출제하며 미국교육평가원(ETS)이 시험에 대한 관리ㆍ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이 SAT 기출문제는 두 주관사의 허락 없이 복제ㆍ배포할 수 없다.

사건은 초기 단추가 잘못 끼워지며 장기화됐다. 검찰이 이를 저작권법 위반 혐의를 공소사실로 적시했지만, 피고인들이 어떤 문제와 내용을 유출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입증을 하지 못했다. 우리 법원은 지난 2014년 9월 실제 시험문제를 확보해 유출된 문제와 비교해 이를 입증할 목적으로, 이 사건의 피해자인 ETS 측에 시험문제 자료제공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들은 문제에 대한 비밀유지의 이유와 미국에서 저작권법 위반은 형사처벌 범위에 해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협조하지 않았다. 검찰은 피해자의 협조조차 받지 못하고 그들이 고소도 하지 않은 사건을 압수수색까지 벌였고, 사건과 연관된 20여명을 무더기로 기소하며 논란을 낳았다.

‘피해자’가 나오지도 않은 채 SAT시험문제 저작권 위반 사건은 수사과정과 기소과정에서부터 다양한 문제가 제기됐고, 지난 6월 서울중앙지법은 해당 사건에 기소된 일부 강사들에 각각 벌금형과 징역형을 선고했다. 물론 재판 과정 역시 순조롭게 진행될 리 없었고, 이후에도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대검 방침에 어긋난 ‘내사단계 압수수색’ 실행

대검찰청은 지난 2011년 수사 활동 중 ‘내사’라는 편의적 명칭을 붙여 부적절하게 운영해 온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취지로 실제 수사 활동이 행해지는 경우 ‘내사사건’이 아닌 ‘수사사건’으로 관리하기로 했다. 본래 내사란 혐의가 불분명해 입증할만한 상태에 이르지 못할 때 조사하는 단계를 말한다. 동시에 대검찰청은 이런 혐의가 명확하지 않은 내사단계에서 체포 및 구속, 주거지 압수·수색 등을 하지 않는 방침을 발표했다.

당시 대검찰청 행사정책단은 “체포ㆍ구속, 주거지 압수ㆍ수색 등 인권침해 소지가 큰 수사 활동은 입건(혐의 사실이 인정돼 사건이 성립된 것)이후에 실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때문에 최근 검찰이 벌인 롯데그룹 압수수색도 수사팀 충분한 내사과정을 마친 뒤 이뤄지게 됐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이는 법률적 상식만 알고 있다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로 SAT시험문제 저작권 위반 사건의 압수수색 과정이 대검찰청의 이런 방침과 분명히 어긋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수사와 재판과정을 지켜봐 온 한국NGO연합 사법감시배심원단 한 관계자는 “이미 오래 전부터 대검찰청에서 내사와 동시에 압수수색을 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최근 대법원에 내사사건 압수수색이 몇 건이나 있는지 자료를 달라고 공문을 요청했더니 ‘내사사건 과정에서 압수수색은 이론 상 상정되지 않는다’라는 답변이 왔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검찰 측이 압수수색을 할 수 있도록 한 발단이었다. 압수수색은 검사 측의 청구로 법원으로부터 내려온 영장이 필요하다. 때문에 이를 가능하게 했다면, 법원 측에서 ‘내사사건 단계에서 압수수색을 할 수 없다’는 법률적으로 명문화된 기초적 상식을 모르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아니라면, 기소 의지가 강한 검사 측에서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방법을 썼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해 한국NGO연합 사법감시배심원단 측은 검사 측이 사건번호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한국NGO연합 사법감시배심원단 관계자는 “이번 사건에서 내사단계 압수수색이 가능했던 이유는 검사가 사건번호를 조작했기 때문”이라며 “사건번호를 조작했기 때문에 법원에 청구를 할 때도 모르고 압수수색 영장을 내줄 수밖에 없었고, 이를 입증할 명백한 정황과 증거도 있다”고 밝혔다.

때문에 이 사건은 수사부터 다양한 문제가 제기됐고, 문제를 안은 상태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 간 수사 과정 역시 법조인들의 상식선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생겨났다.

지난 3월 서울중앙지법 형사 18단독 오 모 판사는 SAT시험문제 저작권 위반 사건에 대한 9차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사실 한국NGO연합 사법감시배심원단뿐만 아니라 변호인 그리고 <주간한국>의 취재에 응해준 법률전문가들도 준비기일을 9차까지 열었다는 사실에 대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공판준비기일은 검사와 피고인 측 변호인이 공판 중 이뤄질 쟁점을 정리하고 증거조사 등을 논의하는 효율적 재판을 위한 준비절차다. 물론 이는 법원이 검사와 피고인 측의 의견을 들어 결정하며 개최 횟수는 제한이 없지만, 아무리 까다로운 사건이라고 할지라도 2년 6개월 동안 준비기일을 여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반응이다.

한 법률전문가는 “형사소송법상 법원이 공판준비절차를 부친 뒤 3달이 지나면 준비기일 절차를 종결하게 된다”며 “물론 공판준비를 위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는 무한대로 진행할 수 있지만, 이걸 2년 넘게 끌고 그것도 9차까지 열었다는 것은 재판에 대한 의지가 없다거나 공소가 기각돼 아예 재판을 하지 않은 가능성도 열어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주간한국>의 확인 결과 장기간의 준비기일이 걸린 이유는 피고인들이 공소사실을 다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다툼이 있는 공소사실을 특정하기 위해 검찰이 미국에 사실조회를 법무부를 통해 의뢰한 상태였다.

그런데 시민단체 등은 이번 사건의 미국 측과의 사법공조와 이를 통한 재판 단계에서 가장 큰 부정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이번 사건의 재판이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핵심은 바로 검사 측의 ‘증거조작’이었다. 유죄 입증을 위해 공소를 이어가야만 했던 검사 측이 미국 측으로부터 회신했다고 주장하는 사법공조문을 조작했다는 설명이다.

한국NGO연합 사법감시배심원단 측은 “올해 3월 초 미국 법무부가 특급 항공편으로 한국 법무부에 보낸 국가 간의 합법적인 회신문은 9월 26까지 은닉돼 있었고, 24명이나 되는 피고인 측에게는 가짜 회신문을 진짜라고 거짓말을 했다”며 “마치 법무부가 요청한 형사사법 공조요청에 대한 회신문인 것처럼 ETS 직원을 통해 받은 팩시밀리 서면을 ‘공식 답변’이라고 하며, 우리 정부가 아닌 법원사무관을 수신인으로 해서 보내온 괴문서를 대법원 사이트에 등재해 놨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한국NGO연합 사법감시배심원단이 주장한 자료들은 대법원 사이트 ‘나의사건 검색’에 사실조회 회신결과로 올라와 있었다. 반면 이들이 입수한 미국 측으로부터 우리 법원행정처 국제심의관실로 온 정식 회신문은 올라와 있지 않았다.

변호인 측은 해당 자료를 사법공조로 온 공식 서류로 착각했고, 실제 법원행정처 국제심의관실로 온 자료는 공유할 수 없었기에 공조 진행상황을 제대로 모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이들이 이를 ‘가짜증거’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결국 법원 측은 ETS 측으로부터 받은 문서를 기초로 변호인들과 피고인들에 검사실에서 사실상 증거조사를 하도록 명령했고, 그 결과를 유죄의 증거로 사용했다. 물론 사법공조와 관련된 이런 과정을 여러 변호사들이 이의를 제기했고, 증거조사방법에 대해 공판 중 장시간 문제제기를 했지만, 공판조서에는 모두 누락된 것으로 전해졌다.

법무부, 일부 위법성 인정… 의혹은 여전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고, 그 과정에서 누가 협조를 했는지도 의혹으로 남을 수 있다.시민단체 측은 판사가 검사와 공조해 가짜증거를 진짜증거로 만들어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마지막 보루’인 사법부, 그중 판사의 역할은 재판만 잘 하면 되는 것이다. 판사는 검사와 변호사 어느 쪽에 더 관심을 가지고 판결을 내릴 수 없다. 만약 공소가 어렵다고 판단한다면 공소를 기각해야 함이 당연하다.

물론 법조계 내에서는 일부 판사들이 검사의 공소장에 더욱 비중을 둬 판결문을 쓰거나 형사사건에서 유죄보다 무죄에 대한 판결을 하기 위해 더욱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과정 상 다수의 문제가 제기된다면 공소기각해야 함이 사법부의 올바른 도리인 것은 당연하다.

법률적 상식이 없는 사람들이 보더라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 쉽게 알 수 있는 이번 재판은 국정감사에도 거론됐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대법원에 SAT시험문제 저작권 위반 사건 재판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다.

정성호 의원은 대법원 측에 ‘내사단계에서 사건번호를 조작해 압수수색 영장을 받았으며, 압수수색의 범위를 넘어 SAT 시험지 저장물 등을 압수해 해당증거가 증거능력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 검토했는지 여부’ 그리고 ‘일부 관련자들에게 1심 선고가 내려졌고, 이 선고가 한미형사 공조를 통해 미국 법무부 측으로부터 원저작권자의 저작물을 제출받아 원문과 대조 및 검증을 통해 선고가 이뤄진 것인지 여부’ 등을 확인했다.

이에 대법원 측은 “24명의 공동피고인 중 1명이 압수수색 검증영장의 발부 및 집행이 위법했는 취지를 의견서에 기재해 제출했고 이에 대해 재판부에서 검토 중”이라며 일부 위법적 사실을 인정했다.

물론 원저작물에 대한 대조ㆍ검증 과정이 제대로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법무부 측의 답변에 따르면 국제형사 사법공조를 통해 ETS에 시험문제의 원본에 대한 사실조회촉탁을 했고, ETS에서 재판부에 연락을 한 후 한국의 법률대리인 사무실로 자료를 보내온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측의 법률대리인도 이를 검찰을 통해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고, 시험문제의 원본과 검찰이 피고인들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압수한 시험문제를 비교해 동일성에 대한 심리가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법률전문가들은 법무부의 해명을 납득할 수 없고, 법조계가 발칵 뒤집힐 수 있는 이번 사건의 숨겨진 부분을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NGO연합 사법감시배심원단 관계자는 “법률운동을 25년 간 하면서 다양한 법률피해 사례를 접해봤지만, 이번 사건만큼 부정적 증거들이 명확히 드러나는 경우는 처음”이라며 “다양한 녹취와 명확한 증거자료들이 있는 만큼 끝까지 밝혀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SAT시험문제 저작권 위반 사건 재판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정성호 의원에 이어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도 국회 법사위를 통해 공소기각을 하지 않았던 이유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의했다. 또 다가올 종합감사 때 이번 사건에 대한 질의가 더욱 크게 다뤄질 전망이다.

<주간한국> 역시 이들이 말하는 ‘명확한 증거’를 토대로 이번 사건에 대한 사실을 밝혀나갈 예정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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