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ㆍ러 정상회담 ‘북핵’ 해결의 전환점…북ㆍ미 간 협상에서 유엔으로
북ㆍ중ㆍ러 3국 연대 ‘새로운 길’ 추진…남북관계, 동북아질서에 영향

북ㆍ러 정상회담. (연합)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5일 오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에서 첫 정상회담을 한다. 북ㆍ러 정상회담의 의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북핵 및 대북 제재 완화 문제, 경제협력을 비롯한 북러 관계 현안이 주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는 줄곧 북한 입장을 지지해왔기에 양국은 단계적 비핵화와 대북 제재 해제에 한 목소리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러시아의 대북 식량 및 에너지 지원, 북한 인력 활용, 극동 러시아 개발 등 경제 현안들이 주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과 러시아는 북핵(비핵화)에 대해 종전과는 다른 ‘새로운 길’을 모색할 것으로 전해진다. 즉, 북핵 문제를 미국과 북한이 아닌 유엔에서 해결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미국은 북핵 해결의 당사자에서 멀어지고 비핵화를 차기 대선의 최대 카드로 활용하려던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도 차질을 빚게 된다. 러시아와 북한은 유엔이 미국의 영향을 받는 것을 감안해 상임이사국인 중국까지 끌어들여 만반의 대비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마디로 이번 북ㆍ러 정상회담은 북핵 문제 해결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이는 남북관계는 물론, 동북아 질서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어 그 추이가 주목된다.

김정은 위원장은 24일(현지시간) 블라디보스토크 하산 역에 도착해 러시아 국영TV채널 ‘로시야’와 한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과 할 정상회담에 대해 “지역 정세를 안정적으로 유지 관리하고 공동으로 조정해나가는 데서 매우 유익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북핵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고 주로 ‘경제’에 방점을 두고 연해주(극동라시아)의 공동 발전에 대해 언급했다.

이번 북ㆍ러 정상회담의 핵심은 ‘북핵(비핵화)’과 ‘경제’다. 특히 북ㆍ러 회담의 최대 초점은 ‘북핵’에 맞춰져 있고, 북한의 안보와도 관련있다. 베이징의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북핵이 대북 제제의 원인이 되고 있는 만큼 이를 효과적으로 플려는 게 북의 입장”이라며 “러시아를 택한 것은 북이 믿을 수 있는 나라이고 미국에 대해서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전해왔다. 소식통은 “김정은이 푸틴을 만나는 건 러시아를 통해 자신의 안전과 북한의 안보를 보장받기 위한 측면이 크다”며 “러시아가 나설 경우 미국도 함부로 북한을 공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식통은 김정은 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진짜 이유’에 대해 언급했다. 소식통엔 따르면 북ㆍ러 정상회담과 관련해 대외 발표용과 양국만의 은밀한 대화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하노이 2차 북ㆍ미 정상회담 결렬 후 북은 미국뿐 아니라 남한도 신뢰할 수 없다고 보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했다”며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러시아와의 관계를 증진하면서 북핵 문제를 함께 풀어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북한은 러시아를 앞세워 북핵을 유엔에서 해결하고 중국도 동참시키려는 복안을 갖고 있다는 게 소식통의 전언이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가 미국과는 독자적인 비핵화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힌 점이 주목된다.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19일 “러시아는 북한의 비핵화를 지지한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한반도 문제는 (미ㆍ러) 양국 간 의견 교환이 필요한 문제이지만 긴밀한 조율을 할 필요는 없다”며 미국과는 별개로 관련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의 독자적인 비핵화와 관련해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북핵 문제를 유엔에서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한반도 전문가도 “러시아는 유엔 상임이사국”이라며 “북핵 문제는 유엔에서 다룰 수 있는 중요 사안이고, 명분이 있으면 미국도 반대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식통은 “유엔도 미국의 영향력이 미치는 만큼 북핵을 유엔에서 해결하는 게 최선인지는 알 수 없으나 대의명분이 충분하면 미국도 방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중국이 합류해 북핵 문제를 유엔에서 다루게 되면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봤다.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전쟁 때문에 직접 나설 수 없어 북한이 러시아를 앞세우는 측면이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실제 유엔 상임이사국인 중국까지 가세해 북핵 문제가 유엔에서 다뤄질 가능성이 있다. 푸틴 대통령은 북ㆍ러 정상회담 직후 중국 베이징에서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베이징 소식통은 “김정은이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을 만날 예정인데 북ㆍ러 정상회담을 끝내고 푸틴과 함께 베이징으로 날아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북한의 비핵화 문제가 유엔에서 다뤄지면 미국은 북핵의 주도권이 약화되고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의 최대 카드 하나를 잃을 수 있다. 비핵화 성과를 통해 미국의 경찰국가 위상을 확실하게 세우고, 달러 가치 제고로 ‘어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 공약도 실현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은 자칫 차기 대선의 유력한 발판을 상실하게 된다.

때문에 미국은 북핵 문제가 유엔에서 논의되는 것을 막으려 하고, 실제 유엔에서 다뤄질 경우 유엔에 대한 영향력을 최대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러시아ㆍ중국ㆍ북한은 ‘명분’을 앞세워 유엔 회원국을 설득하는 것으로 맞설 것이 예상된다.

이번 북ㆍ러 정상회담은 단지 북한과 러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 중국의 현재와 미래가 관련있고, 한국도 당연히 영향을 받게 된다. 안타까운 점은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와 동북아 현안을 둘러싼 주변국의 파워게임에서 ‘당사자’는 물론, ‘중재자’도 못되고 있는 현실이다.

박종진 논설실장



박종진 논설실장 jjpa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