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지난 7월 2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에서 징벌적손해배상제를 포함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을 강행처리했다. 이는 2007년 노무현 정권 말기 ‘언론개혁’이라며 추진했던 ’기자실 대못질‘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노무현 정부의 기자실폐쇄정책은 그의 임기 내내 적대관계였던 언론에 대해 최후적인 공격이었다. 그는 걸핏하면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을 지칭해 ’불량상품‘이라고 했고, 기자실에 대해서는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담합이나 하고...”라는 말로 극도의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그는 퇴임을 코앞에 두고 벼르던 기자실 폐쇄를 밀어붙였다. 정부의 각 부처, 공공기관 및 공기업 등에 설치된 기자실을 폐쇄하고 서울 정부제1종합청사와 과천, 대전 청사 등 3곳에 통합브리핑실을 두어 정책홍보의 창구로 삼도록 했다.

정부는 그것을 선진적인 기자실 운용이라면서, 기자들은 기자실을 나와 발로 뛰는 생생한 기사를 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실 출입구에 대못을 박은 부처도 있었고, 기자들은 출입처 복도에 쪼그리고 앉아 기사를 쓰고 송고했다. 지금 대부분의 기자와 언론단체들이 언론중재법개정에 반대하듯 그 때도 그랬다.

반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관료사회는 겉으로는 표시하지 않았으나 내심 기자실 폐쇄를 반겼을 것이다. 업무 시간 중에 무시로 찾아오는 기자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는 것은 그들이 늘상 하는 불평이었다.

노 대통령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이 문제를 거론했을 때 우려의 목소리를 낸 장관은 없었다. 그들은 모두 대통령의 ‘용단’을 “지당하신 말씀”이라고 칭송하기 바쁜 ‘지당 장관’들이었다. 노 대통령이 기자실 폐쇄의 무리수를 강행한 배경에는 공직사회만큼은 자신을 지지하리라는 확신도 있었을 것이다.

기자실 폐쇄는 개혁을 빙자했지만 속셈은 기자들의 관료를 상대로 한 대면 취재를 금지하고 정부 안의 정보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정권이 끝나면 그 대못은 빠질 공산이 컸다. 당시 야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이명박 후보는 이런 여론을 의식해 기자실 부활을 공약했고 그 공약은 당선 즉시 실천됐다. 개정 언론중재법이 표방하는 언론개혁은 기자실 폐쇄만큼이나 거칠고 난삽하다. 언론사와 기자 개인의 고의 또는 중과실에 의한 허위o조작 보도를 처벌해야 한다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인터넷 기술의 발달과 이념의 양극화로 인해 허위 또는 조작에 의한 가짜뉴스가 갈수록 교묘하고 극심해 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는 헌법적 가치이다. 여기에 제한을 가하려고 한다면 사회적인 숙의(熟議)를 통한 국민적인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허위와 조작을 가려내기는 쉽지 않다. 거기에 고의와 중과실을 가려내는 것은 더 어렵다. 이 문제에는 사실과 허위가 혼재하기 때문이고 언론 자유의 바탕에는 거짓말을 할 자유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법으로 재단하기 쉽지 않은 언론자유에 관한 문제에 엄벌주의가 능사일까. 손해액의 5배까지라는 징벌적 배상액도 터무니없거니와 손해액 산정 기준을 해당 언론사의 매출액의 최저 1만분의 1에서, 최고 1000분의 1로 정한 근거가 모호하다.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와 재벌회장들이 이 제도를 활용할 수 있게 한 것은 입법 의도를 한층 뚜렷이 말해준다. 선진국에서는 허위 조작기사에 대한 '실질적 악의’(Actual Malice)의 입증책임을 공직자가 지게 함으로써 활용할 엄두를 낼 수 없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법은 터무니없게도 기자에게 보도에 실질적 악의가 없음을 입증토록 하고 있다.

이 법에서는 입안자들이 입버릇처럼 말한 “언론사의 문을 닫게 할 정도의 강력한 징벌”이라는 적개심밖에 느껴지는 게 없다. 그처럼 세계에 유례가 없는 법이기 때문에 위헌의 소지와 함께, 공직자 등의 남소(濫訴) 가능성만 열려 있고, 언론탄압국이라는 망신을 살 일만 남았다.

입법의 선후와 관련해 지적할 것은 어떤 형태의 언론매체들에서 허위와 조작이 만연하고 있는지에 대한 현실인식이 결여돼 있는 점이다. 이 법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영향력이 큰 보수 언론사인 것으로 보이는데 그런 언론에선 전통적으로 보도과정에 사실여부를 확인하는 데스킹 절차가 기능하고 있다. 그에 비해 허위o조작 메시지가 횡행하는 유투브와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미디어 중에는 이렇다 할 통제장치도 없이 소문이나 주장을 뉴스인 것처럼 퍼뜨리는 유사언론행위가 판치고 있다. 공영방송들 조차 그런 행태를 따라하거나 그런 콘텐츠를 퍼나르기를 일삼는 모습도 비일비재하다.

이 법이 다뤄야 할 부분은 바로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방송미디어의 허위와 조작 정보여야 했음에도, 인터넷 미디어에 밀려 사양길에서 허덕이는 인쇄 매체를 기반으로 한 언론사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이다.

방송개혁의 핵심은 KBS와 MBC 등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이다. 그것은 집권여당이 맘만 먹으면 당장에라도 가능하고 야당의 전폭적인 지지도 얻을 수 있다. 2016년 지금의 여당이 야당이었을 때 160여명의 의원들이 연명으로 제안한 ‘공영방송장악방지법’을 시행하면 된다.

그 법은 KBS의 이사의 수를 현재의 11명에서 13명으로, MBC도 9명에서 13명으로 각각 늘리고 여당이 7명, 야당이 6명을 추천하되 사장은 3분의 2 특별다수 찬성으로 선임하는 내용이었다. 이 법은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

“공영방송 사장을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소신 없는 인사로 뽑는 게 도움이 되겠느냐”는 문재인 대통령의 한마디로 그들이 만들었던 공영방송장악방지법은 내팽개쳐졌다. 이전 정부와 똑같이 사장은 확실하게 자기편인 사람으로 앉혔다. 그것의 결과가 지금의 MBC이고 KBS이다.

기계적인 중립이라도 지킬 수 있는 사람을 앉힌다면 그것만으로도 방송개혁의 절반은 성공이다. 그렇게 쉽고도 국민 모두로부터 환영 받을 언론개혁을 도외시하면서, 언론과 야당이 ‘언론재갈법’이라며 반대하는 이 법을 일방 처리하려는 민주당의 처사는 정권이 끝나면 뽑히고 말 ‘대못 질’의 되풀이라고 본다.



● 임종건 칼럼니스트 프로필

한국일보와 서울경제신문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에서 편집국 국차장, 논설위원, 사장을 지내는 등 36년 동안 언론에 몸담았다. 사실과 경험에 입각해 글을 쓰겠다는 다짐에서 ‘드라이 펜(Dry Pen)’을 필명으로 삼았다. 한국일보 시절에 주간한국 기자와 부장을 지낸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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