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학교 돈벌이 수단 전락"… "학생 모집 브로커가 문제의 근원"브로커 개입해 허위ㆍ과장광고로 학생들 대거 유치한 뒤 커미션제대로 된 교육 제공되지 않아평생교육진흥원과 유착 의혹도… 정부 차원의 대응책 마련 시급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위치한 서울 서초구의 빌딩 전경. 주간한국 자료사진
최근 서울종합예술학교를 비롯해 학점운영제로 운영되는 직업전문학교에 대한 검찰의 전격적인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를 통해 직업학교들의 민낯이 세상에 드러났다. 동시에 전문학교 곳곳에서 참아온 불만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주간한국>은 직업학교의 현주소를 전격 점검에 나섰다. 결과는 참담했다. 다양한 학습과 자격을 학점으로 인정해 대학교나 전문대학과 동등한 학위를 수여한다는 학점은행제는 취지는 이미 무색하게 된지 오래였다.

일각에선 신성한 교육의 장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아냥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 이런 현상이 초래된 중심에 불법 학생 모집 대행업체, 이른바 ‘브로커’가 있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잡음 끊이지 않는 학점은행제

학점은행제는 고등학교 졸업자가 정규 대학교에 다니지 않고 전문학사 또는 학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제도다. 열린 교육사회와 평생학습사회를 구현한다는 취지에서 ‘학점인정 등에 관한 법률 등 관련 법령’을 제정하고 1998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횡령·로비 의혹을 받는 김민성 서울종합예술직업학교 이사장이 검찰에 소환돼 7월 3일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하고 있다.
대개 ‘평생교육원’ 내지는 ‘직업전문학교’ 등의 간판을 내걸고 운영된다. 통상 취업이나 국가고시, 자격시험 등의 자격 기준을 맞추고자 하는 수강생이 몰린다. 특히 온라인만으로 학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어 직장인들이 주로 찾는다.

그러나 그동안 직업학교를 둘러싼 잡음은 적지 않았다. <주간한국>은 최근 학점은행제 진단의 일환으로 한 직업학교의 허위ㆍ과장 광고 실태를 낱낱이 보도한 바 있다. 해당 기사 이후 직업전문학교 재학생과 학부모들의 제보 전화가 연이어 걸려 왔다.

이들의 사연은 제각각이었지만 결론은 같았다. 허위ㆍ과장광고에 속아 입학했지만 제대로 된 교육이 제공되지 않았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이 때문에 등록금을 날렸음은 물론 진로가 결정되는 중요한 시기를 허송세월했다는 한탄도 공통적이었다.

먼저 경기도 소재의 직업학교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교육 시간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학생에 따르면 관련 자격증 취득을 위해 2년간 총 3,600여시간의 교육 시간을 이수해야 한다. 한 학기당 900시간, 하루 8시간 수준의 수업이 진행돼야 하는 셈이다.

그러나 실제로 진행되는 수업은 하루 4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학생은 직업학교는 면허증 취득에 필요한 실습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워 학생을 모집했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토했다.

두 아이를 각각 서울의 요리와 미용 관련 전문학교에 보냈다는 한 학부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이 때문에 자녀들은 한 학기를 채 마무리 짓지 못하고 학교를 박차고 나왔다. 800만원에 달하는 등록금을 고스란히 날리게 된 셈이다.

또다른 제보자는 보육교사로 취직하기 위해 100만원을 주고 학점은행제 온라인 수강을 신청했지만 학교 측의 상담 내용과 달리 학점활용이 불가능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환불을 요구했지만 그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 경우는 그나마 양반이다. 허가된 수강인원 이상의 학생을 모집해 학비를 받고도 정작 학점을 수여하지 않은 일도 벌어졌다. 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학교는 수업은 제공했다며 막무가내로 일관해 이렇다 할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처지다.

심지어 직업학교가 문제를 제기한 학부모를 상대로 고발을 하겠다며 으름장을 놨다는 제보도 있었다. 학생과 학부모가 학교의 허위광고에 속았다며 피해보상을 요구하자 학교 측이 학생을 퇴교조치하고 협박 및 업무방해죄로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협박했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절반 이상 ‘중도하차’ 배경은?

문제는 비단 이들 직업학교만의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취재 결과 상당수 직업학교들이 이와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직업학교를 제대로 졸업하는 이는 많지 않다. 중도하차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평생문화교육원이 내놓은 ‘학점은행제 학습자 등록 현황’에 따르면 학점은행제 등록 학습자는 1998년 671명에서 ▦1999년 1만1,489명 ▦2000년 1만1,732명 ▦2001년 1만9,315명 ▦2002년 2만1,442명 ▦2003년 2만4,924명 ▦2004년 2만7,971명 ▦2005년 4만2,105명 등이었다.

이후 2006년부터는 5만1,522명에서 ▦2007년 6만9,055명 ▦2008년 8만3,169 ▦2009년 9만5,520명 ▦2010년 9만6,574명 ▦2011년 12만1,425명 ▦2012년 13만3,771명 ▦2013년 3월20일 기준 2만1,892명 등으로 가파른 증가율을 보였다.

이 기간 학점은행제에 등록된 학습자는 모두 83만2,577명에 달한다. 반면 같은 기간 학점은행제 학위취득자의 수는 37만4,684명에 불과하다. 결국 등록 학습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중도에 직업학교를 그만둔 셈이 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일이 벌어지는 배경이 학생 모집 대행업체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온라인광고나 설명회 등을 통해 학생들을 직업학교 등에 유치하는 업체다. 서울경기지역 직업학교 50여곳 가운데 절반 이상은 이들 업체를 끼고 있다는 전언이다.

학점은행기관을 관리·감독하는 교육부 산하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은 대행모집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행업체들은 아랑곳 않고 영업력을 확대하고 있다. 불법을 저지르는 부담만 감수하면 ‘쏠쏠한 금전적 재미’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업체는 유치의 대가로 한학기 등록금의 60%를 가져가는 게 일종의 ‘룰’이다. 직업학교의 한학기 평균 등록금이 360만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학생 한명당 216만원 정도가 브로커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를 통해 대행업체들은 막대한 부를 쌓아 올렸다. 업계에서 이름이 잘 알려진 U대행업체와 O대행업체 대표가 이런 사례다. 이들은 2000년대 중반 업계에 진출한 지 불과 몇 년이 되지 않아 수십억원대 자산가로 거듭났다.

또다른 유명 대행업체인 M사의 대표는 축적한 자금을 바탕으로 직업학교를 직접 인수해 운영하기도 했다. M사 대표는 직업학교에 학생들을 유치해 모양새를 갖춘 뒤, 이를 되판 돈으로 최근 다른 직업전문학교 두곳을 새로 인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행모집으로 인한 피해는 학생과 학부모들에 고스란히 돌아간다. 당장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교육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행모집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때문에 교수진과 실습 시설 확충, 장학금 등 학생들을 위한 비용에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돈벌이에 혈안이 된 모집대행 업체가 대학교와 전문학교와 비슷한 시기에 수시와 정시모집을 하는 등 일반 학교행세를 하며 허위ㆍ과장광고를 동원해 유치에 나서면서 학생들의 판단을 흐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또 학교의 수용인원을 고려하지 않고 과다하게 모집한 학생들이 직업학교가 무리하게 받는 과정에서 교육이 제대로 제공되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시설이 제한된 실습의 경우 이런 피해가 빈번하게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한 직업학교 업계 관계자는 “대행업체들을 끼고 ‘학생장사’를 하는 직업학교들 때문에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학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대행업체들만 없어져도 학점은행제의 혼탁 양상이 해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행업체를 발본색원하기엔 어려움이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최근 들어 대행업체들이 편법을 동원해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가고 있어서다. 이는 올해 초 교육부에서 대행모집 금지를 강하게 표명한 결과로 풀이된다.

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근래 대행업체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직원들을 자사가 관리하는 직업학교에 취업시키는 업태가 생겨나고 있다”며 “직원의 소속은 변했지만 기존의 업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수사기관에서 직업학교와 대행업체 사이의 자금흐름을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알 수는 없다”면서도 “대행업체가 사실상 동일한 업무를 처리해 주는 만큼 수수료에도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행업체가 활개를 치는 배경을 두고 평생교육진흥원의 관리 부실을 탓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문제가 발견돼도 시정 조치를 내리는 게 고작일 뿐이라고 한다. 마땅히 처벌을 내릴 관련법이 없다는 게 평생교육진흥원의 항변이다.

대행업체로 인한 폐해와 교육기관의 부실 운영으로 인한 민원이 끊이지 않자 앞서 2011년 국민권익위원회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 바 있다. 평생교육진흥원에 학점은행제 교육기관에 대한 관리감독과 제재를 강화하는 내용의 개선안 마련을 권고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업계는 이처럼 평생교육진흥원이 직업학교의 ‘반칙’을 외면하는 배경을 이들 사이의 ‘유착관계’ 때문으로 보고 있다. 직업학교 상당수가 평생교육진흥원 직원들을 조직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최근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평생교육진흥원과 서울종합예술직업학교(서종예)의 관계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지목된다. 검찰은 전 평생교육진흥원장이 학점은행 지정·운영과 관련해 특혜를 주면서 서종예 측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밖에도 검찰은 지난 7월 9개 온라인 학점은행기관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하기도 했다. 평가인정을 받는 과정에서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 평생교육진흥원에 금품을 제공하는 등 로비를 한 정황이 드러난 데 따른 조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상황을 종합해 보면 직업학교에 만연한 문제들은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의 힘이나 학교들의 자정노력 만으론 해결이 거의 불가능하다”며 “정부차원의 강도 높은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송응철기자 se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