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재판 남긴 판사, 영전이라니?”

사법부 불신 남긴 SAT 문제유출 사건 담당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돼 승진 평가

사법감시 배심원단 “오 판사 인사, 국회ㆍ언론ㆍ법조인ㆍ수험생, 피해자 무시한 처사”

“진실의무ㆍ객관의무를 위반한 법률사에 남을 부끄러운 사건” 규탄


한국NGO연합 사법감시 배심원단(이하 사법감시 배심원단)은 지난달 28일 공식 성명서를 통해 서울중앙지법 오00 판사가 선고한 저작권사건의 재판 결과 및 오 판사를 재판연구관으로 영전시킨 대법원의 결정을 강하게 규탄했다.

‘SAT(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유출 사건’으로도 알려진 이번 저작권사건의 재판은 <주간한국>이 지난해부터 여섯 차례 특집으로 보도해온 이슈다. 또 지난 2015년부터 국회 법사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저작권사건에 대해 공소기각 사유가 명백함에도 이를 지체해 헌법 제27조 3항에 명시된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 침해, 출국금지 및 취업제한 등 인권침해 우려가 있다며 관련 문제점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본지는 이 사건의 내사 중 혐의자에 벌인 검찰의 ‘불법’ 압수수색과 증거조작 의혹, ‘피해자가 고소를 원치 않았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각종 의혹만 남긴 채 진행된 수사 및 재판 등 SAT 문제유출 사건을 둘러싸고 검찰과 사법부가 해명해야 할 각종 문제점을 보도했다.

그러나 사법감시 배심원단에 따르면 사법부는 이 사건의 재판에 대한 그 어떠한 제재를 가하지 않았고, 결국 공소기각 사유가 명백해 보였던 피고인들에 유죄판결을 내렸다. 특히 이번 저작권사건의 재판을 맡았던 오 판사는 인사에서 대법원으로부터 부장판사 직전에 준하는 대법원 재판연구관이 돼 승진과 다름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사법감시 배심원단은 오 판사의 판결에 대해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피고인의 방어권’, ‘변호인의 변론권’ 그리고 ‘피고인의 인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면서, 오 판사에 대한 대법원(법원행정처)의 인사취소와 공정한 사법행정을 촉구했다.

사법감시 배심원단은 “법원은 한미형사공조협정으로 FBI(미국 연방수사국)와 미 법무부를 통해 보내온 회신문까지 은닉했고, 날조한 문서를 대법원 사이트에 등재ㆍ공시해 놓고 공소제기 2년 7개월 만에 공소장 변경까지 했다”며 “재조(在曹)경력 변호인들까지 검찰이 제시한 유죄 입증의 증거가 조작됐다고 주장하자, 증거법에 의한 정식 증거조사가 아닌 ‘간이공판절차’를 통해 졸속 마무리하며 공소기각이 돼야 마땅한 피고인들 모두에게 유죄를 선고했다”고 주장했다.

사법감시 배심원단에 따르면 이 사건을 위해 한미형사공조협정에 따라 오고 간 적법한 문건은 피고인들과 변호인들에게 은폐하며, 교부하지도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 ‘나의 사건’ 사이트에도 엉뚱한 문건이 마치 국가 간 정식 회신문서인 것처럼 등재해 피고인들의 방어권을 침해했고, 적법한 문건은 재판이 다 끝난 후에야 등재해 놓은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이 간이공판절차는 판사의 재량으로 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하기 위해 증거조사 등의 재판절차를 생략하는 제도로 지난 1973년 1월에 국회 해산 후 비상국무회의에서 증거조사 없이 자백만으로 재판을 할 수 있도록 신설됐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국내에서만 시행되고 있고, 법조계 일부에서는 이를 ‘유신시대의 악법’이라 평하는 목소리도 있다.

본지는 저작권사건 재판에서 간이공판절차가 진행된 것에 대해 해당 재판이 2년 7개월이라는 준비기일이 있었던 만큼 조속한 마무리를 위해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2년 7개월이라는 긴 준비기일 절차가 있었다는 사실은 검찰 측이 내사 중 무려 44회의 압수수색을 했음에도 혐의사실을 특정하지 못해 증거확보 등 공소단계에서 소추요건이 부족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또 피고인들이 그만큼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혐의를 인정하지 않아 검사와 피고인 측 간 ‘다툼’이 여전했기 때문에 재판부가 간이공판절차를 적용하기 적절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사법감시 배심원단 측은 “사법부가 신(新)형사소송법의 핵심인 공판중심주의를 적극 또는 교묘히 위배하면서, 사실상 증거조사 없는 간이공판절차로 유죄선고를 남발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법감시 배심원단은 대법원이 지난달 20일 국회 본회의에서 채택한 ‘2016년 국정감사 결과보고서 시정ㆍ처리 요구사항’을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이 요구사항에는 ‘장기간 심리가 지연된 SAT 문제유출 사건 재판과 관련해 가짜 원본을 근거로 선고가 내려지는 등 의혹이 있으므로 대법원은 재판사무 감사 등 합당한 조사를 실시, 그 조치 결과를 보고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사법감시 배심원단은 대법원 측이 이 요구사항에 대한 보고를 완료하지 못했음에도 오 판사를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인사 발령한 것을 두고, 국회 국정감사와 언론보도, 전국의 법조인과 SAT 수험생 그리고 거짓 증거로 유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을 우롱한 처사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사법감시 배심원단은 “서울중앙지법원의 저작권재판에 대한 심각한 위법성과 전국 법조인 및 SAT 시험 준비생들의 분노 그리고 사회적 물의가 있었음을 알고 있는 대법원의 이번 조치가 국가형벌권 남용을 지양해야 할 본분을 저버린 것과 다름없다”며 “지난 2015년과 2016년 대법원 및 서울중앙지방법원 국정감사에서 박지원 국만의당 당대표 등 법사위 중견 위원들이 SAT 문제유출 사건 재판의 공소기각 사유를 질타했음에도 잘못을 바로잡기는커녕 비호한 꼴”이라고 규탄했다.

한국NGO연합 사법감시 배심원단은 350여개 시민ㆍ사회단체와 법학교수, 변호사ㆍ변리사 등으로 이뤄진 전문가 단체의 연대기구로, SAT 문제유출 사건에 대한 저작권법 비친고죄 조항을 오ㆍ남용한 검찰의 수사ㆍ기소 과정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지난 2013년 초부터 4년간 해당 사건의 수사와 재판을 정밀 모니터링해왔다.


사법감시 배심원단 측은 “이 사건은 검찰의 잘못을 견제하고 시정해야 할 법원이 검찰의 증거 은폐ㆍ은닉 심지어 증거조작까지 묵인하고, 피고인들에게는 검찰이 제시하는 가짜증거를 진짜증거(SAT 문제 원본)인 듯이 속여 검찰에 가서 사실상의 증거조사를 하게 했다”며 “오 판사는 법정에서 피고인들로 하여금 검사실에 가서 원본여부를 확인하라고 하고, 그 확인사실을 공판정에서 증거로 인정하도록 강요 또는 유도했으며, 이의를 제기하는 피고인의 변호인에게 정식으로 증거조사를 하려면 재판이 2~3년씩 걸린다고 압박해 변호할 의지마저 상실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런 재판은 헌법과 법률에 제시된 진실의무ㆍ객관의무를 위반, 형법의 보충성 원칙을 무시한 채 미국 민간단체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자국민을 형사 처벌한 사법사(司法史)에 길이 남을 일”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주간한국>은 서울중앙지방법원 측에 수사 절차 및 공소제기, 그리고 오 판사의 재판 절차상의 문제를 지적하며 입장을 문의한 바 있다.

이에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의 수사 과정 및 공소제기의 적절성, 증거의 적법성과 관련된 것은 공식적으로 답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오 판사의 재판 절차 문제에 대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현재 진행 중인 재판에 대해 담당 판사로서 법정 외에서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라며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재판 절차와 관련해 법률적인 이의가 있는 경우에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불복 절차를 통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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